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낭만을 사랑하고 로맨틱한 걸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스스로 생각해왔다. 근데 최근에 무엇이 낭만적인 것이고 로맨틱한 것인지 점점 더 헷갈리는 기분이다.
낭만은 표준국어대사전에서 '현실에 매이지 않고 감상적이고 이상적으로 사물을 대하는 태도나 심리. 또는 그런 분위기', '감미롭고 감상적인 분위기'라고 풀이하고 있다.
단어의 뜻을 찾다보니 낭만은 프랑스어 '로망(Roman)'을 소리대로 적은 일본식 한자표기라고 한다.(https://www.korean.go.kr/front/onlineQna/onlineQnaView.do?mn_id=216&qna_seq=130183) 즉 낭만적인 것과 로맨틱한 것은 원래 같은 뜻이었던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이 단어들을 사용하는 구체적인 상황이나 맥락의 차이, 약간의 뉘앙스 차이는 있겠지만, 국어사전에는 여전히 동일한 의미로 간주하고 있다.
영어사전에서 romantic을 찾아보면 다음과 같이 나온다.
1. relating to love or a close loving relationship
2. (of people) showing feelings of love
3. beautiful in a way that makes you think of love or feel strong emotions
4. having an attitude to life where imagination and the emotions are especially important; not looking at situations in a realistic way
5. not practical and having a lot of ideas that are not related to real life
크게 나누어보면 우리가 사랑의 종류를 구분할 때 흔히 에로스라고 하는 주로 연인간의 사랑의 감정이나 그런 관계에 관련된 것들을 의미하는 단어로도 쓰인다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결국 나는 그런 로맨틱한 사랑을, 그리고 그런 사랑을 표현하는 말들이나 분위기들을 좋아했던 것 같다. 사랑해서, 연애해서 결혼한다라는 지금으로서는 너무 당연해보이는 문화도 역사적으로 보면 굉장히 최근에서야 주류가 된 것이라고 하는데 그렇다면 당시로서는 그것들은 굉장히 비현실적이고 비일상적인 일이었을 것이다.
나에게도 연애는 가장 대표적인 비일상적인 일이었다. 나는 그동안 나도 모르게 사랑과 연애를 일상의 반대편에 놓고 있었던 것 같다. 사랑하는 사람과 만나는 시간은 일상에서 벗어나는 시간, 그런 식으로 느꼈다. 어쩌면 그래서, 그 관계가, 그 사람이 일상의 영역으로 들어오게 되는 결혼은 내게 슬픈 일이었던 걸지도 모르겠다. 2018년 12월 25일, 찾아보니 하필이면 크리스마스에 페이스북에 썼던(아마 크리스마스가 주는 비일상으로서의 연애의 기분같은 것들 때문이었겠지만) 연애의 비일상성과 결혼의 일상성에 대해 썼던 글이 기억이 나서 다시 찾아서 읽어봤다. 몇번이나 다시 읽다보니 슬픈 마음으로 썼다는 걸 알겠다. 지금은 이혼한 당시 배우자가 그걸 읽고 기분이 좋지 않았던 것도 이해가 된다. 근데 당시로서는 그런 감정들을 잘 이야기나눌 수 없고 잘 싸울 수 없는 관계였기 때문에 그 관계는 계속 더 슬퍼지고 더 무기력해졌다.
알만큼 안다고 생각하면서 평생 그렇게 낭만적인 연애는 비일상적인 것이라 여기며 살아왔는데, 난생 처음으로 비일상적이어서 소중하게 느껴지는 사랑이 아니라, 일상 전체를 소중하게 만드는 사랑을 만났다. 이전까지의 내 세계에서 로맨틱한 말, 로맨틱한 이벤트는 비일상적인 것이었는데, 지금 재인과 함께하는 시간들은 일상적이면서도 로맨틱한 시간이다. 그가 일상적으로 하는 말들이 몹시 로맨틱하게 느껴진다. 로맨틱하게 느껴지는 말이라는 게, 지금 보니 결국 그가 나를 사랑한다는 것을 강렬하게 느끼게 해주는 말이라는 뜻이다. 근데 그런 말은, 보통 일상적이지 않은데, 재인은 그런 말을 일상적으로 한다. 일상적으로 자주 하고 듣는 말인데도 계속 로맨틱하게 느껴진다. 정말 생소하다. 어떻게 이런 게 가능하지, 라는 생각을 자주 한다.
상상조차 해본 적 없는 관계여서 말로 표현하기가 어려웠는데, 그래도 조금씩 조금씩 표현할 수 있는 말들이 늘어간다. 지금 내가 느끼는 것들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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