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2020~2022 291

고양이

어제 빨래를 집 안으로 들이려고 마당에 나갔다가 고양이를 만났다. 어두운 밤색과 검은 줄무늬가 섞여있는 털을 지닌 그리 크지 않은 녀석이었다. 한쪽 귀가 살짝 잘린 것같은 게, 아마도 TNR(길고양이를 데려다 중성화수술 시켜서 다시 풀어주는 것)을 한 것으로 보였다. 날 보더니 멈칫하면서도 멀리 도망가진 않고 내가 위험한 인간인지 가늠하는 것처럼 날 곰곰이 지켜봤다. 하우스메이트 G는 자주 오는 녀석 중 하나라고 했다. 우리집 앞 마당 한켠에는 작은 텃밭이 있는데, 텃밭 끝에는 작은 퇴빗간을 만들어두고 집에서 나오는 음식물쓰레기를 거기에 버린다. 어쩌면 고양이들이 거기서 먹을 걸 찾곤 하는지도 모르겠다. 집에 있던 국물용 멸치를 꺼내 하나를 들고 있었다. 관심은 보이면서도 선뜻 다가오지 못하기에 앞에 던..

일상/2020~2022 2020.02.25

가진 적 없었던 것들

최근 예상치 못하게 일자리 제안을 받았는데, 너무 갑작스러워서 잠깐 고민을 했었다. 그러다 결국 해보자는 쪽으로 결정을 했는데, 그러고나니 막상 제안해줬던 쪽에서 연락이 끊겼다. 두려움도 컸고, 출퇴근도 멀고, 아직 제대로 배웠다고 하기도 어려운 분야라 걱정이 많았지만 못하게 되니까 또 아쉽다. 마치 가지고 있다가 뺏기기라도 한 것처럼 억울한 기분이다. 그런 기분을 느끼는 나 자신이 우습게 느껴졌다. 실은 지금도 아무 이유도 없는 수많은 호의를 입으며 살고 있다. 프로그래밍을 가르쳐주는 형도 나름의 목표와 얻는 게 있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아무 댓가도 없이 가르쳐주고 있고, 일자리까지 적극적으로 소개해주고 있는 것이다. 나와 같이 사는 사람들도, 만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로 내게 그런 호의를 베풀 이유가 딱..

일상/2020~2022 2020.02.23

이로 생일

2월 20일, 어제는 조카 '이로'의 생일이었다. 2017년 2월 20일에 태어나, 어제 세번째 생일(한국나이 네 살, 만으로는 세 살이 되는)을 맞이한 세상에서 제일 사랑스러운 우리 이로. 사진으로나마 생일을 맞아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니 기뻤다. 삼촌이 해줄 건 없고, 생일을 기념하여 글이라도 남긴다. 이로야, 이로가 있어서 이로의 엄마, 아빠, 할머니는 물론이고 삼촌도 얼마나 기쁜지 몰라. 삼촌은 이로가 어떤 삶을 살더라도 응원할 준비가 되어있어. 사실 지금은 삼촌이 좀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고 이로 보러 자주 갈 순 없지만, 이로의 엄마가 삼촌에게 보내주는 응원만큼 나중에 삼촌도 이로와 이로네 가족에게 힘이 되어줄 수 있게 열심히 살거야. 이로는 멋진 엄마, 아빠, 할머니를 갖고 있으니까 사실 걱정..

일상/2020~2022 2020.02.21

프립, 라이프코치와의 대화

한 시간동안 1대1로 대화하면서 자존감을 체크하고 '마음근육 기르기'를 한다는 프립에 참여했다. 사실 어떤 사전정보도 없이 만나서 한 시간동안 대화만으로 엄청난 걸 찾아내는 것이야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일이라 생각해서 그렇게까지 큰 기대는 없었다. 하지만 꽤 괜찮은 시간이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그걸 집중해서 듣고 적절한 질문을 던지고 내가 막연하게 고민하는 것의 핵심을 같이 찾아가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또 그런 고민에서 나온 무기력함이나 답답함, 무거움을 좀 덜어낼 수 있는 팁같은 것, 어떤 식으로 생각해볼지에 대해서 툭툭 던져주시는 것도 좋았다. 얘기하면서 느낀 건, 내가 아직 내가 원하는 핵심적인 가치나 의미, 이건 포기할 수 없다고하는 그런 게 뭔지 스스로 잘 모르고 있다는 ..

일상/2020~2022 2020.02.21

나는 언제 모욕감을 느끼나

글쓰기 모임 '미지'의 이번주 공통글감으로 모욕감이라는 주제가 나왔다. 사실 이번 공통글감에 대해서는 글을 쓰지 않으려고 했다. 딱 떠오르는 경험이나 소재가 없기도 했고, 그렇다고 그걸 찾자니 내가 그 모욕감의 경험을 애써 기억해서 다시 겪고 싶지 않았다. 부정적인 감정을 최대한 줄이고 의식적으로 더 나은 감정상태에 있는 일상을 만들고자 하는 요즈음이라 거기에 영향을 받고 싶지 않았다. 내가 충분히 괜찮은 상태에 있다면 별 문제가 없지만, 불안정한 상황에서 내가 강렬하게 부정적인 평가를 당했거나 기분이 다운되는 걸 느꼈던 경험을 불러온다면 현재의 몸과 감정도 거기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어서 피하려고 했다는 말이다. 여전히 그 생각은 같지만 어제 오랜만에 만난 지인과 사주, 타로, 그리고 내 꿈에 대한 ..

일상/2020~2022 2020.02.20

사주, 타로 그리고 꿈

나는 과학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다. 그런 성향 때문인지 사주나 타로 등에 오랫동안 전혀 관심이 없었다. 지금도 사실 내가 그걸 직접 배워볼 생각은 별로 크게 하지 않는다. 그러나 최근 이러한 것들에 대해 많이 재평가하고 있다. 그러한 것들을 맹신하거나 신봉하는 것은 문제가 될 수 있지만,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즐거울 뿐만 아니라 유익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미래는 물론이고, 자기 자신조차 잘 모른다. 사주나 타로, 그밖에도 혈액형별 성격, 별자리, 관상, MBTI, 애니어그램 등 이런 것들을 많은 사람들이 열렬히 공부하는 것은 자신을 더 알고 싶어서라고 생각한다. 무엇 하나 확실한 것 없는 삶 속에서 적어도 나 자신을 좀 더 알고 거기에 맞춰 살 수 있다면 좀 더 낫지 않을까 기대한다. ..

일상/2020~2022 2020.02.19

갑작스럽게 찾아온 기회

프로그래밍을 가르쳐주던 형이 갑작스레 '사람 구해달라는 데가 있는데 해볼래?'하고 얘기했다. 사이트를 관리하는 업무인 것 같은데, 문제는 구체적인 게 하나도 없었다. 구체적인 업무가 뭔지, 소속팀이 어딘지, 어느 정도 규모의 기업인지, 어떤 분위기인지, 근무시간은 언제부터 언제인지, 야근은 얼마나 하게 될지, 월급은 얼마나 주는지, 근무를 언제부터 시작한다는 건지, 어떤 능력이 필요한지 하나도 몰랐다. 회사 이름과 홈페이지, 사무실 주소 정도는 나와서 검색해보니 집에서 가려면 적어도 1시간 20분이 걸리는 곳이었다. 어떻게 타도 지하철 3개 호선을 거쳐야하는 곳이라니 시작도 하기 전에 출퇴근할 걱정부터 됐다. 게다가 31년동안 건드려본 적도 없는 분야에 다른 사람 추천으로 들어가서 내가 업무를 제대로 소..

일상/2020~2022 2020.02.18

어느 일요일 일기

어느 일요일, 누군가 밥을 해준다는 것 어제 일요일엔, 일주일 내내 하우스메이트들이 해주는 밥만 얻어먹은 것 같아서 이번에야말로 내가 뭔가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전날 스윙댄스 뒤풀이 갔다가 버스가 끊겨서 우산도 없이 비를 맞으며 따릉이를 타고 자정이 넘어 집에 왔으나 제일 먼저 일어났다. 처음엔 김치찌개를 생각했는데, 김치냉장고도 없는 우리 집에는 김치가 그리 많지가 않다. 지금 그나마 있는 김치들도 담근지 얼마 되지 않은 것들이라 찌개에 적당하지도 않았다. 뭐 할까 고민하며 냉장고 속을 뒤져보니 브로콜리와 버섯 몇 종류가 보이고 계란이 잔뜩 보였다. 결국 메뉴는 프리타타로 결정! 프리타타는 서양식 계란찜같은 요린데 기본적으로 계란찜이다보니 그리 복잡할 건 없어보였다. 최근에 요리를 가장 많이 하는 하우..

일상/2020~2022 2020.02.17

프로그래밍

요즘 프로그래밍을 공부하고 있다. 아직 막 시작한 초보단계이긴 한데, 나름으로는 앞으로 먹고 사는 일까지 고려한 진지한 마음이다. 중학생이던 시절 꿈이 프로그래머였던 적이 있다. 오랜 시간동안 손도 대본 적 없이 살아온 완전한 미지의 영역이지만 해보고 싶었던, 동경하던 일 중 하나였던 것만은 진심이다. 나는 머리로는 창조적인 일, 새로운 걸 만드는 일을 하고싶다고 생각해왔지만 냉정하게 돌아보면 그래본 적이 별로 없는 것 같다. 일단 손재주가 그리 좋은 편이 아니라서 손으로 뭔가를 직접 만드는 건 자신이 없다. 시도해본 적이 없는 건 아니다. 뜨개질로 목도리도 떠봤고, 동네에서 목공 수업 들으며 의자도 만들어봤다. 내가 해온 일 중 그래도 뭔가 새로운 걸 만드는 일이라고, 창조적인 일이라고 할만한 것은 글..

일상/2020~2022 2020.02.15

내가 돈이 없지, 낭만이 없냐

해피 발렌타인, 이라며 동생이 아침부터 용돈을 보내왔다. 예나 지금이나 늘 모자란 나를 챙겨주고 아껴주는 어른스러운 동생이다. 난 요즈음 어쩌다 내 동생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존경하는 사람'이라고 얘기하곤 한다. 처음 그런 느낌을 받았을 땐 나조차도 낯설었는데, 갈수록 더 진심이 되어가고 있다. 나와는 달리 그는 정말 어른이다. 난 발렌타인같은 건 별로 신경쓰지 않지만 다이소에서 일하다보니 모르고 지나갈 수는 없었다. 근데 발렌타인 선물을 받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다음주면 조카(동생의 딸)의 생일인데, 발렌타인도 챙겨주는 동생을 위해 난 해줄 수 있는 게 별로 없는 것 같아 마음이 영 좋지가 않다. 동생에게 받은 용돈으로 뭘 할까 하다가 꽃을 샀다. 사실 그게 아니어도 사려고는 했는데, 용돈이..

일상/2020~2022 2020.02.14

익숙한 우울, 익숙한 무기력

채용면접에서 한번 탈락한 것 뿐인데, 또 다시 익숙한 우울감과 익숙한 무기력감에 빠져들려고 하는 나를 지켜본다. 어떻게 보면 거의 우울하길 원하는 사람처럼 그 감정에 젖어들려고 하고, 위로받고 싶어하고 있다. 그리고 많이들 위로해줬다. 위로가 나쁜 건 아니지, 그건 너무 좋지만. 그렇지만 달라지고 있는 나도 바라본다. 그런 나를 바라보고 있고, 거기에 필요 이상으로 빠져들지 않으려고 하고. 익숙한 사고의 흐름, 패턴을 끊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나도 역시 있다. 갖고 싶은 습관을 습관으로 만들자. 어제와는 다르게 오늘을 살자. 생각도, 행동도. 그곳에 채용이 되지 않았다고 해서 내 삶이 실패한 것도 아니고, 내가 실패자인 것도 아니다. 당연한 소릴. 내겐 아직 더 시간이 필요한가보다. 아직은 그렇게 긴 시간..

일상/2020~2022 2020.02.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