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날이 있다. 그냥 오늘만은 무조건 기대고 싶은 날, 한껏 투정을 부리거나 하소연을 해도 어떤 옳은 말도 충고도 조언도 하지 않고 그저 곁에 있어주었으면 싶은 날. 소리내어 얘기해본 적도 있었다. "그냥 오늘은 내가 너무 지쳐서, 오늘만 그냥 그렇게 해주면 안될까?"하고. 그렇지만, 아마 상대방도 그만큼 힘들었기 때문에, 보통 거절당했다.
오늘 내가 그토록 원하던 그 위로를 건넬 수 있는 기회가 있었는데, 놓쳐버린 기분이다. 마음이 아프고, 많이 미안하다. 그 기분 아는데. 내 마음을 설명할 힘조차 나지 않는 그 느낌 아는데. 그걸 봐주지 못했다. 지금의 나는 그 정도는 해줄 수 있는 힘이 있었는데. 내가 하고싶은 얘기, 내가 어려웠던 얘기도 물론 꼭 필요한 얘기고 상담하면서 상담선생님도 얘기해봐야겠다고 했지만, 그 타이밍이 꼭 오늘일 필요는 없었는데! 한편으로는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는데, 오늘이 아니라는 걸. 그 직관을 좀 더 예민하게 느끼고 따르지 못한 게 아쉽다. 우리에겐 내일도 있고 모레도 있으니까, 하루만 참아도 됐는데. 후회가 된다.
아쉬운 마음에, 내가 좀 더 능숙했더라면, 같은 생각을 했다. 의미 없다. 처음이니까 능숙할 수 없다. 이 사람과는 처음이니까. 이렇게 혼란스러워하는 모습도 처음 봤으니까. 조금은 당황하기도 했고, 어색하기도 하고, 어떻게 하는게 좋을지, 어떤 말을 해야할지 알 수 없었다. 그래서 대부분의 시간동안은 별 말도 하지 않았다. 억지로 말을 쥐어짜내어서 좋은 대화가 되기 어렵다는 걸 느끼고 있었으니까.
그나마 이렇게 아는 것도, 결국 그가 얘기해서다. 얘기해줘서 고맙다는 말밖에 할 수 없었다. 앞으로도 계속 관계를 이어나간다면 이런 순간들, 더 어려운 순간들도 찾아올 것이고, 얘기를 할 수 있고 또 주의깊게 듣고 있으니까 더 나아질 수 있다. 어떤 순간에 서로에게 어떤 것을 바라는지 점점 더 배워갈 것이다. 내일이 있어서 다행이다.
그의 사랑을 받으며 마음의 평안을 얻고 있다. 그 평안으로 그가 지칠 때 곁을 지키고 싶다. 그의 존재가 나에게 늘 힘이 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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