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을 들여다봤다.
어젯밤 재인이 내가 나오는 글을 썼다고 하여 들뜬 마음으로 블로그에 들어갔었다. 그러다 나보다 먼저 전남편 이야기를 만났다. 앞의 전남편 이야기를 읽고나니 어쩐지 마음이 복잡해져서 내가 나오는 이야기에 온전히 마음이 집중되지 않는다는 걸 느꼈다.
곰곰이 돌이켜봤다. 그런 나를 느꼈을 때 처음 한 생각은
'이런 감정이 들면 안 돼, 내가 불편해하면 안 돼'라는 생각이었던 것 같다.
그 생각은 이런 생각과 이어져있는 것 같다.
'그에겐 절대 얘기할 수 없어, 들키고 싶지 않아'
그리고 궁금해졌다. '지금 이 마음은 구체적으로 어떤 마음, 어떤 감정이지? 나는 뭐가, 왜 불편한거지?'
글을 다시 읽으며 또 생각해봤다. 다시 천천히 읽어본 글은 처음보다 더 감동적이었다. 나에 대한 마음도 잘 느껴지고, 고마웠다. 그렇지만 불편한 마음도 다 없어지지는 않았고, 처음의 불편한 마음을 없었던 것으로 치고 넘어가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는 안된다는 걸 이젠 안다. 그래서 잠자리에 누워 생각해봤다.
내가 나에게 가장 먼저 해준 말은
'잘못된 감정은 없어. 어떤 감정이든, 나쁜 것도 아니고 못난 것도 아니고 그냥 그런 감정이 들었을 뿐이야' 였다.
그가 묘사한 장면이 생생해서 내 머릿속에서 그가 다른 남자와 끌어안고, 그 남자가 머리를 쓰다듬고, "또 보자"고 얘기하는 게 상상이 됐고, 그게 다정한 연인 사이처럼 느껴졌나보다. 그런 장면은 흔히 사랑하는 연인 사이라고 생각되기 쉬운 장면이니까. 아무리 내가 그와 전남편의 관계가 그런 관계가 아니라는 걸 알고 있다해도, 순간적으로 그런 감정이 드는 것도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일이라고 나에게 얘기해줬다.
그가 예전에 몇명의 남자를 만났건 그들과 무엇을 했건 그런 건 마음에 거의 어떤 동요도 일으키지 않지만, 현재나 미래의 얘기로 오면 조금 신경이 쓰이는 것 같다. 그 일은 과거의 일이 아니라 현재의 일이고, 또 앞으로도 그 장면들이 계속될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에, 너무 소중해서 지금의 나는 손끝도 건드리기 어려운 사람을 누군가 안고 머리를 쓰다듬고하는 일이, 크게 느껴진 거 아닐까하는 생각을 했다.
실제로는 그 전남편분도 아무리 수동적이고 머물러있는 사람이라해도 결국 어딘가로, 삶의 다음 국면으로 넘어갈 테다. 설령 아니라고해도 둘이 매일같이 만나는 것도 아닐 뿐더러 두 사람의 사이와 그 사이에서 주고받는 마음이 나에 대한 애정을 해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안다. 잘 안다고 해도 그 일에 막 기쁜 마음까지는 아직 들지 않지만 그래도 알아서 무척 다행이다. '그걸 안다'는 문장을 글로 쓰면서 웃음이 나왔다. 내가 정말 알고 있다는 게 느껴져서. 그럴 수 있는 건 그가 잘 얘기해주었기 때문이다. 그게 새삼 참 고맙다.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충분히 느끼고 있기 때문에 진동은 금방 잦아들고 괜찮아질 수 있었다.
순간순간 불편한 감정을 느끼는 나도 나고, 그와 전남편의 사이에 대해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나도 나다. 둘 중 하나가 나머지 하나를 부정해야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그와 전남편의 사이를 이해한다고 말하려면 그런 불편한 감정이 전혀 들지 않아야하는 게 아니다. 그런 불편한 감정이 들었다고해서 내가 그와 전남편의 사이를 이해할 수 있다고 했던 말이 거짓말인 것도 아니다. 어쩐지 그 두 가지가 같이 가지 않으면 다른 한쪽을 부정하게 된다. 논리적으로 A명제가 참이면 B명제도 참이고, B명제가 거짓이면 A명제도 거짓이어야한다는 것처럼. "니가 진짜 ~라면 ~해야지"같은. 근데 그렇지 않다. 둘 다 진실이고 둘 다 진심이다. 그리고 나도, 우리 관계도 매일매일 주고받는 이야기로 매일매일 더 단단해지고 있어서 안심이 된다.
그에게 이런 마음을 들키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던 것에 대해서도 고민해봤다. 나는 그에게 좋은 사람이고 싶고, 그를 잘 이해하고 잘 받아들이는 사람이고 싶다. 그리고 실제로 그런 사람이고 싶은 마음만큼 그가 나를 그런 사람이라고 느끼길 바라는 마음이 있다. 나도 이혼해봤기 때문에, 그가 전남편에 대해 갖는 어떤 마음들에 대해 그 맥락이나 결을 더 잘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나의 이혼과 그의 이혼은 다르고, 내가 헤어진 사람에게 갖는 마음도 당연히 같지는 않다. 어떤 사람으로 보이고 싶다는 마음, 그 마음조차도 좋아하는 마음이고 충분히 그럴 수 있는 마음이지만 조용히 걷어내었다. 그런 정도는 숨기는 것도 속이는 것도 아니라고 할 수도 있고, 모든 걸 얘기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솔직함이 좋다고 해서 모든 걸 말해야할 필요는 없고 그래서도 안된다는 것도 많이 느꼈다. 그래서 이 사이에서 중심을 잡기란 언제나 어려운 일이고 이게 어디에 해당하는 일인지도 늘 헷갈리지만, 지금은 이런 얘기를 하고 싶은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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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한편으로, 여러 번 읽은 그 글은 굉장히 감동적이었다. 글의 제목처럼 '큰 사랑'이 무엇인가를 느끼게 하는 글이었다. 나는 그가 모든 것에 해탈한 성인이 아니라는 걸 안다. 그가 지금 함께 사는 가족과의 관계에서 느끼는 다양한 감정들도 얘기해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모습들을 알고 있는 것이 그가 얘기하는 큰 사랑을 어색하게 느끼게 만들기는커녕 오히려 더 잘 느낄 수 있었다. 설령 예수라 하더라도 그가 살던 동네의 어른들에게는 코흘리개 어린 아이로 여겨질 수 있다는 점에서, 그에게 느끼고 있는 어떤 존경심이 참 소중하다. 더 편해지고 더 익숙해지고 손을 잡고, 포옹하는 것까지도 익숙해진다고 해도 그가 존경할 만한 사람이라는 이 마음이, 그 모든 것을 당연하게 여겨버리지 않을 수 있게 하는 여러 마음 중 하나가 되리란 예감이 든다.
글을 다 쓰고 난 지금, 문득 요즘의 나 역시 헤어진 사람에게 많은 우정과 응원의 마음을 갖고 있다는 걸 느끼고 있다. 직접 만날 일은 거의 없고 포옹을 하는 사이도 아니지만, 비슷한 마음은 있다. 만약 나와 헤어진 사람이 이렇게 잘 살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다면 조금 더 짠한 마음도 일지 않았을까하고, 충분히 상상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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