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바라는 글쓰기/귀농귀촌 이야기 23

작은책18.2월) 잠자는 미꾸라지 잡기

잠자는 미꾸라지 잡기자연농 배우는 참참 나와 짝꿍이 다른 곳이 아닌 홍천으로 오게 된 직접적인 계기는 개구리님의 자연농 배움터, 지구학교였다.지구학교는 개구리님이 자연농을 배우고 싶어하는 사람들을 위해 2015년부터 시작한 모임이다. 한 달에 한 번씩 개구리님 논밭에 모여 자연농 농사가 실제로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직접 해보면서 배운다. 농사 방법뿐 아니라 자연농스러운 삶, 자연농의 철학에 대해서도 배우고 서로 이야기를 나눈다. 지구에 인간으로 태어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할까 함께 고민하는 시간이다.한 해 농사를 마무리하고 겨울을 맞이하면서 지구학교에서 다 같이 추수감사제를 했다. 각자 올해 수확한 것이나 직접 만든 것들을 가져와 수확을 마친 논 위에 상을 차려놓고 고마움을 전했다. 논에서 함께 수확한 쌀..

작은책 18.1월) 체험 시골 알바의 현장

체험 시골 알바의 현장 자연농 배우는 참참 홍천에 와서 먹고 살려니 그동안 이런저런 알바를 했다. 서울에서도 해본 적 없는 편의점 알바부터 농사일 품팔이, 진달래 따기 등. 짝꿍은 지금도 초등학교의 셔틀버스 동승보호자로 일하고 있다. 아직 못 해봤지만 적극 제안 받았던 것으로 옥수수 수확, 포장하는 일과, 잣 줍기, 인삼밭 품팔이 등도 있다. 이번엔 절임배추 알바를 제안 받았다. 사람이 모자라니 당장 내일부터 해달라는 부탁을 받고 그 다음날 바로 갔다. 김장철에 약 2주에서 3주 정도 한살림생협에 납품할 절임배추를 만드는, 즉 배추를 소금에 절여서 포장하는 일이었다. 갔더니 커다란 통 여섯 개에 배추가 잔뜩 들어있었다. 그 전날 소금물에 담가놓은 배추들이다. 나는 초짜인 만큼 배추 나르는 일을 했다. 내..

작은책 17.12월) 청첩장처럼 찾아온 서리

청첩장처럼 찾아온 서리 자연농 배우는 참참 축복할 결혼이 많은 가을이었다. 주말마다 서울이며 강화도며 부지런히 돌아다녔다. 그러느라 시월이 어떻게 지나가는지 몰랐다.그러던 어느 날, 연애를 오래 한 친구의 청첩장처럼 된서리가 왔다. 오겠거니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막상 그 날이 오니 아무래도 좀 놀라게 된다. 해마다 서리를 보아왔을 텐데 그런 적이 있었나싶을 만큼 낯선 느낌이었다. 넓은 밭에 배추 조금 빼고는 참말 남김없이 쓰러졌다.그토록 줄기 굵고 잎 넓던 토란도 거무죽죽해져서는 맥없이 축 처져있었다. 다들 맛있다던 ‘토란대’는 결국 맛을 못 보게 됐다. 짝꿍과 부랴부랴 토란을 캐고 무르지 않은 토마토들을 초록색 녀석들까지 다 땄다. 큰 동아박 세 개와 씨를 받기 위해 남겨두었던 오이들도 거두었다. 고라..

작은책 17.11월) 골치 아픈 집짓기

골치 아픈 집짓기자연농 배우는 참참(김진회) 우리 마을엔 집짓기가 한창이다. 집 하나 달랑 있던 그 골짜기에 도토리님이 지내는 컨테이너가 봄에 들어왔고, 집 두 채가 뚝딱뚝딱 올라가고 있다. 우리에게 농사지을 땅을 빌려주신 모래무지님네와 그 아래 부엉이님네다. 모래무지님네는 ALC블럭(경량콘크리트벽돌), 부엉이님네는 나무로 만드는 집이다. 모래무지님은 그 골짜기에 땅을 구입한 지 3년 정도 됐고, 집에 대한 고민도 오랫동안 했다. 흙, 나무, ALC블럭, 샌드위치 판넬 등 집을 무엇으로 지을 것인지부터 많이 조사하고 함께 의논도 했다. 집이란 것에 대해 다 같이 공부하는 시간이었다. 게다가 집 짓는 데는 그것 말고도 고민하고 해결해야할 문제가 어마무시하게 많다는 걸 이번에 어렴풋하게나마 알게 됐다.첫째는..

작은책 17.10월) 군대에 있을 때보다 삽질을 더 많이 했다

군대에 있을 때보다 삽질을 더 많이 했다 자연농 배우는 참참 지난 한 달 동안 가장 많이 한 일은 삽질이었다. 물길 때문이다. 우리 밭에 들어온 물들이 나갈 길을 못 찾아 그대로 눌러앉아버렸다. 도시에선 뭔가 큰 문제가 생기기 전에는 물에 대해 생각할 일이 없었다. 늘 수도꼭지만 틀면 나오니 소중함을 느끼기가 어려웠다. 시골에 와서 농사를 지으니 달라졌다. 비가 오는 날을 기다려 그 전날 씨앗을 심어야 좋고, 비가 안 오면 어떻게든 물을 주어야 한다. 물 나오는 곳이 어디에 있느냐에 따라 농사의 난이도가 드라마틱하게 바뀐다.하필 시골에 오자마자 심한 가뭄이 날 반겼다. 마을 상수원에 물이 말라 긴급회의가 열릴 정도의 가뭄이었다. 어디 한번 물의 소중함을 느껴보라는 것이었을까. 스프링클러도 없고 부지런한 ..

작은책 17.9월) 굶어죽게 내버려두질 않는다

굶어죽게 내버려두질 않는다 자연농 배우는 참참 나름대로 농사를 짓는다고 짓는데, 아직 우리 밭에서는 영 나오는 게 없다. 장마 뒤에 드디어 오이가 좀 나오기 시작했을 따름이다.(그래도 수박, 참외가 커지니 뿌듯해하면서 8월말에 온다는 친구에게 수박 있으니 사오지 말라고 큰소리도 친다) 더 웃긴 것은 우리가 심어서 키웠는데 수확할 줄을 모른다는 거다. 싹이 났을 땐 풀이랑 구별을 못하고, 이젠 다 키워놓고 어떻게 먹는지도 모르는 황당한 초보 농부다. 대표적인 게 오크라, 토란, 야콘이다. 토란은 딱 한번 먹어봤고, 오크라는 여기 오기 전엔 듣도 보도 못했던 녀석이다. 많이 먹어본 작물들이라고 잘 아는 것도 아니다. 먼저 자란 애호박이 하나 있었는데 언제 따야하는 지 몰라 계속 두는 바람에 애호박인데 씨를 ..

작은책 17.8월) 초보 농부 한 방 먹다

초보 농부 한 방 먹다자연농 농부가 되고 싶은 참참 농사를 너무 만만하게 봤나보다. 요즘 아주 큰코다치고 있다. 첫째는 가뭄! 올 봄에도 어마어마했다. 작년까지는 가뭄을 뉴스로 보고 알았던 도시 사람이었는데 오자마자 겪는 봄 가뭄에 땅과 마음이 타들어갔다. 비는 도무지 내릴 생각을 않고, 와도 찔끔 오니 여태껏 말라있던 땅이 젖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마을엔 스프링클러가 여기저기서 돌아갔다. 언니네텃밭 애진 언니도 요새 저렴한 스프링클러도 많다며 이런 가뭄엔 어쩔 수 없다고 걱정해주실 정도였다. 그럼에도 우리는 보다 못해 몇 번인가 물을 준 게 다였다. 밭 가까이에 사는 사람도 없고 쉽게 물을 줄 도구나 방법도 없다는 핑계로 거의 내버려뒀다.우리가 배우고 있는 자연농 방식은 가뭄에 강한 편이다. 땅을 갈아..

작은책 17.7월) 커피 한잔 하구 가

“커피 한 잔 하구 가”자연농 농부가 되고 싶은 참참 홍천 시골마을에 와서 커피 한잔 하고 가라는 말을 전보다 더 자주 듣는다. 나는 커피를 잘 안 마신다. 허나 어찌나 손놀림이 재빠르신지 내가 그 말을 미처 꺼내기도 전에 벌써 믹스커피 서너 개가 뜯겨있기 일쑤였다. 그럴 땐 난감하기도 하지만 그 한마디로 많은 인연이 이어지니 우리에겐 마법의 주문이기도 하다. 자꾸 듣다보니 이제는 손님을 대접하고 함께 이야기 나누고 싶어하는 마음으로 느껴져 고맙고 정감도 간다. 게다가 토씨 하나 틀리지 않은 그 말을 여기저기서 듣는 게 퍽 재미있다.이 말을 가장 많이 한 건 ‘언니네텃밭’ 생산자이신 애진 언니(이 공동체에선 서로를 언니라고 부른다)다. 여태까지 들를 때마다 거의 빼놓지 않고 그 말씀을 하셨다. 그렇게 함..

모든 생명은 다른 생명에게 그 삶을 빚지고 있다

편의점 일은 밤늦게 끝나고 낮엔 날씨가 워낙 덥다. 그런 핑계로 어젠 안 가고 오늘은 그나마 좀 서둘러 아침에 밭에 갔다. 중간에 하루 안 갔을 뿐인데도 오랜만에 온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1. 수박 싹우리가 심어놓고서는 싹이 나오지 않았다고 생각해선지 다른 풀들과 구분을 못해선지 놓치고 잊어버린 수박 싹이 이렇게 나와 있었다. 싹이 나오자마자 옆에 풀들을 정리해준 녀석들과 비교해보면 줄기가 더 높이 자란 뒤에 잎이 나왔다. 키가 더 큰 풀들 사이에서 조금이라도 햇빛을 받아 살아보겠다고 까치발을 들고 서있는 듯했다. 저 힘없는 줄기를 저기까지 들어 올린다고 얼마나 힘들었을까.텃밭농사를 해본 사람들은 모종을 심어본 경험이 많을 텐데, 모종을 밭으로 옮겨 심으면 그 녀석들이 뿌리가 활착되기 전까지는 좀 비실..

작은책 17.6월) 이러려고 시골 왔지!

이러려고 시골 왔지!자연농 농부가 되고 싶은 참참동생 부부네 집들이에 갔다가 농부 다 됐다는 소릴 들었다. 날씨 얘기가 나오자 내 입에서 가뭄 걱정이 썩 자연스럽게 흘러나왔던 거다. 나한테 그런 소리를 들어본 게 생전 처음인 가족들이 요샛말로 빵 터졌다. 직장 대신 논밭에 나가기를 한 달째, 가장 달라진 것 중 하나가 날씨를 보는 느낌이다. 서울에 있을 땐 일기예보를 우산이나 두꺼운 옷을 챙기기 위해 봤다. 잘 보지도 않았고, 봐도 오늘과 내일 정도나 봤다. 당시의 내게 비라는 것은 좀 귀찮지만 미세먼지를 씻어줘서 좋은 그런 것 정도? 지금은 적어도 일주일치는 챙겨본다. 특히 비 소식을 오매불망 기다린다. 바람과 햇볕도 매일 밖에서 직접 느끼니 민감해진다. “좋은 날씨”라는 건 사람이 아니라 작물의 발아..

작은책 17.5월) 나는 어쩌다 홍천에 오게 됐나

나는 어쩌다 홍천에 오게 됐나(작은책 5월호에는 '진달래 따기, 엄청난 도전!'이란 제목으로 실림)자연농 농부가 되고 싶은 참참홍천에 온 지 2주쯤 됐는데 시골이야기를 쓰자니 적이 멋쩍다. 이삿짐 나르고 정리하는 동안엔 밥도 중국집에서 먹고 실감이 잘 나지 않았는데, 밖에 나가 지천에 널린 봄나물 캐다 밥을 해먹으니 이제 참말 시골에 온 것 같다. 먹을 수 있으리라곤 상상도 못했던 쇠뜨기라는 풀을 곁지기가 발견해 일본 유튜브 영상까지 찾아가며 요리를 해먹었다. 꽤 맛있어서 요즘 곁지기는 뱀밥(쇠뜨기 생식줄기의 다른 이름) 노래를 부르고 있다. 그밖에도 냉이, 달래, 쑥, 파드득나물, 꽃다지, 개망초 등 먹을 수 있는 나물들이 마구마구 돋아나고 있다. 일단 봄에는 굶어죽기 어려울 거 같아 다행이다.많은 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