일상/2020~2022 291

눈물 나게 행복하다

어렸을 때는 '눈물 나게 행복하다'는 말이 이상했다. 행복한데 왜 눈물이 날까하고. 근데 살다보니 종종 그런 느낌을 받게 될 때가 있긴 하다. 그건 참 이상한 기분이다. 고등학교때 졸업하면 해보고 싶었던 것들이 있었는데 에버랜드 가서 T익스프레스 타보는 거랑 번지점프, 스카이다이빙 해보는 거였는데 아직도 셋 중 하나도 못해봤다. 셋의 공통점은 다 중력에 몸을 맡기고 떨어지는 행위라는 것이다. 그런게 하고싶어지는 마음을 들여다보면서 스스로도 "어지간히 탈출하고 싶나보다" 생각할 정도였다. 비교적 최근까지도 억지로 혼자 가서 해볼 것까진 아니지만 기회만 된다면 해보고 싶다는 마음을 갖고 있었던 기억이 나는데 문득 지금은 크게 그런 것들을 해보고싶은 마음이 없어졌다는 걸 깨달았다. 그런 자극이 없어도 내 일상..

일상/2020~2022 2021.09.13

좋은 마음으로

기왕 하는 거 좋은 마음으로 하자는 마음. 우습지만 그 마음을 가장 크게 느꼈던 기억이, 내게는 대학교 1학년 여름방학 때의 풍물패 전수였다. 가기 전까지는 9박10일이나 그 시골에 처박혀서 하루종일 악기만 치고 연습만 한다는 게 잘 상상도 안 됐고, 가기 싫은 마음도 있었다. 귀찮기도 하고, 답답할 거 같기도 하고, 그 좋아하는 게임도 못하고 등등. 근데 막상 거기 도착하는 순간, 내 안의 스위치같은 게 눌리면서 마음가짐이 확 세팅되었다. 어차피 내가 중간에 그만두고 집에 갈 게 아니라면, 어차피 9박 10일동안 여기서 이걸 할 거라면 후회없이, 이 순간에 최선을 다해서, 좋은 마음으로 하자, 굳이 말로 하자면 그 정도 느낌으로의 마음가짐 전환이었다. 정말로 그렇게 했다. 몹시 피곤할 수밖에 없는 일정..

일상/2020~2022 2021.09.09

오버페이스

5km를 목표로 뛰었는데, 3.3km를 뛰고 옆구리가 너무 아파서 멈출 수밖에 없었다. 5km를 다 못 뛰었다고해서 딱히 실패한 것도 아니고, 문제는 하나도 없지만 그래도 왜 5km를 뛰지 못했을까 생각해보게 된다. 지난번에는 10km를 목표로 뛰어서 5.8km를 뛰었다. 키로당 5분7초의 페이스면 나쁜 기록은 아니지만 대단히 무리를 했다고 생각이 드는 기록도 아닌데, 결과적으로는 오버페이스다. 5km를 뛰려고 했으면 5km를 다 뛸 수 있는 속도로 뛰었어야하니까. 러닝어플의 실시간 페이스 숫자를 보면서 뛰었는데 그 숫자가 오르락내리락할 때마다 내 페이스도 오락가락해서 오히려 별로였다. 내 몸의 감각으로 느껴야하는데, 오랫동안 달리기를 안해서 아직 감이 없고 페이스를 놓쳤다. 자신의 페이스를 찾는다는 게..

일상/2020~2022 2021.09.05

가만히

내 마음을 들여다봤다. 어젯밤 재인이 내가 나오는 글을 썼다고 하여 들뜬 마음으로 블로그에 들어갔었다. 그러다 나보다 먼저 전남편 이야기를 만났다. 앞의 전남편 이야기를 읽고나니 어쩐지 마음이 복잡해져서 내가 나오는 이야기에 온전히 마음이 집중되지 않는다는 걸 느꼈다. 곰곰이 돌이켜봤다. 그런 나를 느꼈을 때 처음 한 생각은 '이런 감정이 들면 안 돼, 내가 불편해하면 안 돼'라는 생각이었던 것 같다. 그 생각은 이런 생각과 이어져있는 것 같다. '그에겐 절대 얘기할 수 없어, 들키고 싶지 않아' 그리고 궁금해졌다. '지금 이 마음은 구체적으로 어떤 마음, 어떤 감정이지? 나는 뭐가, 왜 불편한거지?' 글을 다시 읽으며 또 생각해봤다. 다시 천천히 읽어본 글은 처음보다 더 감동적이었다. 나에 대한 마음도..

일상/2020~2022 2021.09.05

내일도 있다는 걸 믿는 사랑

꽤 오래전부터 영화 를 굉장히 감명깊게, 여러번 봤었다. 내게 주어진 삶이 단 하루밖에 남지 않았다는, 그런 상황은 강렬할 수밖에 없다. 오랫동안 내 사랑의 이상향, 모토는 이프온리였다는 생각이 든다. 오늘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해 사랑하자고 다짐 또 다짐하곤 했다. 그래서 후회를 남기지 말자고. 그건 무척 멋진 일이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것도 맞고, 오늘이 마지막일 수도 있고, 늘 최선을 다해야하는 것도 맞다. 그런 이야기들에는 늘 끌린다. 여전히 그런 생각을 통해 지금의 소중함을 느끼는 걸 좋아한다. 하지만 삶이란 언제 끝날지 모르는 것만큼이나 얼마나 이어질지 모르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언제 끝날지 모른다는 이유로 너무 급하게 갈 필요는 없다. 오늘이 마지막일지도 모른다..

일상/2020~2022 2021.09.04

퇴근길 반찬가게

퇴근길 반찬가게 어제 저녁으로 샌드위치와 따뜻한 된장국을 먹었다. 반찬가게는 너무 예쁜 동네사랑방 같았다. 웃음과 따뜻한 대화와 삶이 담긴 음식들이 오가는 걸 지켜보고만 있어도 어딘가 치유되는 것같은 느낌이었다. 집에 쌀이 떨어져서 반찬가게에서 산 커리와 크럼블과 채소절임 등등 몹시 맛있다는 걸 이미 알고있는 것들을 냉장고에 쟁여두고 못 먹는 게 못내 아쉬운 오늘!

일상/2020~2022 2021.08.31

곁에 있는 사람

초등학생 즈음 처음 맹모삼천지교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 속으로 크게 공감하지 못했었다. 무슨 얘긴지는 알겠지만, 어떤 환경에 있더라도 스스로의 의지가 더 중요한 거 아닌가하고. 갈수록 그게 무슨 얘긴지 더 알겠다. 어린 아이들은 정말 뭐든 보고 그대로 배운다. 근데, 어른도 마찬가지다. 나를 어디에 놓아두느냐, 어떤 사람들의 곁에 있느냐가 얼마나 중요한지 점점 더 깨달아가는 요즘이다. 돌아보면 사랑했던 사람들에게는 늘 무언가를 배우거나 그들을 닮아갔던 면이 있다. 내가 사랑했던 모든 사람은 내 어딘가에 남아있다. 별로 체감하지 못했는데, 분명 그런 것 같다. 군대에서 헤어졌던 첫사랑은 페미니즘에 관심이 많았다. 내가 20대 초반부터 페미니즘 책들을 접할 수 있었던 건 그의 영향이 가장 컸다. 다들 사랑을..

일상/2020~2022 2021.08.29

구운 채소 오리엔탈 절임 국수

구운 채소 오리엔탈 절임 국수 내가 기억하는 나는 혼자서 먹기 위한 요리에 시간과 정성을 들이지 않는 사람이었기에 요즘의 내 마음과 행동을 바라보고 있자면 "내가 이런 사람이었나?"와 같은 어색함이 있다. 그러나 기억 속의 자아상을 내려놓고 그냥 지금의 마음을 들여다보면 어색하긴커녕 오히려 그 어느 때보다도 더 나로 살고있는 것같은 느낌이다. 그래서 실은 하나도 어색하거나 불편하지 않다.

일상/2020~2022 2021.08.29

채소의계절 팝업식당

채소의계절 팝업식당 김밥과 국수가 잘 어울렸다. 예약제이고 마지막 타임이어서 다음 손님이 없다는 걸 알았기에 느긋한 마음으로 온전히 그 공간과 시간을 즐길 수 있었다. 여기에 오기까지 서로 이어준 인연들에 대해, 오늘의 음식들과 그걸 만든 재료들과 마음에 대해, 서로에게 얼마나 고마워하는지에 대해 긴 이야기를 나누고 서로 책을 주고받는 그 분위기에 나까지 젖어드는 기분이었다. 한없이 천천히 먹으며 읽고 있던 소설 "복자에게"를 읽었다. 그 순간에 느끼던 기쁨과 소설에서 온 슬픔이 섞여 묘한 기분이었다. 정리와 청소를 마치고 잠시 함께 걸었다. 시원한 바람. 나도 모르게 점점 느려지는 발걸음. 버스 정거장에서 보내버린 버스 3대. 잠이 좀 부족한듯 피곤한 날이었지만 그럼에도 잔잔하고 충실하고 기분좋은 하루.

일상/2020~2022 2021.08.28

열두 살 때도 관계는 어려웠다( feat. 복자에게 )

열두 살 때도 관계라는 건 어려웠다. 서른두 살이 된 지금도 마찬가지다. 조금 나아진 게 있다면 이제는 상대방보다는 나를 더 바라보려고 한다는 점이다. 이 문장들 속에 있다 내릴 정거장을 놓쳤다. 조금 당황했지만 다행히 시간이 넉넉해서 제시간에 도착할 수 있었다. 어제 머리와 마음을 복잡하게 만드는 일이 있었는데 요가하면서 아직 생각이 나는 걸 보니 역시 쉽지 않은 일이구나 싶다.

일상/2020~2022 2021.08.28

구운 채소 오리엔탈 절임

구운 채소 오리엔탈 절임과 볶은 토마토 기억하고 싶은 기쁨. 그런 말이 오늘 아침부터 저녁까지 내내 머릿속을 맴돌았다. 행복한 나날이다. 기름에 마늘을 먼저 볶다가 토마토를 잘라 넣고 소금을 약간 쳐서 볶았다. 밥에 얹어서 비비고 그 위에 채소들을 꺼내어서 또 얹었다. 원래도 채소 좋아하지만 채소의 맛이 입 안 가득 퍼질 때마다 이렇게 맛있었나 하는 기분이었다. 퇴근하는동안 밥 해먹을 생각에 설렜고, 해서 먹는 동안도 좋았다. 지금 이 순간은 지금밖에 느낄 수 없으니까, 지금 최선을 다해서 느껴야지! (후식으로는 한살림 요거트에 황도 절임을 얹어먹었다. 너무 맛있어ㅜㅜ)

일상/2020~2022 2021.08.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