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2020~2022

건너 들은 이야기

참참. 2021. 5. 28. 09:57

재밌는 얘길 들었다. 기록해두고 싶다. 오랜만에 아는 분을 만났는데, 최근 내 또래 아들을 취직시켜서 마음의 짐을 한시름 더신 분이다. 그 분의 친구분 이야기.

그분은 사업하시느라 바빠서 아들에게 그렇게 크게 신경을 못 쓰고 있었는데, 공부를 하도 안 해서 엄마 속을 썩이는 아들이었다고 한다. 그 아들이 고등학교를 다니던 어느 날 갑자기 집에 안 들어오고 연락이 두절되었다고 한다.

당황한 이분께서는 경찰에 실종신고를 냈다. 경찰에서는 실종보다는 가출로 보이는데, 혹시 아드님이 여자친구가 있었던 것 아니냐고 물었다고 한다. 이분은 전혀 몰라서 "없을 거라고!" 했는데 경찰에서 침착하게 다시 한번 알아보시라고. 그래서 학교에 가서 아들의 친구들을 만나보니, 아니 글쎄, 진짜로 여자친구가 있었다는 걸 알게 됐단다. 그래서 그 여자친구가 다니던 옆학교에 가서 알아보니 글쎄, 여자친구도 같은 날부터 사라졌다는 게 아닌가?! 왓!?

그래서 결국 그쪽에서 연락을 할 때까지 기다리시기로 결정하고 기다렸더니 몇 달 후에 아들로부터 '엄마만' 나오라는 연락을 받았다. 나가보니 아들이 여자친구와 함께 와서는 그간의 사정을 설명하는데, 아니, 동갑내기 여자친구를 임신 시켰다는 게 아닌가! 왓!!?

알고 보니 둘은 임신사실을 알게 되고 나서 이 일을 부모님께 들켰다가는 분명히 아이를 낳지 못하게 할 거라고 생각했고, 임신중절수술이 불가능해지는 5개월이 될 때까지 함께 도망쳤다는 것이다. 그동안 여자친구는 미혼모 시설에 들어가 지내고, 아들은 숙식이 제공되는 알바자리를 찾아 돈을 벌고 있었다고.

일단 사정은 알겠고 아빠와 상의해보겠다고 하고 집으로 돌아온 이 분은 고민 끝에 이런 결정을 내린다.

"둘이 함께 낳고 싶다고 하는 아이를 못 낳게 하는 건 말이 안 된다. 너희 뜻대로 낳아서 키워라. 대신 너는 학교를 그만두고 검정고시를 준비하면서 돈을 벌어라. 내가 집에 너희 둘이 지낼 수 있는 방까지는 마련해주겠다. 하지만 너희 아이 키울 돈은 너희가 벌어라."

(여자친구쪽 집은 부모님이 이혼하시고 아빠 혼자 여자친구와 그 남동생을 키우느라 경제적으로 이쪽 집보다 더 어려운 상황이었다고 한다.)

그렇게 결정하고 그 두사람을 결혼식을 시켜줬다고 한다. 대박. 결혼식에 교복을 입고 온 친구들이 축가도 불러주고, 했다고. 하하하.

그 뒤 그렇게 공부하기 싫어해서 '쟤가 커서 뭐가 되려고 저러나'라고 생각했던 아들은 검정고시를 패스하고 몸 쓰는 일을 하면서 공부를 계속해 방통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작은 기업에 취직해서 잘 다니고 있다고 한다. 여자친구쪽도 만만치 않아서 이쪽은 방통대 유아교육과를 나와 어린이집 보조교사 등 일을 하면서 아이를 키웠다고.

둘은 현재 둘째까지 낳아서(두 분의 나이는 28살, 첫째가 이미 초등학교 4학년 -> 슬슬 자기 부모님이 몇살에 자길 낳았는지 계산하고 친구들과 비교해볼 수 있는 나이가..) 잘 키우고 있고 둘이 그동안 부모님집에 살면서 착실히 모아 독립(분가)할 만큼의 돈을 모았다고.

(취직할 때 방통대는 한국에서 4년제 대학졸업장 학벌로 잘 안쳐주지만 애 둘 있는 아빠라는 것은 알게 모르게 상당히 책임감있을 것 같은 이미지로 취직시 가산점으로 작용한 거 아니겠느냐는 얘기도.)

내가 듣자마자 너무 좋아서 이거 영화화해야하는 거 아니냐고! 했는데, 실제로도 어느 출판사에서 각색해서 소설로 내보면 어떻겠냐 이런 얘기도 했지만 당사자들이 부끄럽다며 거절했다고 한다. 에고, 아쉬워라.

뭐랄까, 내가 몰라서 그렇지 이렇게 다른 삶을 사는 사람도 얼마든지 있겠지, 하는 마음이 들었달까.

두렵고 당황했을 법도 한데, 아이를 낳고 싶다는 마음과 의지를 하나로 모아 도망친 두 사람도 대단하고, 그 얘길 듣고도 결혼식 시켜준 양가 부모님들도 대단하시고. (물론 내가 알 수 없는 저간의 자세한 사정에서야 과정에 갈등도 있고 싸움도 있고 했었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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