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4월 27일, 나는 아버지를 떠나보냈다. 교통사고였다. 그때 내가 17살이었는데, 31살이 됐다. 내가 태어났을 때 아버지가 29살이셨을 테니까, 그 나이도 지났다. 이젠 너무 오랜 시간이 지나서 아련하게 먼 기억으로만 남아있다. 처음엔 마지막으로 얼굴 봤을 때 더 따뜻한 말이라도 건네지 못했던 걸 많이 후회하기도 했었는데, 지금은 솔직히 일상을 살면서 아버지를 떠올릴 일이 그렇게 자주 있지도 않다. 살아계신 어머니께도 여전히 잘해드리는 것 하나 없는 불효자식이다. 그가 살아있었다면 지금, 우린 어떤 대화를 나눴을까?
내가 기억하는 그는 참 따뜻한 사람이었다. 사람 좋은 사람, 법 없이도 살 사람, 그의 친구나 주변 어른들도 종종 그런 식으로 그를 추억하는 걸 본다. 경제적으로는 그리 좋지 않았다. 굳이 사업을 하고 싶어해서 꽤 여러 개의 사업을 했다가 망했다. 그 망한 사업들 때문에 가족, 친척은 물론이고 그 밖의 온갖 곳에 많은 빚을 졌음은 물론이다. 너무 어렸기 때문에 난 그 자세한 사정이나 금액이 어느 정도였는지는 몰랐고, 지금까지도 제대로 알지 못한다.
그렇게 빨리 가버리지 않았다면 우린 어떤 관계가 됐을까? 가끔 궁금하다. 아마 내가 기억하는 그라면 성인이 된 아들과 술 한 잔 하면서 사는 얘기 나누는 걸 좋아하지 않았을까 싶다. 내게도, 동생에게도 친구같은 아버지였다. 어렸을 때 그와 닮았다는 얘기를 주변에서 정말 많이 들었다. 그땐 얼굴만 닮았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그때 내가 기억하는 아버지의 모습과 지금 내가 사는 모습이 은근히 비슷한 구석이 있는 것도 같다.
아버지는 한 직장을 꾸준히 오래 다니는 것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남 밑에 있는 것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나도 그런 면이 없지 않다. 그는 사람 만나는 걸 좋아했던 것 같다. 나도 그런 면이 있다. 더 오랜 시간 지켜봤다면, 더 닮은 점들을 발견할 수도 있었겠지만, 이제 그는 없다. 그와 술 한 잔 나누면서 인생에 대해 얘기해보지 못한 게 제일 아쉽다. 뭔가 재밌는 얘길 들을 수 있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자꾸만 든다.
나는 아마도, 이번 생에 누군가의 아버지가 될 일은 없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는 분명 좋은 사람이었지만, 냉정하게 봤을 때 가족의 생계를 책임진 것은 어머니였다. 그에게 책임감이 전혀 없었다는 식으로 생각하진 않지만, 어쩌면 결혼생활 내내 내가 그랬듯이 그도 그 책임을 버거워하진 않았을까 싶다. 그리고 몇 년 전의 내가 아직은 책임질 자신이 없는 아이를 낳지 않기로 결정했던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이젠 주변에 점점 아버지가 된 또래들도 많아지는데, 가끔은 꼭 지금은 없는 그에게 묻고 싶다. 아버지가 된다는 건 당신의 삶에서 어떤 일이었는지.
그를 생각할 때마다 결국 마지막에는 어머니를 떠올리게 된다. 아직 살아계실 때 어머니께는 좀 더 잘하고 싶은데, 그게 참 잘 안 된다. 아이도 없고 이혼도 했으니, 취직을 해서 돈을 좀 모으게 된다면 어머니와 해외여행이라도 한번 다녀오고 싶다. 다른 사람들이 부모님 모시고 여행 다녀오는 걸 보니, 다들 힘들었다곤 하지만, 나도 30대마저 다 보내기 전에 한번쯤은 그런 일을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많이 들었다. 우리가 언제까지 이 세상에 함께 있을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