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2020~2022 291

월요일 저녁

어젠 하우스메이트 M이 서울시에서 준 돈으로 제로페이 가맹점이 된 한살림매장에서 잔뜩 장을 봐왔다. 진짜 정신없이 바쁜 월요일이었는데, 집에 와서 식탁 앞에 앉아 기다리니 어마어마한 진수성찬이 차려져 나왔다. 재료가 말도 안되게 들어간 된장찌개에, 고기굽기 장인 G가 구운 소고기에, 술에, 음료에, 디저트로 롤케익까지 나오고, 설거지도 M이 다했다. 어제도 너무 행복했는데, 아침에 일어나서 생각해보니까 어디 가서 바랄 수도 없고 바라서도 안 되는 대접을 받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 참.. 복 받은 인간. 주말의 우울함을 평일의 행복으로 날려버렸다!(뭔가 거꾸로 된 느낌은 기분탓)

일상/2020~2022 2020.05.12

기억

기억은 몹시 불완전하다. 철석같이 믿고 있던 기억이 기록된 것이나 다른 사람들이 기억하는 것과 달랐던 경험이 있는가? 어릴 땐 내 기억을 몹시 신뢰했는데, 살다보니 점점 기억은 적어도 객관적인 과거 사건에 대한 자료로써 신뢰할 만한 것이 못한다는 걸 실감했다. 어떻게 이렇게까지 같은 일을 다르게 기억할 수가 있는지 불가사의하다고 느낀 적도 여러 번이다. 처음엔 다른 사람들이 장난을 치고 있거나 기억력에 문제가 있다고까지 생각했다. 어쨌든 나는 내 중심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으니까. 내가 겪고 느낀 수많은 사건, 경험, 감각, 느낌, 기분 등등 중에 무엇이 기억으로, 또 장기기억으로 남게 되는 것인지, 어떤 과정을 통해 그렇게 되는 것인지 늘 궁금했다. 기억이라는 것에 대해 신비롭지 않은 건 거의 없지만, ..

일상/2020~2022 2020.05.12

토요일 아침 일기

어제 두번째 월급을 받았다. 월세랑 대출 갚는 거랑 청약저축이랑 교통비, 점심값같은 어차피 나갈 돈 대략 예상해서 미리 빼놓고 나니 40만원 남네. 이걸로 사람들 만나서 술도 마시고, 사고싶은 것도 사고,(비싼 거라면 여기서 조금씩 빼서 모아서 살 수 있게 저축하고) 생활용품도 사고, 취미생활도 하고, 옷을 산다거나 머리를 한다거나 하는 일도 하고, 가족들을 챙기거나 누군가에게 선물을 한다거나, 기부를 한다거나 하는 일도 해야한다고 생각하니 확실히 넉넉한 기분은 아니다. 더 아무것도 안 하고 저축을 10~20만원이라도 더 할 것인가, 어차피 내일 죽을지도 모르는 인생, 어차피 이거 모아서 집을 살 것도 아닌 얼마 되지도 않는 돈, 이거나마 최대한 써가며 놀 것인가.(이거 가지고 열심히 논대봤자 뭐 돈 드..

일상/2020~2022 2020.05.09

듀x 광고

페이스북에 하도 듀x 연애공작소 광고가 뜨길래 한번 정보를 입력해봤더니, 프로필(이라고 해도 당연히 개인정보를 마음대로 줄 수는 없기 때문에 어차피 사진은 홍보모델 사진으로 대체되어있고 본인이 쓴 자기소개 앞부분 약간하고 학력과 혈액형 정도를 알려주는 정도?) 몇 개가 이메일로 오고 '매니저'라는 분께 전화가 온다. 매니저님은 상당히 친절하시다(당연). 아직 젊을 때 얼른 좋은 짝을 찾아야하지 않겠냐는 말을 좋게좋게 계속 다른 여러가지 사례와 온갖 얘기를 섞어가며 하신다. 가격을 물어봤더니 가장 싼 게 170만원, 괜찮게 이용하려면 220만원 정도라고 한다. 수입이 적어서 안되겠다고 하니 카드로 하면 12개월 할부도 가능하다고. 이용료도 이용료지만 연봉이 너무 적어서 여성들이 날 선택하지 않을 것 같다고..

일상/2020~2022 2020.05.07

휴일 아침 일기

연결되어있다는 감각을 느끼던 때가 있었는데, 그런 적이 있었다는 사실 자체를 오랫동안 잊고 지냈다. 오늘 책을 읽다가 아주 오랜만에 그런 감각을 어렴풋하게 다시 떠올려봤다. 나는 세상에 홀로 분리되어 있다는 생각보다는 유대감과 연결되어있다는 느낌을 일으키고, 좀 더 여유롭고 타인이나 세상에서 위협을 느끼지 않도록 만드는 호르몬이 옥시토신이라고 한다. 사랑과 관련된 호르몬이라든가 아이를 낳았을 때 엄마가 아이와 유대관계를 형성하는 시기에 많이 분비되는 호르몬으로도 알려져있다. 음, 어쩌면 10년 전의 나보다 지금의 나는 옥시토신이 부족한 상황인 건가하는 생각을 해봤다. 물론 타인과의 관계라는 건 한편으론 무척 피곤한 일이기도 하다. 웬만큼 편한 사이라고 해도. 그렇지만 또한 완전히 고립된 채로 살 수 있는..

일상/2020~2022 2020.05.05

고양된 감정

책을 읽다가 고양된 감정 상태를 느껴보라는 구절을 만났다. 문득, 고양된 감정을 느껴본 게 언제였더라하고 생각하게 됐다. 내 일상에 그럴 일이 있나. 그럴 일이 잘 없지 싶다. 어쩌면 그런 감정을 느끼고 싶어서 연애나 새로운 만남같은 걸 원해왔는지도 모르겠다. 꼭 좋은 감정뿐 아니라 어쨌거나 내 주의를 끄는 어떤 것, 집중할 만한 것, 강렬하고 자극적인 것들. 지금의 일상이 참 괜찮은데 어쩌면 난 그저, 심심할 뿐인지도 모르겠다. 감정에 격렬하게 휘둘리고 어딘가에 집착하고 끊임없이 원하고 그런 느낌에 익숙한데 지금은 그런 게 별로 없으니까. 그렇게 살 때는 그게 너무 피곤하고 잔잔하고 안정적인 일상을 얻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그렇게 되니까 고통스럽더라도 무기력에 빠져들 새가 없었던 그때로 알게모르게..

일상/2020~2022 2020.05.03

Here U Are

같이 사는 사람이 추천해서, 오랜만에 웹툰을 하나 정주행했다. 요즘은 웹소설은 봐도 웹툰은 안 보고 있었다. 네이버웹툰에서 연재하고 있는 Here U Are라는 작품이다. 댓글 보다보니까 우리나라 작가의 작품이 아니었다. 중국 작품을 번역해서 연재하고 있는 작품이라고 한다. 스무살 내기들의 연애 얘긴데, 주로 남자끼리의 연애다. 소위 말하는 BL이라 할만한 장르랄까. 난 남자와 연애하고 싶다는 느낌을 받아본 적은 없지만 그럼에도 공감할 수 있었다. 감정선도 좋고, 둘이 꽁냥꽁냥 연애하는 모습이 너무 좋았다. 부럽기도 하고. 한편으로, 내가 20대 초반의 저런 꽁냥꽁냥한 느낌이 드는 연애같은 걸, 다시 할 수 있을까 생각해보게 됐다. 영원히 당신 곁에 있을게, 같은 말을 진심을 담아 할 수 있을까. 다른 ..

일상/2020~2022 2020.04.27

아무것도 하기 싫어

아무것도 하기 싫고 사람의 온기가 그립다는 생각만 하다 지나간 한 주였다. 오늘 새벽에 깨어나니 이제야 좀 정신이 들어, 뭔가 남겨놓고 싶어졌다. 왜 이렇게 다시 무기력했을까. 방금 떠오른 하나의 이유는, 목표가 너무 멀어서. 공부해야할 게 너무 많다. 당장 회사에서 하는 업무를 위해서만도 1. php와 php 기반의 프레임워크(코드이그나이터 CodeIgniter 등), 고도몰 구조. 2. HTML, CSS, JavaScript, JavaScript라이브러리인 jQuery 3. MySQL 데이터베이스, SQL문 4. 리눅스, 서버운영, 크론Cron 등을 빨리 계속 공부해야한다. 매일같이 공부하라는 압력을 받는 것만 이정도지, 더 넓은 범위로 생각하면 공부할 거는 뭐 끝도 없는 수준. 잠깐 벼락치기로 해낼..

일상/2020~2022 2020.04.27

외로움

지난 주말에는 돌아가신 아버지 기일이 가까워서 가족들과 강릉에 다녀왔다. 아버지 산소가 있는 나의 고향. 현재 수원에 함께 살고 있는 어머니와 동생네 부부는 좀 더 강릉에 머물렀지만 나는 금요일 밤에 가서 토요일 오전에 산소에 들렀다가 그날 바로 서울로 돌아왔다. 외로움을 꽤 많이 타는 편인 것 같다. 돌이켜보면 외로워서 누구라도 날 좋아해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기억이 여기저기에 있다. 스물한 살, 첫 연애를 할 때 그래서 몹시 도를 지나쳤다. 그때니까 그럴 수 있었다고 생각하지만, 24시간, 365일을 함께 있으려고, 함께 있지 않을 때도 계속 문자메시지 보내고, 이어져있으려고 했다. 지금은 그렇게 하래도 못할 거다. 그 사람도 이런 면을 힘들어했다. 그렇지만 그도 첫 연애였고, 연애란 원래 이런 거..

일상/2020~2022 2020.04.20

취직턱

서울로 돌아왔을 때 밥을 사줬던 직장인 친구 H에게 취직 기념으로 밥을 샀다. 퇴근이 살짝 늦어져서 약속에 조금 늦었는데 그는 크게 신경쓰지 않는 듯한 모습을 보여줘서 내 마음을 편하게 해줬다. 만나기로 한 건물 앞에서 책을 들고 있는 모습이 안 그래도 지적인 이미지를 한층 더 그렇게 만들어줬다. AI에 대한 책이었던 것 같은데. 그도, 나도 예상하지 못했던 내 빠른 취직에 대한 이야기, 코로나로 취소된 그의 여자친구와의 뉴욕여행 이야기를 빙자한 동북아시아 허브공항에 대한 내가 전혀 몰랐던(내가 작년에 네덜란드에 갈 수 있었던 것도 그 덕분이었구나) 국제적인 상황, 투표에 대한 이야기와 꼭 정치가 아니더라도 20대 때보다 어딘지 보수적인 사고로 조금씩 밀려가는 우리에 대한 이야기. 스타벅스에서 색깔이 맘..

일상/2020~2022 2020.04.15

답장

어쩐지 어떤 글에는 답장을 쓰고 싶어진다. 그가 나에게 개인적으로 쓴 편지가 아님에도. 그럴 때는 답장을 써서 보내기도 하고, 아니면 그저 답장처럼 쓴 글을 블로그에다 올려놓기도 한다. 김원목 작가님의 [지금, 그리고 영원히 지금] 연재를 통해 아래와 같은 박준 작가의 문장을 접했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어떠한 양식의 삶이 옳은지 나는 여전히 알지 못한다. 다만 앞으로 살아가면서 편지를 많이 받고 싶다. 편지는 분노나 미움보다는 애정과 배려에 가까운 것이기 때문이다. 편지를 받는 일은 사랑받는 일이고, 편지를 쓰는 일은 사랑하는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맞아, 편지를 받을 때면 거의 언제나 사랑받는 기분이었다. 몇 글자 되지도 않는 생일 축하메시지가 담긴 첫사랑의 편지(라기보단 쪽지에 가까운)를..

일상/2020~2022 2020.04.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