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2020~2022

미안함

참참. 2020. 2. 2. 18:10

미안함

그 사람은 결국 눈물을 보였다. 상의할 사람도 없이 혼자서 일하고, 그 와중에 자기 월급을 자기가 걱정해가며 일을 해야하는 그런 직장을 다니고 있다고 했다.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저 말없이 그의 어깨에 한손을 살짝 올리곤, 자꾸만 나오는 한숨을 너무 큰 소리가 나지 않게 내쉬었다.

내가 일하고 활동했던 이 단체는, 애초부터 수익구조가 선명한 기업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다수의 후원자들로부터 후원금을 매달 거둬들이는 그런 조직도 아니었다. 청년들이 우리끼리 모여서 우리 스스로를 돕자는 취지와 철학, 운영원리는 모두 훌륭했으나, 그걸 현실화시키는 과정에서 모든 게 이상대로 될 수만은 없었다. 결국 단체가 안정적으로 운영되려면 돈을 받고 상근으로 일하는 사람이 필요한데, 그 사람에게 적절한 월급을 주려면 많은 돈이 필요하고, 그런 돈을 벌 방법을 알지 못하는 악순환이 반복됐다.

창립자들은 나름대로 서울시나 각종 재단으로부터 지원사업을 받아보기도 하고, 다양한 시도를 했다. 그러나 그런 지원사업을 통해 매년 연명해나가는 것이 옳은 방향인가 의문을 갖는 멤버들도 많았다. 우린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할 것인가를 두고 매달 끝도 없는 토론을 벌였지만, 답은 없었다.

귀촌한다고 떠났다가 돌아와보니, 여전히 상황은 비슷했는데 새로 들어와서 일하는 사람이 거기에 있었다. 반짝이는 아이디어와 열정, 책임감까지 갖춘 사람인 것 같은데, 1년도 되지 않아 벌써 지친 것같아 보였다. 그런 안 좋은 일터를 만들어놓았다는 죄책감에서, 나도 자유로울 수가 없었다. 아니, 내가 제일 잘못한 사람인 것만 같아서 너무 미안했다. 그 미안함이 나로 하여금 뭔가를 하게 만든다. 조금이라도 돕고 싶은 마음에 내 시간과 마음을 내게 된다. 김소연 시인이 얘기한 대로, 미안함이란 종종 잘 살고 싶어지는 근거가 된다는 걸 갈수록 더 자주 느끼고 있다. 지금부터라도 미안함이 아니라 함께 최선을 다했다는 뿌듯함을 남기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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