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파람이 보내온 택배.
택배를 열어보는데 참 이파람답다는 생각을 했다. 내용물도, 포장도, 엽서도 다. 나는 미안한 것도 많고 힘들었던 것도 많고 그도 분명 그럴텐데, 고맙다고 해줘서 나도 고마워졌다.
헤어진 연인과 괜찮은 관계가 된다는 건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하물며 이혼이라니.
그랬었는데 작년 3월 법원에서 만난 뒤로 만난 적 한번 없어도 먼 발치에서나마 응원하는 마음이다. 잘 살았으면 좋겠다.
옛날에는 내가 없이 잘 사는 모습을 보면 내가 문제였나 싶은 자괴감이나 상대방에겐 내가 크게 의미있는 사람이 아니었구나하는 서운함같은 걸 느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전혀 아니다.
정말 잘 살았으면 좋겠다. 우리가 함께한 시간동안 배우고 성장한 만큼, 자신에 대해 알게 된 만큼. 나도 최선을 다해서 잘 살고 싶다. 소중하고 아름다운 삶이니까.
2. "잘 살아왔어요! 포기하지 않고."
재인에게 그런 말을 들었다. 활자 너머로 전해져오는 그의 목소리와 그 마음에 너무 감동해서 답장을 할 수가 없었다. 잠시 밀려오는 감동에 가만히 젖어있었다.
어딘가 각본같은 걸 준비해두고 있는 것도 아닐텐데 재인과 이야기하다보면 이렇게 감동하는 순간이 자주 찾아온다. 이런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일상적으로 건네는 사람이라서 좋고, 내가 그런 말들에 깊이 감동하는 사람이어서 좋다.
3. 이전까지 관계맺던 방식을 생각해보면 내가 이렇게 말하거나 행동하면 상대가 어떻게 반응할까 어떻게 생각할까를 고민하고 상대의 어떤 말 어떤 행동에 나는 어떻게 반응하는지에 대해 주로 고민했던 것 같다. "날 뭐라고 생각할까?" 라는 생각을 자주 했다.
그게 하루아침에 달라지진 않지만 지금은 그게 전부가 아닌 관계가 있는 것 같다고 느낀다. 말로 설명하긴 어렵지만 관계라는 게 단순히 상대의 반응과 내 반응들이 부딪치는 게 아니라는 느낌이다. 그 이상의 무언가가, 더 함께 쌓아가는 어떤 영역이랄까 그런 것이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날 뭐라고 생각할지 이전만큼 고민하지 않는다. 내 마음이 부끄럽지도 않고 그 마음을 표현했을 때 크게 어긋나게 전달되거나 날 이상하게 보지 않을 거라는 걸 안다. 잘못 전달되더라도 편하게 물어보고 서로 계속계속 고쳐줄 수 있고, 지금 어떻게 느끼고 있는지를 끊임없이 얘기하고 들을 수 있다. 그래서 그의 마음에 대한, 닿을 리 없는 추측같은 건 거의 하지 않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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