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2020~2022 291

면접 후기

면접을 보고 왔다. 프로젝트 매니저로 서울시에서 위탁 받아 운영하는 청년공간을 관리하고, 공간 이용자들과 관계를 맺고 또 이용자들끼리 관계를 맺을 수 있도록 돕는 일을 주로 할 사람을 뽑고 있었다. 그밖에도 공간을 꾸민다거나 행사를 기획한다거나 근처 지역에 있는 이웃 공간들, 단체들과 계속 관계를 유지하고 함께할 수 있는 일을 찾는 일도 한다. 또한 중요한 사업운영 목표 중 하나는 이용자들이 단순히 이용하는 사람으로 남는 게 아니라 주체성을 갖고 스스로 운영에 참여하게 하는 것이다. 그를 통해 많은 청년들이 자기 삶의 현장에서, 또한 정치적으로 단순히 어떤 대상이 아니라 자기 목소리를 스스로 낼 수 있는 주체임을 인식하게 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나는 받아들였다. 지난번 채용설명회 비슷한 행사에 갔..

일상/2020~2022 2020.02.13

새 학기 시즌

새 학기를 맞이하는 시즌이 됐다. 다이소 얘기다. 오늘 아침엔 비가 조금씩 내리는 가운데 노트 종류가 한가득 들어왔다. 다이소 상하차 아르바이트하면서 가장 무거운 물건이 A4용지, 노트같은 종이류와 세제 등의 액체류다. 번외로 아령, 자갈, 모래, 흙(각각 어항, 고양이화장실용, 화분이나 텃밭용 등이다) 종류도 있다. 종합장과 노트와 A4용지와 스케치북들을 나르면서 지금 시급 만원 어치를 넘어서는 노동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하는 생각을 했다. 또 충격적일 만큼 많이 들어온 물건이 앉은뱅이 책상/밥상이다. 다른 말로 하면 접이식 좌식테이블 정도 된다. 이 물건이 많이 들어오면 힘든 이유가 일단 이 녀석 진열되는 층이 지하다. 우리 매장은 지하 1층부터 4층까지 총 5개 층으로 이루어져있는데, 유일하게 지하..

일상/2020~2022 2020.02.12

14년의 시간을 지나

2006년 4월 27일, 나는 아버지를 떠나보냈다. 교통사고였다. 그때 내가 17살이었는데, 31살이 됐다. 내가 태어났을 때 아버지가 29살이셨을 테니까, 그 나이도 지났다. 이젠 너무 오랜 시간이 지나서 아련하게 먼 기억으로만 남아있다. 처음엔 마지막으로 얼굴 봤을 때 더 따뜻한 말이라도 건네지 못했던 걸 많이 후회하기도 했었는데, 지금은 솔직히 일상을 살면서 아버지를 떠올릴 일이 그렇게 자주 있지도 않다. 살아계신 어머니께도 여전히 잘해드리는 것 하나 없는 불효자식이다. 그가 살아있었다면 지금, 우린 어떤 대화를 나눴을까? 내가 기억하는 그는 참 따뜻한 사람이었다. 사람 좋은 사람, 법 없이도 살 사람, 그의 친구나 주변 어른들도 종종 그런 식으로 그를 추억하는 걸 본다. 경제적으로는 그리 좋지 않..

일상/2020~2022 2020.02.10

영국식 설거지

영국식 설거지 영국사람들은 싱크대에 물을 어느 정도 받은 다음, 거기에 세제를 풀어놓고 밥 먹고 나온 그릇을 거기 담가둔다. 그리고는 수세미로 거기 담겨 있던 그릇을 닦으면서 그 물로 그냥 헹궈서 꺼내놓는다. 그게 끝. 흐르는 물로 헹구거나 하지 않냐고 했더니, 영국은 물값이 겁나게 비싸서 대부분이 그렇게 물을 최소로 쓰는 설거지를 한다고 한다. 한국인 친구가 와서 설거지 해주겠다고 한국식으로 설거지했다가는 니가 지금 얼마를 낭비하고 있는지 아냐는 소리를 들을 것이란다. 물값이 비싼 게 좋은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사람들이 물을 낭비하지 않게 하는 데는 최고의 방법일 수는 있겠다.ㅠㅠ

일상/2020~2022 2020.02.09

빅피쉬

백만년만에 뮤지컬이란 걸 봤다. '빅피쉬'라는 작품이었다. 같이 본 사람은 팀버튼 감독의 영화에 비해 아쉬웠다고 하는데, 나는 영화를 안 봐서 비교할 길이 없었다. 사실 지난밤에 5시간도 못 잤고, 새벽에 다이소 알바하고나서 낮잠도 못 자고 저녁 8시에 보러 가는 바람에 약간 졸리긴 했지만 그럼에도 배우들이 신나게 노래 부르고 춤 추니까 나도 신나서 재밌게 봤다. 스토리는 고전적인 남성 위주의 서사(남자주인공들은 세계를 향해 나아가고 아들은 아빠 삶의 진실과 업적을 찾아 떠나고 사랑하는 여자를 얻기 위해 뭐든지 하고, 여자주인공들은 사랑을 약속했던 남자가 지멋대로 떠나도 그저 기다리거나 이미 약혼자가 있는데도 남자가 와서 넌 내 운명이라고 다짜고짜 데려가버린다거나(?))라는 점이 아쉽긴 했지만. 며칠 뒤..

일상/2020~2022 2020.02.09

변화

최근 두 달 사이, 삶의 많은 부분을 바꾸었다. 사는 곳, 일하는 곳, 함께 사는 사람, 만나는 사람들까지, 내 삶을 둘러싸고 있던 거의 모든 것을. 분명히 그런 외부환경들의 변화는 내 삶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그렇지만 근본적인 변화를 만들어냈냐고 하면 선뜻 대답하기 어렵기도 했다. 여전히 이전의 삶에서 반복하고 있던 생각의 패턴과 익숙한 감정들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습관적인 생각과 습관적인 반응, 습관적인 감정들은 내 몸과 마음의 상태를 이전의 삶과 크게 다르지 않게 만들고, 그 생각 패턴들과 몸으로 따지면 호르몬 반응 등이 계속 이전과 비슷한 감정상태, 우울과 무기력에 나를 머무르게 하고 이전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결정들을 내리게 한다. 그 결과 계속 나를 과거에 살게 만든다. 더 이상 과거에 살..

일상/2020~2022 2020.02.07

태어나서 처음으로 혼자 보낸 설날

태어나서 처음으로 아주 조용하게 혼자서 설날을 보냈다. 그래도 아침밥은 하우스메이트 기민과 함께 먹었다. 기민이 본가에 가고 난 뒤에는 큰아버지, 큰어머니와 고모 대신 사촌 누나와 형에게 전화해서 이혼하기로 결정한 사실을 알렸다. 다행히 본인들도 결혼해서 아이를 키우고 있는 사촌 누나와 형은 모두 내 결정을 지지해주었다. 평소 그렇게 자주 연락하는 사이도 아니니 몹시 갑작스러운 소식이었을텐데도 내 결정에 대해 의문이나 판단을 하지 않았다. 니가 충분히 고민하고 내린 결정일 거라 믿는다고, 니가 제일 속상할 거라고 마음 잘 추스리라고 말해주었다. 어르신들께는 잘 얘기해두겠다고도. 어머니도, 동생도, 친구들도 많은 사람들이 따뜻하고 걱정 어린 시선으로 응원하고 지지해주어서, 뭐라 말할 수 없을만큼 힘이 된다..

일상/2020~2022 2020.02.05

기분이 널을 뛴다.

기분이 널을 뛴다.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는데 페북에 글을 남기는 건 내려갔을 때가 더 많은 것 같기도. 지금은 올라가고 있다. 사실, 정말로 내려가있던 오랜 기간동안엔 페북에 글조차 못 썼다. 시선도 신경 쓰이고 그럴 에너지조차 없고 내 안에 아무런 말도 떠오르지도 않았고, 여러모로. 우울한 글 읽는 거 피곤한 일인 거 아는데 읽어주시고 심지어 반응까지 해주시는 페친분들이 계셔서 너무 고맙다. 어제 맛있는 피오니 딸기케익도 먹었고, 같이 사는 사람들 넘 좋고, 그냥, 아직 이런저런 감정도 느끼고 그러는 게 오늘은 즐겁게 느껴진다. 여전히 처리해야할 일도 있고 귀찮고 돈도 없지만ㅋㅋ 참, 책을 더 읽어야겠다. 그 생각을 했다. 적어도 책을 읽는 동안엔 거기에 빠져들 수도 있고 좋은 책은 확실히 조금씩 나..

일상/2020~2022 2020.02.05

나의 종교

나의 종교 매주 1편, 나는 어떻게 하면 글을 쓸 수 있을까? 이런 고민을 몇 번이나 반복해왔는지 모른다. 거의 열 번은 넘었을 다짐과 길어야 두세 달이었던 내 꾸준함이 정말 싫었다. 그나마 돈을 받고쓰니까 좀 더 써지긴 했지만 그조차도 1년을 못 넘겼다. 최근 만난 사람 중에 평생 아무 종교도 갖고 있지 않다가 20대 중반에 누구의 소개도 없이 스스로 성당 문을 열고 들어가 천주교 신자가 된 사람이 있다. 그 얘기를 본인 입으로 듣는데도 신기했다. 부모님이 스무 살 이전에는 어떤 종교도 강요하지 않겠다는 철학을 갖고 계셨단다. 그 사람이 현재 다니고 있는 성당에서도 다들 독특한 케이스라며 놀라워한다는 얘기도 덤으로 들었다. 하긴, 대개는 누군가의 손에 이끌려 오니까 말이다. 어느 일요일에 그 얘길 돌이..

일상/2020~2022 2020.02.05

미안함

미안함 그 사람은 결국 눈물을 보였다. 상의할 사람도 없이 혼자서 일하고, 그 와중에 자기 월급을 자기가 걱정해가며 일을 해야하는 그런 직장을 다니고 있다고 했다.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저 말없이 그의 어깨에 한손을 살짝 올리곤, 자꾸만 나오는 한숨을 너무 큰 소리가 나지 않게 내쉬었다. 내가 일하고 활동했던 이 단체는, 애초부터 수익구조가 선명한 기업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다수의 후원자들로부터 후원금을 매달 거둬들이는 그런 조직도 아니었다. 청년들이 우리끼리 모여서 우리 스스로를 돕자는 취지와 철학, 운영원리는 모두 훌륭했으나, 그걸 현실화시키는 과정에서 모든 게 이상대로 될 수만은 없었다. 결국 단체가 안정적으로 운영되려면 돈을 받고 상근으로 일하는 사람이 필요한데, 그 사람에게 적절한 월급을..

일상/2020~2022 2020.02.02

온 몸이 가렵다. 긁어서 피부가 빨갛게 부어올랐다.

어제 저녁으로 떡볶이를 먹었는데, 그거 때문인지는 알 수 없지만 만 하루가 지나도록 온 몸이 가려워서 계속 긁고 있다. 긁은 곳들은 피부가 다 빨갛게 올라오고. 뭐가 문제지? 30년이나 이 몸을 데리고 살았는데 아직도 내가 뭘 먹고 이렇게 온 몸이 가려워지는지 감을 전혀 못 잡고 있다는 게 새삼 안타깝다. 내가 아니라면 아무도 알려줄 수 없는 나 자신과 미래에 대해서 어떨 때는 의사든, 누구든 넌 이러하고 저러하니까 이렇게 하고 저렇게 해! 라고 말해줬으면 하고 간절히 바라게 된다.

일상/2020~2022 2020.01.28

예언

예언 이 글을 다 읽고 나면 당신은 행복한 생각에 잠길 것이다. 혹시 '자기 실현적 예언'이란 말을 들어보았는가? 이는 예언의 영향으로 인해 발생하지 않을 수도 있었던 일이 예언대로 되는 현상을 말한다. 즉, 예언 자체의 힘으로 그 예언의 내용이 실현된다는 것이다. 유명한 부자나 주식투자 전문가가 이 회사의 주가는 오를 것이라 얘기한다면, 많은 사람들이 그 말을 듣고 해당 주식을 살 것이며 결과적으로 주가는 올라갈 것이다. 유명한 패션 디자이너가 올해에는 분홍색이 유행할 것이라 말한다면 당장 의류 생산업체들부터 분홍색 옷을 잔뜩 생산하기 시작할 것이다. 소비자들도 그 말을 듣고 분홍색 옷을 사는 경향이 시작된다. 나중엔 정말로 상점에는 분홍색 옷들만 잔뜩 팔고 있고 주변에도 그런 옷을 입고 다니는 사람이..

일상/2020~2022 2020.01.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