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2020~2022

말이 닿는다

참참. 2021. 9. 16. 05:29

 

한때는 내가 말을 잘한다고 생각해서 거기에 취해있던 때도 있었다. 그러나 정말로 말을 잘한다는 것이 무엇일까. 여러 사람 앞에서 적당한 말을 그럴듯하게 꾸며낼 수 있다는 게 말을 잘하는 걸까.

진심이 아닌 말을 잘 하지 못한다. 해도 티가 난다. 나도 굳이, 그렇게 열심히 진심인 척하고 싶지도 않아서 대체로 그런 채로 살아왔다고 생각한다. 그러다보니 할말이 없어 말을 잃는 순간이 오기도 했다. 

말을 해도 닿지 않는다는 기분만큼 나를 쓸쓸하게 하는 것도 별로 없다. 그 느낌이 말을 잃게 만든다. 말을 해도 닿지 않으니까 의미가 없고, 어떤 말을 어떻게 해도 오해만 늘어날 뿐이고 아무 소용이 없다는 무력감이 있었다.

이해라는 건 착각이고 환상이라는 그럴듯한 말로 세상을 냉소해보기도 했다. 어차피 사람이 다른 사람(혹은 자기 자신조차)을 "완벽하게" 이해한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고 오만이니까. 그렇지만 그런 냉소로 싸잡아서 포기해버리기엔 이해 받고 수용되고 있다는 감각은 오늘을 살아가고 내일을 살아낼 힘을 얻는 데 너무 소중한 것이다.

연인 관계에서, 처음 관계를 시작하는 초기에는 서로에 대해 모든 게 궁금하고 할말이 너무 많다가, 관계가 진전되면 될수록 할 얘기도 별로 떠오르지 않고 무슨 말을 해도 오해만 늘어나는 느낌이 들어 점점 더 말을 아끼게 됐던 경험들이 있다. 나는 그걸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긴, 긴 카카오톡 메시지를 쓰면서, 쓰고 나서 보내면서도, 실은 좀 두려웠다. 말하지 않을 수 없어서, 너무 하고싶은 말이어서, 계속계속 말이 나와서, 그와는 무엇이든 대화할 수 있다는 느낌을 받고 있으니까, 보냈지만. 보내고나서도 이 말이 닿을까, 이렇게 긴 메시지를 읽고 싶을까, 무슨 얘길 해도 소용없는 거 아닐까, 이 말들이 과연 내 마음을 전할 수 있을까. 이전에 겪었던 감정들이 올라오면서 어쩐지 불안하고 부끄럽고 두려운 마음도 섞여있었다.

어떤 사람들은 정말로 내 말을 내 의도와는 전혀 다르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걸, 나는 설마 그렇게 느끼고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던 방식으로 그것들을 느끼고, 또 해석하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된 경험들이 있다. 애초에 내가 대화가 통할 거라 기대도 안했던 사람이라면 그러려니 했을 수도 있지만, 그런 사람들과는 말을 섞을 일도 잘 없으니 딴에는 대화가 충분히 잘 통하리라 기대했던 사람들과의 사이에서 그런 경험들을 했다.

대화가 가능하다는 건 굉장히 드물고 귀하고 소중한 일이다. 내가 진심이 되었을 때 나도 모르게 길어올리게 되는 단어들이, 그리고 비언어적인 것들이 합쳐져서, 그게 전해지고 상대가 무언가 느낄 수 있다는 건, 그리고 서로 진심으로 듣고 상대방의 말을 소중하게 최선을 다해서 받아들인다는 건, 절대 당연할 수 없는 일이라는 걸 이젠 너무 잘 안다, 그건 기적이다.

그와는 처음부터 정말로 대화가 된다고 느꼈지만, 내 그런 느낌을 의심하는 마음도 남아있었다. 서로에게 감정이 커지는 초반에는 서로 무슨 말을 해도 좋은 기분만 드는 상태여서 나중에 알고보니 완전히 서로 다르게 받아들이고 있었다는 상황도 있기에 느끼는 대로 다 믿을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전과는 뭔가 다르다는 확신에 가까운 직감이 있었다. 모든 사람은 다 달랐지만, 어딘지 모르게 완전히 다른 것같은,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묘한 직감.

점점 더 알게 되고 느끼게 된다. 이 사람에게는 내 말이 가서 닿는다는 걸. 그 사람의 말도 나에게 와서 닿는다는 걸. 언제까지라도 귀 기울이고 싶은 사람이라는 걸. 대화만으로 내게 이런 느낌을 준 사람은 없었다는 걸 지금의 나는 알 수 있다. 대화만으로 마음을 전할 수도, 느낄 수도 없으니까 그게 너무 어려우니까 스킨십에 집착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다시 한번 들었다.(상담선생님은 나를 겨우 2번 만나고 그걸 느끼신 건가!)

그저 당연한 말로써가 아니라, 정말로 대화를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 내 말이 가서 닿는 사람. 어떤 느낌인지 알 수 없다고 생각했던 '평생을 기다려온 인연'이라는 말이, 잠에서 깨어 그를 생각하던 내 마음 속에 계속 맴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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