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바라는 글쓰기/귀농귀촌 이야기

작은책 17.9월) 굶어죽게 내버려두질 않는다

참참. 2017. 9. 5. 10:57

굶어죽게 내버려두질 않는다

 

자연농 배우는 참참

 

나름대로 농사를 짓는다고 짓는데, 아직 우리 밭에서는 영 나오는 게 없다. 장마 뒤에 드디어 오이가 좀 나오기 시작했을 따름이다.(그래도 수박, 참외가 커지니 뿌듯해하면서 8월말에 온다는 친구에게 수박 있으니 사오지 말라고 큰소리도 친다) 더 웃긴 것은 우리가 심어서 키웠는데 수확할 줄을 모른다는 거다. 싹이 났을 땐 풀이랑 구별을 못하고, 이젠 다 키워놓고 어떻게 먹는지도 모르는 황당한 초보 농부다. 대표적인 게 오크라, 토란, 야콘이다. 토란은 딱 한번 먹어봤고, 오크라는 여기 오기 전엔 듣도 보도 못했던 녀석이다. 많이 먹어본 작물들이라고 잘 아는 것도 아니다. 먼저 자란 애호박이 하나 있었는데 언제 따야하는 지 몰라 계속 두는 바람에 애호박인데 씨를 발라내며 먹었다. 고추는 생각만큼 자주 먹질 않다보니 따지를 못하고 있다. 달린 채로 벌써 못쓰게 된 것도 있다. 그냥 계속 두면 나중에 고춧가루용으로 쓸 수가 있는 걸까? 이런 의문들이 거의 매일 생긴다.

이러니 밭에서 나오는 걸로 먹는 것이 해결되고 있을 리가 있나. 허나 그럼에도 시골에서 굶어죽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자꾸 뭐가 굴러들어오는 탓이다. 시작은 옥수수였다. 요즘 강원도는 한창 옥수수철이다. 옥수수를 따고 가공, 포장할 일손도 모자라는지 나도 몇 번이나 해보라는 소릴 들었다. 도저히 시간이 안 맞고 자신도 없어서 거절했다. 일은 거절했지만 나도 곁지기도 옥수수를 좋아한다. 우리가 키운 걸 먹고 있으면 좋을 텐데 슬프게도 우리 밭 옥수수들은 아직까지도 제대로 열매를 맺지 못하고 있다. 어느 날은 곁지기가 옥수수를 사서라도 먹어야겠다는 얘길 꺼냈다. 난 여기저기서 한 박스에 얼마나 하나 가격까지 찾아봤다. 그런데 이게 웬 일, 바로 그 다음날 갑자기 언니네텃밭 정자언니가 집으로 찾아와서는 옥수수 한 상자를 내려놓고 가셨다. 그날 새벽부터 수확하신 것 중에 모양이 아쉽거나 벌레가 살짝 먹어 팔 수 없는 것들 위주로 좀 챙겨주신 거다. 팔수는 없는지 몰라도 먹는 데야 최고다!

우리는 하던 일 다 제쳐놓고 곧장 옥수수를 쪘다. ! 뭣도 없이 물만 넣고 쪘는데도 감탄이 절로 나오는 맛이었다. 옥수수는 딴 지 하루가 지나기 전에 빨리 찌거나 삶는 게 맛의 핵심이라고 한다. 그렇게 해서 얼려놓았다가 데워먹으면 맛이 그대로이고, 생옥수수를 그냥 두면 삼사일만 지나도 맛이 없어진다고들 그런다. 문제는 옥수수를 꽤 많이 주셔서 우리 집 제일 큰 솥으로도 한 번에 찔 수가 없는 데다, 작은 냉장고를 쓰는 탓에 보관도 어려웠다는 거다. 덕분에 그날부터 삼일은 끼니에 간식까지 옥수수로 먹었다. 그날 저녁에 설악산 오색케이블카 반대 후원주점에 갔더니 거기에도 옥수수가 쌓여있었다. 다음날에도 아내와 함께 가기로 한 모임에 한가득 쪄서 들고 갔다. 홍천에서 양평까지 버스 타고 지하철 타고. 그렇게 옥수수 잔치를 벌이고, 그 뒤로도 친구 부모님의 옥수수 등 이래저래 계속 얻어먹고 있다. 밭에서 하나 못 건지고도 올 여름 옥수수 제대로 맛봤다.

두 번째는 가지였다. 가지도 요새 많이 나오는데 우리가 농사에 실패한 것 중 하나다. 오히려 서울에서 텃밭할 땐 가지가 잘됐는데 정작 여기서는 아예 싹도 안 나왔다. 그러려니 하고 있었는데 이웃한 밭에서 바닥에 두고 가는 가지들을 보니, 만약 버리는 거라면 우리가 가져가서 먹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우리 마음을 어찌 아셨는지 며칠 뒤부터 갑자기 집주인께서 가지가 많다며 맘껏 가져가라하시고, 지나가던 동네 할머니께서도 먹으라고 손에 쥐어주시고, 곁지기가 학교에서 일하다 학부모님께도 한아름 받았다. 그래서 요새는 가지볶음, 가지파스타, 가지스테이크까지 해먹고 있다.

그뿐인가 개구리님 밭에 어마어마하게 자라고 있는 들깨 순을 잘라 깻잎도 엄청나게 생겼다. 하루는 오랜만에 라면을 먹는데 깻잎을 스무 장, 서른 장을 넣었다. 곁지기는 그걸로 깻잎페스토를 만들어 선물도 했다. 그 전에는 이웃집에서 자두를 많이 얻었다며 우리한테까지 전해주셔서 잼도 만들었다. 오래 보관해야할 만큼 양이 많지는 않아서 설탕을 조금만 넣었더니(설탕이 적게 들어가면 금방 상한다) 새콤함이 살아있는 자두 잼이 됐다. 토마토, 감자는 우리 밭에서 수확을 하긴 해도 양은 적었는데 옆에서 농사짓는 도토리님이 한 봉지씩 챙겨주셨다. 알고 보니 도토리님의 누님이 파주에서 농사지은 걸 너무 많이 주셨단다.

먹을 것에서 그치지 않는다. 사실 지난달에는 일하던 편의점에서 잘리는 일이 있었다. 편의점도 사정이 별로 좋지 않은가보다. 우리 부부의 거의 유일한 현금 수입원이었는데 하루아침에 그리 되니 난감했다. 어쩌나했는데 2주 만에 새로운 일들이 이것저것 들어왔다. 특히 소금쟁이님께서 알려주신 덕분에 곁지기가 바로 일을 하게 됐다. 집에서 가까운 초등학교의 셔틀버스 승차도우미 일이다. 아침, 저녁으로 셔틀버스 운행할 때 기사님과 함께 한두 바퀴 돌면서 특히 어린 유치원 아이들이 잘 타고 내릴 수 있게 돕는 일이다. 처음엔 하는 일이 너무 없어서 당황스러워했다. 하지만 아이들이 내려서 길을 건너야한다면 길도 함께 건너 주고, 혹시라도 차 문에 옷이 끼는 등의 사고가 일어나지 않도록 안전을 잘 살펴야 한다. 쭉 근무하는 게 아니라 하루에 두 번이나 세 번씩 출퇴근을 반복해야 한다는 번거로움이 있지만 근무시간이 적고 시급이 좋은 편이다. 하루에 두 시간 남짓만 일하니까 농사로 최대한 자급자족해보고자 하는 우리에겐 최고의 일자리가 아닌가싶다.

바쁜 거 뻔히 아는 도시의 친구들이 지난 유월의 주말에 여기까지 와서 모내기를 도와주었다. 그때 진심으로 그들 덕분에 산다 싶었다. 거기에 더해 매일매일 참 많은 은혜를 입고 있다는 걸 이 글을 쓰면서 다시 깨달았다. 둘레에 있는 분들이 우리를 말 그대로 살리고있다. 누가 잘 지내냐 물으면 이제부턴 진심을 담아 덕분에요라고 답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