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바라는 글쓰기/귀농귀촌 이야기

작은책 17.10월) 군대에 있을 때보다 삽질을 더 많이 했다

참참. 2017. 9. 30. 22:33

군대에 있을 때보다 삽질을 더 많이 했다

 

자연농 배우는 참참

 

지난 한 달 동안 가장 많이 한 일은 삽질이었다. 물길 때문이다. 우리 밭에 들어온 물들이 나갈 길을 못 찾아 그대로 눌러앉아버렸다. 도시에선 뭔가 큰 문제가 생기기 전에는 물에 대해 생각할 일이 없었다. 늘 수도꼭지만 틀면 나오니 소중함을 느끼기가 어려웠다. 시골에 와서 농사를 지으니 달라졌다. 비가 오는 날을 기다려 그 전날 씨앗을 심어야 좋고, 비가 안 오면 어떻게든 물을 주어야 한다. 물 나오는 곳이 어디에 있느냐에 따라 농사의 난이도가 드라마틱하게 바뀐다.

하필 시골에 오자마자 심한 가뭄이 날 반겼다. 마을 상수원에 물이 말라 긴급회의가 열릴 정도의 가뭄이었다. 어디 한번 물의 소중함을 느껴보라는 것이었을까. 스프링클러도 없고 부지런한 농부도 못 만난 우리 밭의 작물들은 나날이 말라갔다. 일일이 다 물을 떠다 부어줄 수도 없고 물을 준다고 해도 금방 말라버리니 발만 동동 굴렀다. 마침내 장마철이 되어 비가 쏟아지던 날엔 가만히 서서 비만 바라보고 있어도 그렇게 신기하고 좋을 수가 없었다. 마치 비라는 걸 태어나서 처음 본 사람처럼.

그러기를 이틀, 사흘을 지나 일주일씩 비가 쏟아지니 이젠 좀 그쳐야할 텐데 소리가 절로 나왔다. 그렇게 애타게 찾을 때는 언제고 금방 그런 소리를 하느냐고 해도 어쩔 수가 없었다. 비가 오니 전에는 알 수 없었던 치명적인 문제가 드러났다. 물이 빠지질 않는다는 거다. 봄에 농사 시작하면서 물 빠지라고 고랑을 파놓았는데, 그냥 눈으로 봐서는 어느 쪽 땅이 높은지 알기가 어렵다보니 대충 팠었다. 물이 가득 들어차고 나니 구배(구배는 비탈길 등 경사면의 기울어진 정도를 말하는데 여기 와서 처음 들어본 말이다)가 완전히 반대로 잡혀있는 게 보인다. 계속 물을 가두어 논으로 쓰다가 잠깐 땅을 놀리고 나서 올해 처음 밭으로 바꿔서 쓰는 곳이다. 산골짜기에 계단식으로 된 땅인데 밭 안쪽의 높이가 더 낮다. 고랑도 잘못 파서 안쪽을 더 깊게 파놓으니 물이 거기 모여서 아래 땅으로 내려가질 못한다.

비는 계속 오고 물은 빠지질 않고 풀들은 비 맞고 신나서 끝도 없이 자라났다. 비가 그치고서는 부랴부랴 물길 내준다고 아래쪽의 고랑들을 더 깊이 팠다. 잔뜩 거꾸로 파놓았으니 어지간히 파서는 어림도 없었다. 농사 같이 짓는 친구 공벌레와 삽을 들고 한참을 긴 고랑을 따라가며 파고 되돌아오면서 더 파고 몇 번을 그러고서야 물이 좀 빠지는 모양새가 됐다.

물을 빼려고 보니 참 어려운 게 또 있다. 우리가 빌린 밭에서 물을 빼면 그 물이 흘러가는 곳에도 다른 사람의 땅이 있다는 거다. 누구라도 위의 땅에서 자기 땅으로 물을 잔뜩 흘려보내버리면 곤란해지는 건 똑같다. 양 옆에 잘 정리되어있는 수로로 빼면 좋겠으나 우리 밭의 구조상 아무리 머리를 굴려보아도 도저히 거기로는 물을 뺄 수가 없다. 어쩔 수 없이 우리 밭 바로 아래 땅으로 내려간 다음 양옆으로 빠지게 되어야하는데, 그 과정에서 아래 땅도 축축해진다. 물과의 대화만으로도 힘들지만 다른 사람들과의 대화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되는 거다. 한 골짜기이고 한 덩어리 땅이지만 여러 사람이 나누어 갖고 있고 그 땅을 쓰는 용도도 제각각이다보니 서로 다른 걸 바라는 일이 꼭 생길 수밖에 없다.

어쨌거나 그리하여 물을 좀 뺐나했더니만 올해는 영 그른 것 같다. 고랑은 물이 다니는 길이기도 하지만 사람이 작물을 밟지 않고 다닐 수 있는 길이기도 하다. 우리는 장마 이후 여태까지 고랑에 한 발도 디디지 못했다. 고랑을 내지 않은 평평한 곳에는 작은 사과나무도 한 그루 심었는데, 며칠은 맑았었는데도 방금 비가 온 것처럼 땅에 물이 찰박찰박했다. 아무래도 이렇게 물에 잠겨있다가는 나무가 죽을 것 같아서 나무 둘레에 동그랗게 얕은 고랑을 내었다. 예상대로 근처의 물들이 그리로 고였고 그 고랑을 다른 고랑으로 연결해 물을 빼냈다.

올해는 가뭄도 심했지만 비도 참 심하게 왔다. 이래서 농사는 하늘이 짓는 거라고 하나보다. 그래도 내년에는 고랑을 잘 정비해서 적어도 비가 그친 뒤에는 물이 빠지고 땅이 마를 수 있도록 대비해둬야겠다. 이제야 이 땅에 고랑을 어떻게 내야하는지 어렴풋하게나마 알 것 같다. 농사는 한 해에 한번밖에 시도해보지 못해서 경험을 빠르게 쌓을 수가 없다. 한 해를 온전히 겪어내야만 겨우 하나씩 배울까 말까다.

여름은 다 갔지만 드디어 직접 키운 수박 먹어본 얘기를 안 할 수가 없다. 수박은 여름과일인 줄 알았더니 9월 돼서야 먹었다. 농약도 비료도 안주고 물 관리도 풀 관리도 엉성한 우리 밭에서 알아서 큰 토종 검은수박(먹수박). 시장에서 잘 고른 수박 못지않게 달고 맛있었다. , 그 감동이란! 워낙 독특하고 드물어서 많은 사람들이 씨앗을 탐내는 토종 먹참외도 잘 자랐다. 노란 참외에 밀려 다 사라져서 요샌 보기도 어렵단다. 물론 나도 그렇게 생긴 참외 처음 봤다. 속은 메론 색과 비슷한데 조금 더 어둡고 씨는 붉은 빛이 도는 갈색이다! 껍질째 먹는다. 그런데 아쉽게도 장마 이후 물이 하도 많아 단 맛이 덜했다. 개구리님 말씀으로는 해마다 너구리가 단내를 맡고 와서 따먹었다는데, 올해는 걔들도 안 건드렸을 정도다. 아쉽다.

이젠 수확 철이 다가온다. 첫 해 농사다보니 좌충우돌, 맨날 완전 망했다는 얘기만 쓴 것 같은데 식물들의 생명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아서 잘 큰 아이들도 많다. 오크라로 덮밥도 여러 번 해먹었고, 오이도 따다 먹고 빨갛게 익은 고추도 따서 말리고 있다. 늦게 심은 토종 감자와 고구마, 땅콩, 메주콩, 들깨, 토란 등을 수확해야할 텐데 나름 기대가 된다. 홍천에는 보통 10월 중순 즈음 첫 서리가 내린단다. 그 전에 수확해야하는 아이들이 많다. 부랴부랴 배추, 무 등 김장채소도 심었다. 다음에는 부디 수확의 뿌듯함을 가득 전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