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392

부모님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아서

아는 사람에게 전해들은 얘기인데, 그의 여동생은 결혼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부터 남편의 폭력을 경험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심지어 임신한 중에도 멈추지 않았고, 아이를 낳아 키우고 있는 최근엔 점점 더 심해졌나보다. 결국 더 이상 참을 수 없게 되어 현재는 이혼을 준비 중이고, 남편은 이혼하기 싫다고 버티고 있다고 한다. 그는 지난 몇 년간 동생이 그렇게 살고 있을 거라곤 상상조차 못했던 상황이고. 그는 어째서 진작 이혼하기로 하지 않았냐는 의문을 느꼈고, 그가 동생의 말을 들어봤을 때 가장 큰 이유는 부모님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아서였던 것 같다고 했다. 그는 그의 부모님들이 특별히 부모를 위해 이렇게저렇게 살라고 심하게 강요하는 타입도 아니고, 여태까지 그와 동생도 이미 여러 번 실망시켜드리면서 살아왔..

일상/2020~2022 2021.05.10

삶이 너를 항상 내게로 되돌려보내주길

아침에 지하철에서 읽을 책을 느긋하게 고를 시간이 없었는데 눈에 딱! 들어온 게 김소연 시인의 마음사전이었다. 좋지, 이것도 한번은 처음부터 다시 읽어보고 싶었지,하고 4호선에서 몇장을 펼쳐읽는데 앞에서 웬 종이가 툭 하고 튀어나왔다. 언제 어디서 받았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 캘리그라피. 왜 이 책에 끼워뒀을까. 다만 문장만큼은 낯이 익는다. 아마 더이상은 읽지 않는, 이젠 이름조차 가물가물한 기욤 뮈소의 소설에서 나왔던 문장이다. 로맨틱하게 느껴지는 이런 문장들을 사랑했었지, 나는. 지금도 나쁘지 않다. 작년의 나는 "나는 더이상 운명적인 사랑같은 건 믿지 않는 사람이구나"하는 생각을 했었다. 지금은, 그게 사랑이 맞다면 그건 운명이 아닐 수가 없지 않을까. 적어도 운명처럼 느껴지지 않을 수가 없지 않..

일상/2020~2022 2021.05.06

이혼의 이유2

내 이혼은 내가 결정한 일인만큼 내 이혼에 대해 나만큼 오래, 많이 고민하고 나만큼 왜 그랬는지 아는 사람은 없다. 절대 쉽게 결정한 일은 아니었다. 당연히, 쉽게 결정할 만한 일도 아니고. 수많은 사람들에게, 그리고 나 자신에게 큰 상처를 주는 일이었다.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선택한 것이다. (그 사람은 너무 좋은 사람이었다. 그 사람이 정말로 나쁜 사람이고 내게 못된 짓을 했다면 차라리 모든 게 더 받아들이기 쉬웠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 사람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니까 반대로 내가 나쁜 사람이어서 이혼한 것처럼 생각이 됐다. 누가 그렇게 생각한다는 게 아니라 나 스스로 그 생각에서 벗어나질 못했다. 어째서 이혼을 하면 최소한 둘 중 한쪽에는 뭔가 문제가 있으니까 그런 일이 생겼다고 ..

일상/2020~2022 2021.05.06

오일파스타와 홈런볼

알리오올리오같은 오일파스타 종류를 좋아했는데 최근 사랑하는 사람 덕분에 오일파스타를 직접 만드는데 재미를 붙였다. 드디어 늘 내게 파스타를 요리해주는 하우스메이트에게 파스타를 해줬다. 취향을 저격하기 위해 마늘기름 낼 때 청양고추를 듬뿍! 맛은 뭐, 나쁘지 않았다. 어마어마하게 넣은 청양고추 덕에 확실히 매콤했다. 다른 하우스메이트를 위해서는 홈런볼을 샀다. 동네 마트에서 46g짜리 홈런볼이 4개묶음 3250원! 당장 8개를 집어들어서 집에 쌓아놨는데 어제 후식으로 4개가 순삭당했다. 에어프라이어 홈런볼은 사랑입니다. ㅋㅋ

일상/2020~2022 2021.05.05

Forgive yourself

계속 몰랐다. 내가 얼마나 나 자신을 용서하지 못하고 있었고 지금도 그러고 있는지. 이미 볼일도 없어진지 오래인 타인을 용서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닌데, 나를 용서하는 건 그보다 더 어렵네. 내가 저질러온 온갖 잘못들, 하지 않았으면 좋았을 말들, 정말 그게 최선이었니, 정말 어쩔 수 없었니라고 끝도없이 돌이켜 의심하고 또 비난하는 나 자신의 목소리로부터.. 도망쳐왔다. 그리고 도망쳤다는 이유로 또 나 자신을 비난했다. 그러나 당장 이길 수 없는 싸움에서 도망치는 건 당연한 일. 맹수를 마주치고 살기 위해 도망치는 초식동물을 비난하는 사람은 없다. 나는 이제야 조금씩 나를 용서하기 시작했다. 나 자신의 가장 악독한 적이 되는 일을 그만두고 평생 데리고 살아야하는 나 자신의 좋은 친구가 되고 싶다.

일상/2020~2022 2021.05.05

이혼의 이유

"실은 한번 갔다왔어요"라고 이혼했단 얘길 꺼내면, 대부분 왜 이혼을 선택하게 됐는지 궁금해한다. 가장 결정적인 이유가 무엇이었는지. 나도 궁금하니까 궁금해하는 것도 이해가 되고, 나도 가능하면 그들이 앞으로 결혼을 선택하거나 결혼생활을 해나가는 데 있어 타산지석이라도 삼을 수 있도록 뭔가 얘기하고 싶은데 아직까지도 다 정리가 되지 못했나보다. 이런저런 이유들이야 많긴 많지만, 단 하나의 결정적인 이유, 단 하나의 핵심이라, 그런 건 어렵다. 다만 요즘 점점 더 느끼는 건, 그동안 내가 맺어온 연인관계들의 어려움들이 대부분 상대방의 문제보다는 내 문제에 기인하고 있다는 깨달음이다. 상대방의 문제야 거의 대부분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결국 상대의 행동이나 말에 대한 나의 느낌과 내 반응, ..

일상/2020~2022 2021.05.02

유리병을 깼다

아침에 닥터노아 치실병을 깼다. 유리병이어서 조심스럽게 치웠다. 다행히 작은 조각들이 별로 없는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요가를 하다 오른손이 따끔! 요가매트에 이렇게 날카로운 부분이 있을 리 없는데, 하고 보니 아까 깬 유리병의 유리조각이 매트에 박혀있었다. 여기까지 튀어서 이 검은색 매트에 박혀있으니 못봤던 것도 당연. 짜증이 안 났다면 거짓말이다. 병을 깼을 때도, 요가하려다 유리조각에 살짝 찔렸을 때도. 그렇지만 살다보면 언제나 이런 일은 있게 마련. 왜 이렇게 부주의해서 병을 깨느냐고 자신을 비난해봤자다. 대신 유리병들을 진열장의 조금 더 안쪽으로 밀어넣기로 했다. 유리조각은 최대한 잘 치워야겠지만, 아무리 눈을 부라리며 유리조각을 찾아헤맨다해도 모든 조각이 치워졌는지는 확신할 수 없다. 예상치 ..

일상/2020~2022 2021.05.02

받아들이다

전에는 똑같이 느끼고 똑같이 생각하고 완전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 때 천생연분이다, 사랑한다고 느꼈던 것 같다. 내내 다름을 인정하고 받아들일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한다고,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지만 어떻게 하는건지 몰랐다. 그러나 세상엔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대놓고 혐오하는 사람들도 넘쳐나므로 나는 그럭저럭 괜찮은 거 아닐까 생각했다. 물론 그럭저럭 괜찮았다고 생각한다. 나름의 최선이었으니까. 멀리 있고 나와 직접 부딪치지 않는 사람들을 욕하지 않는 건 쉬웠다. 가까운 관계일수록 작은 차이도 어떨 때는 쉬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제야 조금은 알 것 같다. 아직도 어렴풋한 느낌일 뿐이지만 사랑하는 사람의 다른 점들이 점점 불편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심지어는 축복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일상/2020~2022 2021.04.26

중쇄를 찍자

어제 하루동안 일드 를 다 봤다. 나름대로 책을 좋아하는 편이고 잠시지만 출판편집자를 꿈꿔봤던 사람이다보니 더더욱 굉장히 흥미로운 얘기였다. 예전에 한국 장르문학 잡지 "판타스틱"을 구독했었는데 몇년 지나지 않아 월간에서 계간으로 바뀌더니 결국 폐간됐었다. 열심히 읽었냐면 사실 나는 기숙사 생활을 하고 잡지는 본가로 받던 고등학생시절이라 못 읽은 작품이 대부분이었다. 그래도 나중에 몰아서 읽어야지하고 생각했고 나름대로 창간호부터 전부 모았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근데 어느날 집에 갔다가 어머니께서 정리하시다가 날짜가 지난 잡지라고 그걸 다 버리셨다는 걸 알게 됐다. 당시 나는 집에 한달에 한번밖에 갈 수 없었으므로 이미 시간이 지나 찾지도 못했다. 지금 생각하면 심했다싶지만 당시엔 창간호부터 폐간호까..

일상/2020~2022 2021.04.19

누구도 날 비웃을 수 없다, 내가 스스로를 비웃지 않는 한

비웃음 당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 다른 사람이 날 어떻게 생각할까에 대해 신경이 많이 쓰이는 편이라고 생각했는데, 거기에서 좀 더 구체적인 자각으로 나아갔다. 누가 날 비웃을까봐 두렵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 두려움을 초등학생 때부터 안고 살았던 것 같다. 남이야 비웃건 말건 소신껏 행동하면 된다고 머리로는 알지만, 실은 누가 비웃을까봐 지레짐작해서 포기하거나 겁먹고 일부러 더 이상하게 행동한 적도 많다. 이 두려움이 어디에서부터 생겨났을까. 음. 그건 아직 명확하지 않지만 적어도 내가 정말 두려워하는 게 어떤 것들인지를 더 구체적으로 파악해나가고 있다는 게 좋다. 문제해결에서 가장 중요하고 어려운 단계는 아마도 정확한 문제의 파악, 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문제가 있다는 걸 알고 문제가 무엇인지 알았다..

일상/2020~2022 2021.04.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