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은 한번 갔다왔어요"라고 이혼했단 얘길 꺼내면,
대부분 왜 이혼을 선택하게 됐는지 궁금해한다. 가장 결정적인 이유가 무엇이었는지.
나도 궁금하니까 궁금해하는 것도 이해가 되고, 나도 가능하면 그들이 앞으로 결혼을 선택하거나 결혼생활을 해나가는 데 있어 타산지석이라도 삼을 수 있도록 뭔가 얘기하고 싶은데
아직까지도 다 정리가 되지 못했나보다. 이런저런 이유들이야 많긴 많지만, 단 하나의 결정적인 이유, 단 하나의 핵심이라, 그런 건 어렵다.
다만 요즘 점점 더 느끼는 건, 그동안 내가 맺어온 연인관계들의 어려움들이 대부분 상대방의 문제보다는 내 문제에 기인하고 있다는 깨달음이다. 상대방의 문제야 거의 대부분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결국 상대의 행동이나 말에 대한 나의 느낌과 내 반응, 내가 그걸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지에 대한 문제가 핵심이었던 것 아닐까싶다.
결국 가장 중요했던 건 내가 나를 사랑하지 않았기 때문, 이라는 게 오늘의 결론이다.
그 전에는 "우리가 더 이상 서로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이혼했다고 생각했다. 물론 그것도 뭐 어느 정도 맞는 말이지만, 그것보다도 더 "내가 나 자신을 사랑하지 않았기 때문"의 문제가 크다고 가면갈수록 점점 더 깨닫는 나날이다.
내가 나를 제대로 사랑하지 않으면 관계에도 그 문제가 계속해서 나타난다.
별 거 아닌 말과 행동에 스스로를 상처 입히고, 그걸 방어하려다 상대방도 상처입히게 될 수도 있다. 결국 내가 원하는 게 뭔지 스스로 제대로 모르니 상대방에게도 제대로 얘기할 수 없고, 상대방도 알 수 없다. 나에게 어떻게 해줘야하는지조차도. 알아서 알아달라고 하는 건 말도 안 된다.
나는 나를 알아가는 일에 30년이나 게을렀다. 지금도 솔직히 아직도 게으르다. 도망치고 있다. 더 강렬한 감정, 의미없는 수다, 멍하니 볼 수 있는 컨텐츠들, 아니면 그냥 잠 속으로. 도망치는 게 나쁜 일이라고 생각하진 않지만, 지금까지 너무 많이 도망쳐온 건 아닌가싶어서, 꼭 도망쳐야만 하는 생존이 급박한 상황이 아니라면
하나씩하나씩 마주보고 가능한 수준까지 고민해보고, 정리해두고 싶다. 나는 어떨 때 행복한지, 어떨 때 불행한지, 어떻게 해야 나를 행복하게 할 수 있는지, 내가 좋은 상태를 유지하는 조건은 무엇인지, 나 자신을 비난하지 않고 나 자신을 사랑하는 데 있어 나에게 특히 잘 맞는 방법은 어떤 것들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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