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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지 않고 끝까지

2주만에 달리기를 했는데, 이번에는 아프지 않고 끝까지 달릴 수 있었다. 물론 목표거리를 하향하기도 했지만, 2주 전에 달렸을 때는 이미 2km 지점에서부터 배가 아픈 것을 참고 달렸었다. 2주 전에 생각했던 것처럼 어플의 실시간 페이스는 쳐다보지 않는 편이 좋았다. 그리고 목표거리는 3km로 하향했지만 마음가짐은 10km라도 뛸 수 있을만큼 천천히 뛰자는 마음가짐으로 출발했다. 8월15일 5.8km 러닝의 첫 1km는 4분48초, 9월5일 3.3km 러닝의 첫 1km는 4분50초였는데, 오늘 3km 러닝의 첫 1km는 5분50초였다. 반면 앞선 두번의 러닝에서는 뒤로 갈수록 km당 소요시간이 증가했지만 오늘 러닝에서는 마지막 1km가 4분50초였다. 일단 아무데도 아프지 않았고, 속도를 올리더라도 끝까..

일상/2020~2022 2021.09.19

관계

1. 이파람이 보내온 택배. 택배를 열어보는데 참 이파람답다는 생각을 했다. 내용물도, 포장도, 엽서도 다. 나는 미안한 것도 많고 힘들었던 것도 많고 그도 분명 그럴텐데, 고맙다고 해줘서 나도 고마워졌다. 헤어진 연인과 괜찮은 관계가 된다는 건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하물며 이혼이라니. 그랬었는데 작년 3월 법원에서 만난 뒤로 만난 적 한번 없어도 먼 발치에서나마 응원하는 마음이다. 잘 살았으면 좋겠다. 옛날에는 내가 없이 잘 사는 모습을 보면 내가 문제였나 싶은 자괴감이나 상대방에겐 내가 크게 의미있는 사람이 아니었구나하는 서운함같은 걸 느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전혀 아니다. 정말 잘 살았으면 좋겠다. 우리가 함께한 시간동안 배우고 성장한 만큼, 자신에 대해 알게 된 만큼. 나도 최선을 다해..

일상/2020~2022 2021.09.17

기억되다

좋아하는 사람과 얼마 전 속초에 갔었다. 그리고 그와 다시 한번 속초를 갈 계획을 잡았다. 이번엔 2박 3일로. 시작은 단풍이었는데, 단풍하자마자 설악산을 떠올렸고, 그래서 다시 한번 속초가 됐다. 이전까지 내게 속초라는 도시는, 내 고향의 근처 도시이고 군대에 있을 때 휴가갈 때마다 들러서 시외버스를 타야했던 도시이며 몇몇 고등학교 친구들의 고향 도시였다. 한마디로 크게 의미있는 도시는 아니었다. 아직 2박 3일 여행은 출발도 하지 않았는데 벌써, '속초'라고 하면 사랑하는 그 사람과 여행했고 여행할 도시라고 각인되고 있다. 이제 내게 속초는 그 사람의 도시로 기억될 거라는 게 새삼스럽게 신기한 기분이다. 예쁜 하늘을 보면 그가 생각난다. 별을 볼 때도 그가 생각난다. 특히 금성이나 목성을 볼 때는 더..

일상/2020~2022 2021.09.16

말이 닿는다

한때는 내가 말을 잘한다고 생각해서 거기에 취해있던 때도 있었다. 그러나 정말로 말을 잘한다는 것이 무엇일까. 여러 사람 앞에서 적당한 말을 그럴듯하게 꾸며낼 수 있다는 게 말을 잘하는 걸까. 진심이 아닌 말을 잘 하지 못한다. 해도 티가 난다. 나도 굳이, 그렇게 열심히 진심인 척하고 싶지도 않아서 대체로 그런 채로 살아왔다고 생각한다. 그러다보니 할말이 없어 말을 잃는 순간이 오기도 했다. 말을 해도 닿지 않는다는 기분만큼 나를 쓸쓸하게 하는 것도 별로 없다. 그 느낌이 말을 잃게 만든다. 말을 해도 닿지 않으니까 의미가 없고, 어떤 말을 어떻게 해도 오해만 늘어날 뿐이고 아무 소용이 없다는 무력감이 있었다. 이해라는 건 착각이고 환상이라는 그럴듯한 말로 세상을 냉소해보기도 했다. 어차피 사람이 다른..

일상/2020~2022 2021.09.16

심리상담 3 - 3 (feat. 그림, HTP 검사)

어떻게 지냈냐는 말에, 최근 시작한 연애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 관계가 얼마나 내게 좋은 영향을 미치고 있고, 내가 얼마나 전에 없이 잘 지내고 있다는 느낌으로 최근의 나날을 지내왔는지를. 선생님은 내가 세워나가야할 여러 기준들이 있는데, 그 관계를 통해 연애관은 좋은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 같아보인다고 하셨다. 다른 기준들도 함께 채워나가보자고. 그가 한 말에서 느끼는 어떤 감정들을 얘기하다보니 내가 딱히 트라우마라고 인지하지 못했던 것들이 조금씩은 트라우마로 남아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선생님은 그런 것들은 어떤 관계든 서로 많은 대화가 필요한 부분이고, 앞으로 둘이 같이 얘기해보는 게 좋을 것 같다고, 충분히 그런 대화를 나눌 수 있다고 말씀해주셨다. 그림을 그렸다. HTP검사였다. 집, 나무, ..

일상/심리상담 2021.09.15

태풍

태풍이 온다는 뉴스를 들었다. 아침에 눈을 떴다. 조금은 복잡한 마음이었다. 그에게 메시지를 보낼까, 그를 위해 무언가 하고 싶은 마음을 따라도 되나, 아니면 지금은 그에게 혼자 있는 시간이 필요한가, 그가 홀로 서고 있다는 감각을 간직할 수 있게 지나치게 자주 연락하지 않는 게 나을까. 최근 한동안 매일 눈을 뜨자마자 기쁘고 고마운 마음들이 밀려오는 나날을 보냈다. 그건 정말 멋진 일이다. 그리고 지금도 그 느낌이 남아있고, 앞으로도 그 감각을 쉽게 잊지 않을 거란 걸 안다. 어제 요가에서 선생님은 내가 바다가 되어 밀물과 썰물을 바라보라고 했다. 우리가 속초에서 함께 본 바다를, 파도들을 떠올렸다. 잠에서 깨자마자 일어나는 감정들과 온갖 생각들을 밀물과 썰물을 바라보듯이 바라보았다. 밀려오고, 또 쓸..

일상/2020~2022 2021.09.15

그런 날

그런 날이 있다. 그냥 오늘만은 무조건 기대고 싶은 날, 한껏 투정을 부리거나 하소연을 해도 어떤 옳은 말도 충고도 조언도 하지 않고 그저 곁에 있어주었으면 싶은 날. 소리내어 얘기해본 적도 있었다. "그냥 오늘은 내가 너무 지쳐서, 오늘만 그냥 그렇게 해주면 안될까?"하고. 그렇지만, 아마 상대방도 그만큼 힘들었기 때문에, 보통 거절당했다. 오늘 내가 그토록 원하던 그 위로를 건넬 수 있는 기회가 있었는데, 놓쳐버린 기분이다. 마음이 아프고, 많이 미안하다. 그 기분 아는데. 내 마음을 설명할 힘조차 나지 않는 그 느낌 아는데. 그걸 봐주지 못했다. 지금의 나는 그 정도는 해줄 수 있는 힘이 있었는데. 내가 하고싶은 얘기, 내가 어려웠던 얘기도 물론 꼭 필요한 얘기고 상담하면서 상담선생님도 얘기해봐야겠..

일상/2020~2022 2021.09.14

눈물 나게 행복하다

어렸을 때는 '눈물 나게 행복하다'는 말이 이상했다. 행복한데 왜 눈물이 날까하고. 근데 살다보니 종종 그런 느낌을 받게 될 때가 있긴 하다. 그건 참 이상한 기분이다. 고등학교때 졸업하면 해보고 싶었던 것들이 있었는데 에버랜드 가서 T익스프레스 타보는 거랑 번지점프, 스카이다이빙 해보는 거였는데 아직도 셋 중 하나도 못해봤다. 셋의 공통점은 다 중력에 몸을 맡기고 떨어지는 행위라는 것이다. 그런게 하고싶어지는 마음을 들여다보면서 스스로도 "어지간히 탈출하고 싶나보다" 생각할 정도였다. 비교적 최근까지도 억지로 혼자 가서 해볼 것까진 아니지만 기회만 된다면 해보고 싶다는 마음을 갖고 있었던 기억이 나는데 문득 지금은 크게 그런 것들을 해보고싶은 마음이 없어졌다는 걸 깨달았다. 그런 자극이 없어도 내 일상..

일상/2020~2022 2021.09.13

좋은 마음으로

기왕 하는 거 좋은 마음으로 하자는 마음. 우습지만 그 마음을 가장 크게 느꼈던 기억이, 내게는 대학교 1학년 여름방학 때의 풍물패 전수였다. 가기 전까지는 9박10일이나 그 시골에 처박혀서 하루종일 악기만 치고 연습만 한다는 게 잘 상상도 안 됐고, 가기 싫은 마음도 있었다. 귀찮기도 하고, 답답할 거 같기도 하고, 그 좋아하는 게임도 못하고 등등. 근데 막상 거기 도착하는 순간, 내 안의 스위치같은 게 눌리면서 마음가짐이 확 세팅되었다. 어차피 내가 중간에 그만두고 집에 갈 게 아니라면, 어차피 9박 10일동안 여기서 이걸 할 거라면 후회없이, 이 순간에 최선을 다해서, 좋은 마음으로 하자, 굳이 말로 하자면 그 정도 느낌으로의 마음가짐 전환이었다. 정말로 그렇게 했다. 몹시 피곤할 수밖에 없는 일정..

일상/2020~2022 2021.09.09

오버페이스

5km를 목표로 뛰었는데, 3.3km를 뛰고 옆구리가 너무 아파서 멈출 수밖에 없었다. 5km를 다 못 뛰었다고해서 딱히 실패한 것도 아니고, 문제는 하나도 없지만 그래도 왜 5km를 뛰지 못했을까 생각해보게 된다. 지난번에는 10km를 목표로 뛰어서 5.8km를 뛰었다. 키로당 5분7초의 페이스면 나쁜 기록은 아니지만 대단히 무리를 했다고 생각이 드는 기록도 아닌데, 결과적으로는 오버페이스다. 5km를 뛰려고 했으면 5km를 다 뛸 수 있는 속도로 뛰었어야하니까. 러닝어플의 실시간 페이스 숫자를 보면서 뛰었는데 그 숫자가 오르락내리락할 때마다 내 페이스도 오락가락해서 오히려 별로였다. 내 몸의 감각으로 느껴야하는데, 오랫동안 달리기를 안해서 아직 감이 없고 페이스를 놓쳤다. 자신의 페이스를 찾는다는 게..

일상/2020~2022 2021.09.05

가만히

내 마음을 들여다봤다. 어젯밤 재인이 내가 나오는 글을 썼다고 하여 들뜬 마음으로 블로그에 들어갔었다. 그러다 나보다 먼저 전남편 이야기를 만났다. 앞의 전남편 이야기를 읽고나니 어쩐지 마음이 복잡해져서 내가 나오는 이야기에 온전히 마음이 집중되지 않는다는 걸 느꼈다. 곰곰이 돌이켜봤다. 그런 나를 느꼈을 때 처음 한 생각은 '이런 감정이 들면 안 돼, 내가 불편해하면 안 돼'라는 생각이었던 것 같다. 그 생각은 이런 생각과 이어져있는 것 같다. '그에겐 절대 얘기할 수 없어, 들키고 싶지 않아' 그리고 궁금해졌다. '지금 이 마음은 구체적으로 어떤 마음, 어떤 감정이지? 나는 뭐가, 왜 불편한거지?' 글을 다시 읽으며 또 생각해봤다. 다시 천천히 읽어본 글은 처음보다 더 감동적이었다. 나에 대한 마음도..

일상/2020~2022 2021.09.05

심리상담 3 - 2

이번 상담은 그동안의 결혼을 포함한 연애와 사랑에 대한 이야기만으로도 시간을 오버해서 썼다. 최근의 나는 11년동안 첫사랑이라 불렀던 그 연애에 대한 애도를 드디어 다 끝마쳤다는 기분을 느끼고 있고, 그 모든 연애를 통틀어서도 가장 파괴적이었던 올 상반기의 연애 또한 끝마쳤다. 처음의 연애부터 가장 최근 연애까지의 내 모든 사랑의 경험들을, 어떤 맥락들과 다양한 관점으로 바라보면서 정리하고 기준을 세우고 있다. 기준이라고는 없던, 그저 끌리는대로 마음이 가는대로 사랑하던 것에서 조금 더 나를 알고, 내 기준을 가지고 누군가를 만나야한다는 생각을 이혼하면서 많이 했었다. 중간중간에 그게 얼마나 중요한지 더더욱 느끼게 되는 경험들도 계속 있었다. 마지막의 그 가장 극단적인 경험은 강렬했던만큼 나는 과연 어떤..

일상/심리상담 2021.09.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