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바라는 글쓰기/귀농귀촌 이야기

작은책 17.7월) 커피 한잔 하구 가

참참. 2017. 7. 10. 08:07

커피 한 잔 하구 가

자연농 농부가 되고 싶은 참참

 

홍천 시골마을에 와서 커피 한잔 하고 가라는 말을 전보다 더 자주 듣는다. 나는 커피를 잘 안 마신다. 허나 어찌나 손놀림이 재빠르신지 내가 그 말을 미처 꺼내기도 전에 벌써 믹스커피 서너 개가 뜯겨있기 일쑤였다. 그럴 땐 난감하기도 하지만 그 한마디로 많은 인연이 이어지니 우리에겐 마법의 주문이기도 하다. 자꾸 듣다보니 이제는 손님을 대접하고 함께 이야기 나누고 싶어하는 마음으로 느껴져 고맙고 정감도 간다. 게다가 토씨 하나 틀리지 않은 그 말을 여기저기서 듣는 게 퍽 재미있다.

이 말을 가장 많이 한 건 언니네텃밭생산자이신 애진 언니(이 공동체에선 서로를 언니라고 부른다). 여태까지 들를 때마다 거의 빼놓지 않고 그 말씀을 하셨다. 그렇게 함께 커피를 마시면서 참 많은 애길 해주신다. 주제는 농민의 삶이나 농촌과 현대농업의 현실과 미래, 전여농(전국여성농민회)과 생협 활동, 토종씨앗 등이다. 오랜 세월 직접 농사도 지으셨고, 전여농과 언니네텃밭 등 다양한 곳에서 활동하셔서 경험도 워낙 많으시고 고민도 깊으시다. 어떨 땐 바쁘게 뭔가를 손질하면서 말씀을 하시는데, 그 와중에도 커피를 권하는 걸 보면 찾아온 사람과 이야기 나누는 것을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걸까 싶기도 하고, 늙어가는 농민회에선 젊은 사람이 들어오는 게 꼭 필요하겠단 생각도 든다.

몇 주 전까지만 해도 거기서만 커피 한 잔 하고 가라는 말을 들었기에 개인적인 성향인 줄 알았는데 요즘 생각이 바뀌었다. 동네에서 만난 다른 분들께도 같은 말을 듣기 시작한 거다. 두 번째 그 말을 들은 건 뽕잎을 따러 가던 어느 날 오전이었다. 자전거가 고장 나 걸어가고 있었던 덕분에 인사를 드리면서 대화가 이어질 수 있었다. 처음엔 여긴 어떻게 왔냐고 가볍게 물으시더니 바로 커피 한잔 하구 가를 외치셨다. 방금 처음 만난 분이라 무슨 뜬금없는 상황인가하는 생각이 들면서도 또 묘하게 자연스러웠다. 그렇게 우린 한살림 유기농 생산자 부부의 집 뒤편 뜰에 놓인 테이블에 마주앉게 되었다.

동네 분들이 으레 궁금해하시는 질문들부터 시작해서 우리의 생계, 유기농 농사, 마을 이야기 등을 나누다보니 어느새 점심때가 됐다. 이분들, 당연하다는 듯 점심도 먹고 가라신다. 나름 바쁜 우리였지만 밥 주신다는 데 또 거절 않고 먹었다. 바로 옆에 쌈채소 키우는 하우스에서 마음껏 따오라 하셔서 우리가 안 키우는 상추며 케일, 아욱, 근대, 셀러리 등을 잔뜩 먹을 수 있었다. 그러더니 어느새 일손이 필요한데 품팔이를 해보겠냐는 제안까지 해주셨다. 안 그래도 시골의 대표알바(?)인 농사일 품팔이를 경험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던 터라 전화번호를 교환하고 헤어졌다. 그렇게 커피 한 잔의 인연으로 우리는 최초의 품팔이 기회를 얻었다.

품팔이 일정 때문에 한 번 더 집에 들러 커피를 마셨는데 그땐 더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그 테이블에도 수많은 마을 사람들이 인사하고 들렀다 가곤 했는데 그 가운데 한분이 우리가 월세 살고 있는 집 바로 옆 편의점 알바 얘길 하셨다. 그 분의 아내가 일을 거의 다 하고 있는데 임신을 하셔서 사람을 구한다는 거다. 시골에 워낙 일할 사람이 없어 계속 못 구하고 있으니 꼭 해달라셨다. 그렇게 여차저차하다보니 3일 뒤부터 당장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는 것으로 이야기가 됐다. 처음엔 하루 3시간을 이야기하셨다가 하루 일하곤 갑자기 더 많이 해줬으면 좋겠다고 하셔서 고민과 협상 끝에 하루 8시간, 5일로 일하기로 했다. 그 시간을 곁지기와 내가 둘이서 번갈아가면서 채우고 나머지 시간에는 농사를 계속 지으면 되겠다는 계산이었다. 수입이라곤 없던 상황에서 갑자기 월 100만원 이상의 고정수입이 생긴 것이다. 게다가 더위 속에서 품팔이 하루 해봤다고 편의점은 좀 편하게 느껴졌다.

품팔이를 했던 날은 꽤 더웠던 5월 말일이었다. 우리 부부와 같은 밭에서 자연농 농사지으며 생계를 고민하는 친구들인 올빼미와 공벌레까지 4명이 모두 다 같이 가서 작업을 했다. 우리에게 주어진 일은 일명 배추작업, 배추를 수확하는 일이라 들었는데 막상 그날 가보니 배추가 그새 더운 날씨를 못 견디고 속이 썩어버린 뒤여서 배추하우스를 아예 갈아엎게 됐다. 우리는 아저씨가 트랙터로 땅을 갈 수 있도록 하우스 다섯 동에 가득한 배추를 다 뽑아서 치우고 땅에 깔린 검은 비닐을 걷어냈다. 하우스 안에 난 풀도 뽑았다. 다 하고나서는 다른 하우스에서 덜 자란 양파를 뽑아내고 비닐 걷어내는 작업도 했다. 좀 큰 건 수확하고 작은 것들은 배추처럼 그대로 버려졌다. 왜 덜 자란 양파를 뽑나했더니 빨리 다른 작물을 심어야 손해가 나지 않는다고 하셨다. 모든 기업이나 생활인들도 그렇듯이 이익이 나야만 먹고 살 수 있기 때문에 현대 농업에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일하면서 보고 들으니 도시에서 버스를 타고 단체로 내려와서 품을 파는 아주머니나 할머니들, 1(정확히는 겨울을 뺀 몇 개월) 계약으로 아예 농가에서 먹고 자며 일 해주러 오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아주 많았다. 인력 구하는 것에 따라 재배할 작물도 달라진단다. 농촌에 노인이 많고 일할 사람이 없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실제로 보니 또 느낌이 달랐다. 같이 일하던 분은 외국인 노동자들이 6시 땡 하면 일이 다 안 끝나도 그냥 손을 놔버린다고 하셨다. 내 생각으로는 그분들이야 엄연히 임금노동자이니 정해진 시간까지만 일을 하는 것이 맞긴 한데, 그분이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도 이해는 됐다. 일을 다 끝내고는 몇 개 못 건진 상하지 않은 배추를 우리에게 먹으라며 다섯 개나 주셨다. 둘이서 먹기엔 너무 많아서 동생네에도 주고 우리도 잘 먹고 있다.

어제는 개구리님 논과 모래무지님 논, 우리 논에 모내기하는 날이었다. 우릴 도와주겠다고 서울 등지에서 친구들이 열 명 남짓 내려왔다. 그것도 무려 황금같은 토요일에! 친구들이 아니었다면 손모내기를 절대 하루 만에 마칠 수 없었을 거다. 날도 덥고 다들 농사일도 처음이라 힘들었을 법도 한데 내가 감사의 인사를 하기도 전에 오히려 좋은 경험이었다면서 이런 기회를 줘서 고맙다고 이야기하는 친구들! 이 사람들 덕분에 우리가 살고 있음이 틀림없다.

모내기를 준비하면서 열 명이 넘게 먹을 밥을 준비할 여력이 못되어 점심도시락까지 싸오라고 한 것이 너무 미안해서 우리가 아는 가장 맛있는 떡, 현미쑥설기를 해서 돌리기로 했다. 곁지기가 전날 쑥을 뜯어 방앗간에 맡기고 그날 아침 일찍 떡을 찾으러 갔다. 친구들도 속속 도착했단 연락이 오고, 모내기하러 빨리 가야해서 마음이 급했다. 그런데 떡을 받아 돌아서는 우리에게 방앗간 주인분께서 하시는 말씀. “아니 커피 한 잔두 못하구 가서 우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