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km를 목표로 뛰었는데, 3.3km를 뛰고 옆구리가 너무 아파서 멈출 수밖에 없었다. 5km를 다 못 뛰었다고해서 딱히 실패한 것도 아니고, 문제는 하나도 없지만 그래도 왜 5km를 뛰지 못했을까 생각해보게 된다. 지난번에는 10km를 목표로 뛰어서 5.8km를 뛰었다.
키로당 5분7초의 페이스면 나쁜 기록은 아니지만 대단히 무리를 했다고 생각이 드는 기록도 아닌데, 결과적으로는 오버페이스다. 5km를 뛰려고 했으면 5km를 다 뛸 수 있는 속도로 뛰었어야하니까. 러닝어플의 실시간 페이스 숫자를 보면서 뛰었는데 그 숫자가 오르락내리락할 때마다 내 페이스도 오락가락해서 오히려 별로였다. 내 몸의 감각으로 느껴야하는데, 오랫동안 달리기를 안해서 아직 감이 없고 페이스를 놓쳤다.
자신의 페이스를 찾는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이번 올림픽 자유형 200m 결승에서 황선우 선수 역시 오버페이스했다. 근데 운동하다가 오버페이스하는 거야 좀 쉬면 된다. 그리고 막판에는 조금 무리가 되더라도 온 힘을 다해서 완주하거나 기록을 단축할 수도 있다. 끝이 정해져 있고, 휴식이 확정되어있기 때문이다.
삶은 그렇지 않다. 일상에서 오버페이스하거나 마지막 힘까지 짜내면서 살면 회복이 되지 않는다. 2018년 정도부터 20년까지의 나는 굉장히 지쳐있었다. 딱히 무엇에 지쳤다고도 할 수 없어서 그냥 산다는 것 자체에 지쳤다고밖에 할 수 없었다. 많은 사람들이 지쳐보인다고 했고, 그냥 넌 지친 것뿐이라고도 했고, 나도 그렇게 느꼈다. 근데 도대체 뭐에 지쳤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래도 지쳤다고 인정한 것만으로도 그땐 다행이었다. 지쳐서 그런다는 말은 그래도 쉬면 나아질 거라는 말이니까. 언제쯤 나아질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래도 희망적인 말에 가까웠다. 21년이 되면서야 다시 미래를 생각하기 시작했고, 다시 의욕이라는 것이 생기기 시작했다.
오늘 뛰고나서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어쩌면 몇 년이나 오버페이스하면서 살다가 다 소진된 상태로 귀촌했었구나, 하고. 10km정도까지는 페이스조절만 잘하면, 조금만 연습하면 금방 완주할 수 있을 것이다. 옛날에 여러번 완주해본 경험이 있어서 안다. 하다보면 어느 정도 거리인지, 지금 어느 정도 컨디션이어야 완주할 수 있는지 몸에 감각이 생긴다. 사는 건, 모르겠다. 끝이 어디인지 모르는 레이스니까. 오늘이 마지막 날이라면 모든 면에서 무리를 하더라도 큰 문제가 아닐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삶은 내일도 이어지고, 언제까지 이어질지 모르므로 모든 에너지를 쏟아부으며 사는 것도 곤란한 지점이 있다. 언제가 마지막 날일지 모르니까 마지막 날을 맞게 됐을 때 남겨둔 에너지를 후회하게 된다고 해도, 내일이 있을 거라 믿고 페이스를 조절하는 게 중요하다.
몸이든, 마음이든 완전히 바닥날 때까지 소진시켜버리고나면, 하루이틀 쉰다고해서 회복되지 않는다. 몸은 그나마 얼만큼 쉬면 되는지 대충 확인이라도 되지만 마음은 어떻게, 얼마나 쉬어야 돌아올지 감을 잡기조차 어렵다. 삶의 끝이 어디인지 알 수 없으므로, 언제까지 계속된다해도 괜찮을 정도의 페이스를 찾아야할지도 모르겠다. 지금은, 딱 좋다.
'일상 > 2020~2022' 카테고리의 다른 글
좋은 마음으로 (0) | 2021.09.09 |
---|---|
가만히 (0) | 2021.09.05 |
내일도 있다는 걸 믿는 사랑 (0) | 2021.09.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