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2020~2022

아프지 않고 끝까지

참참. 2021. 9. 19. 15:04

2주만에 달리기를 했는데, 이번에는 아프지 않고 끝까지 달릴 수 있었다. 물론 목표거리를 하향하기도 했지만, 2주 전에 달렸을 때는 이미 2km 지점에서부터 배가 아픈 것을 참고 달렸었다.
2주 전에 생각했던 것처럼 어플의 실시간 페이스는 쳐다보지 않는 편이 좋았다. 그리고 목표거리는 3km로 하향했지만 마음가짐은 10km라도 뛸 수 있을만큼 천천히 뛰자는 마음가짐으로 출발했다.
8월15일 5.8km 러닝의 첫 1km는 4분48초, 9월5일 3.3km 러닝의 첫 1km는 4분50초였는데, 오늘 3km 러닝의 첫 1km는 5분50초였다. 반면 앞선 두번의 러닝에서는 뒤로 갈수록 km당 소요시간이 증가했지만 오늘 러닝에서는 마지막 1km가 4분50초였다. 일단 아무데도 아프지 않았고, 속도를 올리더라도 끝까지 뛸 수 있는 체력이 남아있음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세 번의 러닝을 비교해보면 오늘이 뛴 거리도 가장 짧은 데다 최종 평균속력도 가장 느리지만, 아프지 않고 끝까지 뛰었다는 점에서 가장 만족스럽다. 아마 속도를 조절하면서 달렸다면 1~2km쯤은 더 달릴 수도 있었으리라는 생각이 든다.(앞선 두번의 레이스는 도저히 더이상 뛸 수 없을 때까지 뛰다가 멈춘 식이었다.)
다 뛰자마자 든 생각이, "아, 처음에 천천히 출발해야하는구나"였다. 10km를 목표로 뛸 때는 먼 거리이기 때문에 무리하지 말자는 마음으로 출발했었는데, 5km를 목표로 뛰었던 러닝에서는 지난번에 5.7km를 뛰었다는 기억 때문에 처음부터 5km정도는 가볍게 뛸 수 있는 줄 알고 기록을 의식하며 출발했다.(재밌는 건 실제 기록상으로는 오히려 10km러닝이 첫 1km속도도 가장 빨랐다는 것)
처음에는 몸이 달린다는 행위에 적응할 수 있도록 천천히, 천천히 출발하는 게 좋겠다는 걸 오늘 많이 느꼈다. 그렇게 페이스를 찾은 뒤에 남은 체력에 따라 조금씩 속력을 올려도 충분하다. 체력이 아직 많은 처음의 마음으로 이 정도 속도는 낼 수 있지라는 생각으로 출발하다간 통증이 오기 시작하고 참으면서 뛴다한들 결국 점점 속도도 떨어지고 완주할 수 없다.

달리기에 대한 생각이 어쩌면 관계도 마찬가지 아닐까하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비교적 최근의 연애들을 보면 여러모로 시작하자마자 전력질주를 한 것같은 느낌도 있다. 내일같은 건 별로 생각하지 않았다. 내일 걱정은 내일 하면 되니까, 라고. 근데 내일 걱정을 내일 하려면 내일 쓸 에너지까지 당겨쓰진 말았어야했는지도 모른다.
당연히 서로에게 열정이 가득한 초반부에 상대의 모든 걸 알고 싶고 계속 같이 있고싶고, 그런 건 당연한 거니까 무리를 하더라도 그것마저도 좋고 이때 아니면 언제 또 이런 열정이 생기겠나 싶고 그래서 오늘만 사는 것처럼 그렇게 했었다. 그게 멋지고 낭만적인 건 줄 알았다.
지금은 내일도 사랑하겠다는 마음으로 사랑하는 게 얼마나 더 낭만적인 일인지를 매일 느낀다. 둘 다 보고싶은 마음이어도 서로의 일정과 체력에 너무 무리가 아닌지를 먼저 살핀다. 물론 만나게 되면 헤어지기 아쉬운 마음에 처음 생각보다 한두 시간 더 늦게 귀가하게 되기도 하지만, 그래도 조심하고 있다.
처음 만났을 때 내 오버페이스를 멈춰주었던 일을 생각할 때마다 참 고맙다. 그가 좋아하는 표현처럼 '잔잔하게' 그의 사랑에, 이 관계에 젖어들어가고 있다. 소중하게 만들어나가고 있다. 무리하지 않고, 너무 빠르지 않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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