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2020~2022

좋은 마음으로

참참. 2021. 9. 9. 09:48

 

기왕 하는 거 좋은 마음으로 하자는 마음.

우습지만 그 마음을 가장 크게 느꼈던 기억이, 내게는 대학교 1학년 여름방학 때의 풍물패 전수였다. 가기 전까지는 9박10일이나 그 시골에 처박혀서 하루종일 악기만 치고 연습만 한다는 게 잘 상상도 안 됐고, 가기 싫은 마음도 있었다. 귀찮기도 하고, 답답할 거 같기도 하고, 그 좋아하는 게임도 못하고 등등.

근데 막상 거기 도착하는 순간, 내 안의 스위치같은 게 눌리면서 마음가짐이 확 세팅되었다. 어차피 내가 중간에 그만두고 집에 갈 게 아니라면, 어차피 9박 10일동안 여기서 이걸 할 거라면 후회없이, 이 순간에 최선을 다해서, 좋은 마음으로 하자, 굳이 말로 하자면 그 정도 느낌으로의 마음가짐 전환이었다. 정말로 그렇게 했다. 몹시 피곤할 수밖에 없는 일정이었고, 몸이 워낙 힘드니 어쩔 수 없이 힘들어하기도 했으나 그래도 대체로 웃음과 즐거운 마음을 잃지 않았다. 나 말고 다른 사람들도 모두가 힘든 상태라는 걸 너무나 인정하고 있었기에 내 체력이 허락하는 한 어떤 일이든 가벼운 발걸음으로 한발짝 먼저 움직인다는 감각으로 생활했다.

1학기가 지나는 동안에도 선배들이 특별히 날 싫어하진 않았으나, 그 여름전수 이후로 나에 대한 선배들의 인식이 내가 느낄 수 있을 정도로 달라졌었다. 전수 때 "이런 애였나?"하고 다시 보게 됐다는 말을 직접적으로 들은 적도 있었던 것 같다. 그 동아리를 2학년 마치고 군대가기 전까지 활동을 했는데, 나중에도 몇번이나 내가 왜 그 동아리를 그만두지 않고 끝까지 했을까에 대해 생각해보곤 했다. 그만큼 나와는 안 맞는 면도 많은 동아리였다. 다들 그만둘 거라고 하는 것에 대한 반발심과 '오기'로 한 것도 있고, 결국은 거기서 만난 사람들과 관계들이 내 대학생활에서 굉장히 컸기 때문도 있다. 가장 자주 생각했던 이유는 그렇게 두가지였다.

문득 그 여름전수의 기억 때문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그 순간에 최선을 다해 살았다고 기억하는 경험이 부끄럽게도 그리 많지 않다. 그 많지 않은 기억 중에도 그 9박 10일의 기억은 디테일은 기억나지 않아도 꽤 특별하게 남아있다. 나 스스로 최선을 다했다고 알고 있고, 즐거운 시간이었던 데다, 그 모습을 다른 사람들도 좋게 보아주었던 그 경험이 좋은 기억으로 남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러나, 그럼에도 못내 아쉬운 점이 있다면 그 마음가짐을 다시 가진 기억이 많지 않다는 점이다. 그때는 특별히 그런 다짐을 하고 간 것도 아니었는데 그 장소에 도착하자마자 나도 모르게 그렇게 됐었다. 그건 어쩌면 다른 생각들을 스스로 닫고 최종적으로 내 선택을 받아들였던 것이다. 중간에 때려치우고 집에 갈 수도 있다거나, 내가 왜 이걸 하고 있어야하냐거나, 그런 것들을 완전히 닫아버렸다. 이것 외에 다른 선택지는 없다고 받아들여졌다. 다른 선택지들, 다른 가능성들을 열어두고 생각하는 게 나쁜 일인 건 아니지만, 자꾸 선택하지 않은 다른 것이나 이걸 대충 해놓고 그 다음에 할 일같은 것들을 생각하면서 현재에 집중하지 못하는 건 나쁘다. 그걸 머리로는 아는데, 안다고 해도, 안다고 해도 어려웠다. 꼭 이 일이어야만 하나, 다른 건 없나, 꼭 이 사람일까, 정말, 꼭 여기일까, 꼭 지금일까, 그런 의문들이 쉬이 사라지지 않았다.

일상을 소중히 여겨라, 자기 자신을 사랑해라, 그런 말 너무 좋아하는데 그걸 어떻게 하는건지 방법을 모르겠다고 늘 느꼈다. 나도 그러고 싶지, 나도 나 자신을 사랑하고 싶지, 나도 일상을 소중하게 여기고 싶지, 근데 그 말들은 너무나 뜬구름 잡는 것 같고, 그게 어떤 감각인지를 모르는 상태에서는 도무지 알 수 없는 얘기였다.

요즘처럼 오늘이, 지금이 소중한 마음으로 오랜 기간을 살아본 적이 없다. 그런 마음은 아주 잠깐 들었다가 알 듯 하면 다시 떠나버리곤 했는데, 지금은 그때 9박 10일을 시작하는 순간 눌렸던 스위치같은 게 다시 눌린 것처럼, 그 상태가 지속되고 있음을 느끼고 있다. 그때는 그 시골에서 도망칠 수 없으니까, 9박 10일만! 이라는 마음이었지만, 지금은 그런 기한없이도 그 상태가 유지되고 있다. 이 삶은 한번 뿐이고, 오늘도, 지금도 지금뿐이니까, 다른 생각이 전혀 들지 않는다. 이 사람은 이 사람뿐이니까, 다른 사람과 조금이라도, 그 어떤 면으로도 비교하는 마음이 들어설 자리가 없다. 지금 만나고 있는 일, 지금 나누고 있는 대화가 내게 가장 소중한 것이라서 이것 외에 다른 무엇에 대한 생각같은 것이 하나도 들지 않는다. 이제야 지금을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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