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392

건너 들은 이야기

재밌는 얘길 들었다. 기록해두고 싶다. 오랜만에 아는 분을 만났는데, 최근 내 또래 아들을 취직시켜서 마음의 짐을 한시름 더신 분이다. 그 분의 친구분 이야기. 그분은 사업하시느라 바빠서 아들에게 그렇게 크게 신경을 못 쓰고 있었는데, 공부를 하도 안 해서 엄마 속을 썩이는 아들이었다고 한다. 그 아들이 고등학교를 다니던 어느 날 갑자기 집에 안 들어오고 연락이 두절되었다고 한다. 당황한 이분께서는 경찰에 실종신고를 냈다. 경찰에서는 실종보다는 가출로 보이는데, 혹시 아드님이 여자친구가 있었던 것 아니냐고 물었다고 한다. 이분은 전혀 몰라서 "없을 거라고!" 했는데 경찰에서 침착하게 다시 한번 알아보시라고. 그래서 학교에 가서 아들의 친구들을 만나보니, 아니 글쎄, 진짜로 여자친구가 있었다는 걸 알게 됐..

일상/2020~2022 2021.05.28

아침에 눈을 떴는데

아침에 눈을 떴는데, 가슴에서 사랑이 샘솟아나는 것같은 느낌이었다. 어제 아침 눈을 떴을 때의 그다지 좋지 않았던 기분을 기억하고 있다보니 내 감정기복에 나조차 놀랄 지경이다. 밖에는 비가 꽤 오고 있었다. 그것도 좋았다. 요가를 하고 팔굽혀펴기를 하고 좋아하는 책을 펼쳐 한두 페이지 정도 가볍게 읽었다. 같이 사는 멋있는 남자가 아침밥을 차려줬다. 화룡점정 참기름까지. 이렇게 좋은 아침이 다 있나.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라는 책도 그가 추천하면서 빌려줬다. 제목부터 마음에 든다. 아직 서문을 읽고 있을 뿐이지만. 내가 아프고 싶어서 아픈 것도 아닌데 아프다는 것을 오히려 미안해하게 만드는 사회에 대해 하고싶은 말, 얼마나 많았을까. 잠깐이 아니라 오랜 기간을 어딘가 아픈 채로 살아간다는 것에 대해..

일상/2020~2022 2021.05.25

에어팟프로를 샀다

에어팟프로를 샀다. 고민은 작년부터 했는데, 이번 고민은 짧았다. 잘 쓰고 있던 헤드폰이 날이 더워지면서 귀에 땀이 차고 거추장스럽게 느껴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마침 작년 5월부터 5만원씩 부었던 적금 하나가 만기가 됐다. 60만원에 이자 6천몇백원. 애초부터 나의 기쁨을 위해 쓰려고 부은 적금이었으므로 스스로에게 이직 기념 선물을 주기로 했다. 선물을 제외하고 '필요하지 않은' 물건은 절대로 사지 않는다는 게 내 나름의 생활방식 중 하나다. 그러나 '필요하다'라고 하는 것은 생각하기에 따라 굉장히 모호한 기준이다. 그 기준을 "없어도 죽지 않는다"쪽으로 두게 되면 사실상 살 수 있는 게 거의 없다. 최근의 나는 기준을 꽤 하향조정한 편이다. 지금의 기준은 "일주일 내로 구체적으로 사용할 일이 ..

일상/2020~2022 2021.05.25

월요일

눈을 떴는데, 도저히 몸을 일으키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아서, 두 시간을 그렇게 누워있었다. 가까스로 몸을 일으킨 건 8시, 거의 지각할 뻔 했다. 그 와중에도 15분요가는 했다. 푸시업은 못해서 집에 돌아와서, 방금, 했다. 그렇게 누워서, 오늘을 온전히 살아낼 수 있을까, 자신이 없다는 생각을 내내 했는데, 다행히 오늘을 잘 살아냈다. 오늘을 잘 살아내면서, 기분도 훨씬 좋아졌다. 아무에게도 아무런 연락도 오지 않는 주말 이틀이었지만, 오늘은 어쨌거나 연락을 주고받은 사람들이 꽤나 있었다. 그렇게 나눈 별것 아닌 이야기들, 혹은 별것인 이야기들이 좋았다. 아니타 무르자니의 이라는 책도 잠깐 들여다봤다. 출근길에, 그리고 점심시간에 밥 먹고 나서 남은 시간동안. 이 책을 빌려줘서, 같은 저자의 첫 책인..

일상/2020~2022 2021.05.24

하루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알았다. 일단 어제보단 낫다는 걸. 회복됐다, 조금은. 지금은 저녁 6시반. 매일 아침마다 하던 15분 남짓한 요가프로그램을, 방금에서야 했다. 오늘 하루는 말 그대로 흘려보냈지만, 이것마저 하지 않으면 내 일상이 너무 무너질 것 같아서. 인간은 무리 짓는 동물이라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아도 괜찮은 사람도 물론 있는 건 알지만, 적어도 나는 그런 사람인 것 같다. 소속감이 함께 가져다주는 어떤 안정감이 내겐 삶의 아주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종종 있다. 근데 그게 내 마음대로 얻을 수 있는 게 아니다. 삶의 시기마다 내가 가장 주요한 소속감을 느끼는 그룹이 있었는데, 이를테면 군생활을 할 때는 아무래도 군대라는 식이다. 대학교 때는 풍물패 동아리가 가장 큰 소속..

일상/2020~2022 2021.05.23

읽지 말 걸

어제는 컨디션이 별로였다. 그래서 가벼운 마음으로 오전에 이 책을 읽기 시작했는데, 결과적으로 컨디션이 좋지 않을 때 가벼운 마음으로 읽을 만한 책이 아니었다. 삶의 의미라니. 그런 걸 심각하게 고민하기엔, 아직 내 상태가 별로 좋지 않다는 것만은 확실하게 알게 됐다. 저자의 물러서지 않고 끝까지 죽음에 직면하고 의미를 탐구하는 태도와 삶은 지금의 나에겐 그저 읽는 것만으로도 너무 버겁게 느껴졌다. 읽지 말 걸. 괜찮은 책을 읽고도 이런 생각을 하게 되는 건 아직 내가 충분히 괜찮지 않기 때문일까. 그는 좋은 삶을 살았다고 생각한다.

일상/2020~2022 2021.05.23

컨디션 난조

어쩐지 컨디션이 좋지 않은 하루였다. 수요일에 너무 무리해서 더위를 좀 먹었는지도, 아니면 그를 힘들게 한 내 넘겨짚는 말, 내 낮은 자존감, 내 실수에 대한 자책과 후회 때문인지도, 아니면 오늘 오전에 읽은 책 때문인지도. 숨결이 바람 될 때, When Breath Becomes Air 36세에 암으로 사망한 폴 칼라니티가 쓴 자전적 소설이다. 읽으면서 계속 감탄했다. 이렇게나 치열하게 살다니, 이렇게나 멋있게 살다니. 자기 자신을 몰아붙여가며. 어쩌면 아직 좀 지쳐있나보다. 아니면 오늘 컨디션이 너무 안좋았나보다. 그의 치열했던 짧은 삶이, 내게 너무 버겁게 느껴졌다. 어쩐지 내 삶이 초라하게 느껴지고 잘못 살고 있는 것만 같은. 차라리 이 모든 것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은, 죽고 싶다는 기분이 문득, ..

일상/2020~2022 2021.05.22

완벽한 하루

어제는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완벽한 하루였다. 아침에 일어나 이불빨래를 해서 볕이 쨍쨍한 밖에 널었고, 하메와 산책을 갔다. 날씨 덕에 풍경이 찬란했다. 돌아와 샤워를 하고 사랑하는 사람과 만날 약속을 잡고 쉬면서 간단히 맡은 것 처리해두고, 가벼운 맘으로 출발! 사랑하는 사람의 일터로 가는 길을 함께 걷다가 예상보다 너무 뜨거운 날씨에 버스를 탔다. 함께 아이스크림을 먹고 그가 일하는 동안 메뉴를 고민해 느긋하게 저녁거리를 사왔다. 선선해진 저녁에 근처 공원에서 손을 잡고 느긋하게 함께 걷다 벤치에 앉아 포장해온 밥을 먹었다. 한적하고 시원한 밤의 공원은 최고였다. 요즘 몸이 찌뿌둥해서 좀 걷고싶다는 생각 많이 했는데 원없이 걸었더니 개운하다. 수요일에 회사를 쉬고 최고의 날씨에 가장 함께 있고 싶은 ..

일상/2020~2022 2021.05.20

농사

주중에 일기예보를 봤을 때는 어째서 주말에만 비가 오는 거냐고 짜증을 냈었다. 근데 오늘 아침 눈을 떴더니 빗소리가 예쁘게만 들린다.(아무래도 금요일날 사랑하는 사람을 오랜만(2주)에 만나서 가벼운 포옹을 한 이후부터 세상이 전보다 좀 더 아름답게 보이고 있는 것 같다는 자가진단) 빗소리를 들으며 가만히 이불을 덮고 있으면 왠지 참 아늑하고 포근하게 느껴진다. 게다가 오늘이 저 비를 뚫고 출근을 하지 않아도 되는 일요일이란 사실이 얼마나 고마운지. 어릴 때도 지금도 비를 좋아하는 편이지만 어릴 때와 다르게 비가 올 때 밖에 나가는 건 아무래도 맑을 때보단 좀 부담스럽다. 두릅에 대한 감사인사를 전하러 전화드렸다가 홍천에서 농사짓는 모습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보셨던 소금쟁이님께 참참은 능력있다고 생각하지만(..

일상/2020~2022 2021.05.16

두릅이 왔다. 두릅파스타!

갑자기 택배가 도착했다. 열어보니 홍천에서 소금쟁이님이 보내주신 두릅! 벌써 몇 해째 이렇게 두릅을 얻어먹고 있다. 말해놓고 매번 못 가는게 민망해서 언제 한번 놀러가겠다는 말도 못하고 그저 감사 인사만 드렸다. 해드린 것도 없는데 이렇게 사랑받고 있다니.. 두릅으로 오일파스타를 만들었다. 두릅을 넣고 해본 건 처음인데, 나쁘지 않았다. 역시 그냥 잘 데쳐서 고추장에 찍어먹는 게 더 두릅다운 것같긴 하지만.ㅎㅎ 스테이크는 같이 사는 위버가 기분 내서 에어프라이어로 뚝딱 해냈다. 올리브오일에 다진마늘 듬뿍 넣고 약불에서 10분 정도 마늘기름을 낸 뒤에 물1L당 소금 15g을 넣은 소금물에 면을 삶은 뒤(삶는 시간은 사용하는 면의 종류에 따라 달라서, 포장에 써있는 안내대로) 체에 면 건져내서 물기 탁탁 털..

일상/2020~2022 2021.05.16

나카시마 미카 - 내가 죽으려고 생각한 것은

나카시마 미카 - 내가 죽으려고 생각한 것은(보쿠가 시노토 오못타노와) 추천받아 알게 된 이 노래를 몇번이고, 몇번이고 듣고 있다. 어제 새벽 늦게까지 듣고도,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또. https://youtu.be/C6st9z_iaao 유튜브 영상 너머로 볼 뿐인데도 내 마음으로 그대로 전해져들어오는 것만 같은 감정이 놀랍다. 읽다보면 한 단어 한 단어 와닿는 가사, 가수로선 치명적인 목소리가 몸 안에서 울리는 희귀병을 안고 온힘을 다해 불러내는 나카시마 미카의 몸동작과 눈빛. 어느 부분에서건 울컥할 수 있지만 개인적으로 '차가운 사람이라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야' '사람의 따스함을 알아버렸기 때문에' 라는 가사가 연이어 나오는 부분에서 특히 눈물이 난다. 그리고.. 노래를 들을 때마다 생각나는 사람. ..

일상/2020~2022 2021.05.16

입사 첫 날

어제 입사 첫 날, 채용담당자님이 회사의 조직도나 주요사업, 각 사람들이 하고 있는 역할, 자리 배치, 앞으로 회사적응기간동안 어떤 식으로 업무가 주어질지 등을 피피티로 설명해주셨다. (이전 회사에선 전혀 없었던 과정..ㅠ) 또 3개월동안 다 읽고 배느실(배운 것 느낀 것 실천할 것)을 제출해야한다며 책 5권을 안겨주셨다. 다섯 권이라니 꽤 많지만ㅎㅎ. 직원들의 성장을 위해 애쓰는 회사라고 했는데 말뿐만은 아니라 나름대로 체계적으로 뭔가 하고있는 것 같아서 나쁘지 않은 기분이다. 뿐만 아니라 임시로 받은 자리가 통로 옆인데다 뒤에 통유리창때문에 여름 되면 덥고 눈부시다며 자리를 안쪽으로 바꿔주신다고 했다. 이전 회사에서 자리를 세번이나 옮겨도 맨날 출입문 옆자리나 뒤로 모든 사람이 지나다닐 수밖에 없는 ..

일상/2020~2022 2021.05.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