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바라는 글쓰기/귀농귀촌 이야기

작은책 17.8월) 초보 농부 한 방 먹다

참참. 2017. 7. 29. 23:36

초보 농부 한 방 먹다

자연농 농부가 되고 싶은 참참

 

농사를 너무 만만하게 봤나보다. 요즘 아주 큰코다치고 있다. 첫째는 가뭄! 올 봄에도 어마어마했다. 작년까지는 가뭄을 뉴스로 보고 알았던 도시 사람이었는데 오자마자 겪는 봄 가뭄에 땅과 마음이 타들어갔다. 비는 도무지 내릴 생각을 않고, 와도 찔끔 오니 여태껏 말라있던 땅이 젖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마을엔 스프링클러가 여기저기서 돌아갔다. 언니네텃밭 애진 언니도 요새 저렴한 스프링클러도 많다며 이런 가뭄엔 어쩔 수 없다고 걱정해주실 정도였다. 그럼에도 우리는 보다 못해 몇 번인가 물을 준 게 다였다. 밭 가까이에 사는 사람도 없고 쉽게 물을 줄 도구나 방법도 없다는 핑계로 거의 내버려뒀다.

우리가 배우고 있는 자연농 방식은 가뭄에 강한 편이다. 땅을 갈아 뒤집어엎는 일을 하지 않아서 땅 속의 습기와 다양한 생명활동이 계속 살아있기 때문이다. 또한 밭을 늘 풀로 덮어두어서 물이 쉽게 증발하지 않는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비가 오지 않는데 땅이 마르지 않을 도리가 없다. 올해는 가뭄이 심해 비료 듬뿍 주며 농사지으시는 분들조차도 성장이 더디고 수확량이 적다고 난리다. 이런 상황이니 비료도 안 쓰면서 물조차 열심히 주지 않은 우리 밭에서 작물들이 자라기가 어려울 수밖에.

바로 옆에서 농사짓는 도토리님의 옥수수나 토마토, 오이 등은 우리 밭에 있는 아이들보다 훨씬 잘 컸다. 토질의 차이도 거의 없고, 싹도 오히려 더 늦게 틔웠었는데 어떻게 된 걸까? 도토리님은 매주 한번 이상은 듬뿍 물을 주셨고, 우린 그러질 않았다. 양평에서 비슷한 방식으로 농사를 배우는 고슴도치님도 벌써 오이를 수확해서 먹고 있다고 한다. 우린 아직 오이 구경도 못했다. 그분은 하루도 빼놓지 않고 물을 주셨단다. 할 말이 없었다. 게다가 나는 초보인 것도 모자라 애정도 부족했는지 물을 하루 중 언제 주는 게 좋은지 고민조차 못해봤다. 알고 보니 물은 해가 지고 난 다음 주는 것이 가장 좋다고 한다. 한낮에는 금방 증발이 되어버려서 흡수할 수 있는 물도 적고, 해가 강한 낮에 잎에 물방울이 묻는 것도 안 좋기 때문이란다. 저녁에 물을 주니 확실히 더 잘 크는 게 느껴졌다고 말씀 나누시는 걸 들었다. 나와 다를 게 없는 초보들이었는데 매일 물은커녕 아예 밭에 안 가는 날도 있던 나는 조용히 고개만 끄덕거릴 수밖에 없었다. 원래 밭도 아니었던 집 앞 마당에서 비료 한번 크게 주지 않고도 먹을 것을 키워내고 있는 분은 매일 아침저녁으로 작물들에게 사랑의 말을 속삭인다고 했다. 그 얘길 듣고 있자니 난 아직 한참 멀었다.

가물 때 특히 생기기 쉬운 벌레도 있는데, 이번에 멸강나방 애벌레가 떼로 찾아와 모두 깜짝 놀란 일이 있었다. 논에 못 보던 벌레가 있네 하고선 하룻밤에 벼의 3분의 1이 모습을 감췄다! 벼 한 포기에 많게는 일고여덟 마리까지 붙어서 눈 깜짝할 새에 마구 갉아먹는 걸 보고 있으면 무서울 지경이었다. 한꺼번에 하도 많은 애벌레가 오니 어찌할 수 없어서 결국 이틀에 걸쳐 손으로 잡아내었다.

개구리님도 처음 겪어보는 일이라 하셨고, 다른 사람들도 벌레를 이렇게 많이 죽인 것은 처음이라 다들 생각이 많았다. 누구 할 것 없이 다른 생명들에 최대한 해를 덜 주고자 살충제도 제초제도 거들떠보지 않는 사람들이니 마음이 편치 않았던 거다. 본래 자연농에서는 벌레를 웬만해선 잡지 않는다. 먹이사슬이 살아있어 한 종류의 벌레만 많아질 수가 없기 때문에 소위 말하는 피해도 그리 크지 않고 오히려 약을 쳐서 벌레를 마구 잡음으로써 생태계가 파괴되는 것이 더 위험하다고 본다. 이번 일을 겪으면서 더더욱 그러한 생각을, 또 각자의 느낌들을 정리하고 나눌 수 있었다. 우린 모두 다른 생명의 죽음 위에 삶을 빚지고 있다.

둘째는 김매기다. 가뭄은 감히 하늘이라도 탓해볼 수 있는데, 이건 변명의 여지조차 없다. 아무리 자연농에서 풀이나 벌레와 되도록 싸우지 않으려 한다지만 그것도 정도가 있다. 어쨌든 사람이 먹을 것을 키워내는 것을 목적으로 만든 땅이 밭이다. 풀과 벌레를 살리고 사람이 먹을 걸 못 만들면 농사를 지었다고 할 수가 없는 거다. 자연이 주는 것만 먹겠다며 여러 작물 씨앗을 진흙 덩어리에 뭉쳐 여기저기 뿌리고 그 가운데 조건이 맞아 싹을 틔운 것만 먹었다는 후쿠오카 마사노부처럼 살 게 아니라면 말이다.

드디어 가뭄이 끝난 기쁜 장마철에 우리 밭은 풀밭이었다. 장마철은 날씨도 따뜻하고 물도 한껏 마실 수 있으므로 작물들이 신나게 크는 시기고 커줘야 하는 시기다. 문제는 옆에서 열배는 더 신나게 풀들이 자라난다는 거다. 이웃에 키 크고 억센 풀들이 빽빽하게 살면 거기 치여서 작물들이 자라질 못한다. 작물이란 녀석들은 철저하게 길들여진 식물이다. 사람이 도와줘야만 자랄 수 있게끔 오랜 세월 진화가 되었다고 봐야한다. 어쩌면 햇빛으로 만들어내는 에너지의 많은 부분을 인간이 먹는 큰 열매에 쓰기 때문에 풀한테 지는 걸지도 모른다. 그러다보니 녀석을 방해할 정도로 가까이 난 풀들은 뽑든 베든 해줘야 제대로 자라 열매를 맺을 수가 있다. 이쯤 되면 사람이 녀석들을 길들인 건지 녀석들이 사람을 길들인 건지 알 수 없다. 이젠 녀석들이 살아야 우리도 먹고 살기 때문에 어쩔 수가 없다. 그래서 김매기 등 작물을 도와주는 작업을 개구리님은 시중들기라고 이름 붙였다. 시중을 제대로 못 드는 종놈에겐 국물도 없다.

하루종일 쪼그려 앉아서 풀을 베고 또 베다보니 농사는 풀과의 전쟁이라던 말이 이해가 된다. 이러니 풀과 벌레와 싸우지 않는다는 자연농 이야기가 농사 좀 지어본 사람들에겐 얼마나 황당하고 이상한 소리로 들릴까? 매일 끝도 없이 풀을 매시던 우리 할머니의 기계적인 손놀림이 떠오른다. 아흔이 넘어서까지 농사를 지으시던 할머니가 새삼 존경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