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바라는 책읽기/마음이 머무는 구절 36

<그리고 모든 것이 변했다>, 아니타 무르자니 Anita Moorjani, 황근하 옮김

나는 외출을 삼가고 안전하게 집 안에만 틀어박혀 있었다. 기분이 좋지 않은 것도 좋지 않은 것이었지만 겉모습 역시 한눈에 봐도 환자 같아졌기 때문이다. 숨 쉬는 것도 힘들어졌다. 팔다리는 가시처럼 가늘어졌고, 급기야 고개를 들고 있기도 어려워졌다. 이런 모습을 보고 사람들이 던지는 시선이나 하는 말들도 몹시 거슬렸다. 사람들이 불쾌해서나 나를 무시해서 그렇게 보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아마도 호기심이나 일종의 동정심이었을 것이다. 나를 바라보다가 나와 눈이 마주치면 사람들은 즉각 눈을 돌려버렸다. 그들이 불편해한다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그 표정 뒤에 숨은 감정을 잘 알았다. 예전에 아픈 이들을 바라볼 때 나도 그렇게 느꼈기 때문이다. 그들은 날 동정했다. 나는 곧 나를 보거나 나와 이야기하..

<그렇게 말해줘서 고마워>, 김유진

박준 시인이 어느 인터뷰에서 한 말은 그런 나의 마음을 더 찔리게 만들었다. "논리도 없고, 정말 그냥 하는 말들, 아무런 효용 없는 말들이 사람의 관계와 정서를 돈독하게 만들어요." - 《시사저널》 2020년 3월 21일 그의 인터뷰 기사를 읽으면서 얼마 전에 만난 오선화 작가의 말도 생각이 났다. 그는 청소년과 부모들을 대상으로 글을 쓰고, 학교나 도서관에서 강의하는 작가 겸 청소년 활동가이다. 그의 주변에는 늘 청소년들이 북적인다. 한때는 위기에 처한 아이들의 연락을 받지 못할까 봐 새벽에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고 휴대전화는 늘 켜놓았다고. 그는 위탁 시설이나 소년원을 찾아가 아이들을 만나기도 한다. 그런데 그런 시설에 다녀오면 아이들과 무슨 얘기를 했냐고 물어보는 어른들이 유독 많다고 한다. "애..

<나를 사랑하거나 더 사랑하거나>, 이유미 / 첫번째

* 스포일러(?)에 주의하세요. 기억하고픈 좋은 내용이 너무 많아서 이러다간 책을 다 옮겨적고 말겠구나, 싶네요. 나는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소리 없는 강요에 눈떴다. 가장의 역할을 군말 없이 떠안게 만든 '장녀'라는 수식어 또한 얼마나 부당하게 사용될 수 있는지 알아차렸다. 그리고 생각했다. 누구도 내 인생을 가져갈 권리는 없어. 만약에 시간과 자원을 가족과 나눠야 한다면 의무가 아닌 선택이어야 해. "그래도 낳아주고, 길러주셨잖아. 고마움에 보답해야지." 이렇게 생각할지 모르겠다. 나도 그랬으니까. 내 새끼는 죽어도 내가 지킨다고 다짐하던 엄마를 기억한다. 때가 되면 밥을 지어 먹이고, 흠 잡히지 말라고 깔끔한 옷을 골라 입혔다. 집에서 따끔하게 혼을 내다가도, 밖에 나가면 자식 자랑을 늘..

《리틀라이프》, 한야 야나기하라, 권진아 옮김

그가 했던 2막 끝 마지막 대사는 절대 잊지 못했다. 아내가 떠나고 싶다고, 이 결혼에서 충족감을 느낄 수 없다고, 분명 더 나은 사람이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 선언하자, 남편이 하는 말이다. 세스 하지만 이해 못 하겠어, 에이미? 당신은 틀렸어. 모든 걸 다 주는 관계는 없어. '어떤' 것들만 주는 거라고. 누군가에게서 바라는 것들을 다―예를 들어, 성적으로 잘 맞는다거나 대화가 잘 통한다거나 경제적 지원이라거나 지적 관심사가 잘 맞는다거나, 상냥하다거나, 충실하다거나―생각해보고 그중 세 개만 택해야 하는거야. '세 개', 바로 그거야. 아주 운이 좋으면 어쩌면 네 개를 가질 수도 있겠지. 나머지는 딴 데서 찾을 수밖에 없어. 원하는 걸 다 주는 사람을 찾는 건 영화 속에서나 있는 일이야. 하지만 이건 ..

마스다 미리 - 나의 우주는 아직 멀다

'내일이 아직 무엇 하나 실패하지 않은 새로운 하루라고 생각하면 기쁘지 않아?' 빨강머리앤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니. 읽어보고 싶어졌다. 미뤄두었던 넷플릭스의 시즌3도 봐야겠다. 마스다 미리의 나의 우주는 아직 멀다를 보다가. 웹툰은 종종 봐도 만화책은 얼마만인지 모르겠네. 20.08.14. 페이스북

미래를 칭찬하는 마음

내 결과물은 엉망이었는데도 스님은 "이제 잘하네요!"하고 칭찬하셨다. 당연히 그 말을 믿지 않았다. (중략) 평가는 누구나 할 수 있지만, 누군가를 묵묵히 믿고 기다리는 일은 아무나 할 수 없다. 눈앞의 현재가 아닌, 오지 않은 미래를 서둘러 칭찬하는 예쁜 마음은 아무나 가질 수 없다. 채를 썰며 배웠다. - 반지현, , 70-71쪽 정말 그렇다. 정말 그렇다. 정말. 이렇게 믿어주고 묵묵히 나아짐을 기다려주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삶이 나아지는지. 그리고 나는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이 되고 있는가.

스님과의 브런치

반지현 작가님의 땀과 눈물로 만들어진 책, 스님과의 브런치. 저 사진이 글 내용과 참 적절하게 들어가있다고 생각했는데 우연일 리가 없지, 단어 하나, 쉼표 하나, 여백 하나까지도 의도와 정성, 강박과 밤샘, 예술가다운 집착으로 완성된 작품이었다. 고르고 골라 배열한 단어들은 술술 읽자면 한없이 부드럽게 읽을 수 있게 배려되어있지만, 이 한 문장에 담겨있을 시간을 생각하면 그 무게와 여운을 더 느끼고 싶어서, 평소처럼 지나치듯 쉬이 다음 문장으로 옮겨갈 수 없었다. 새삼스럽게 좋은 책은 이렇게 만들어지는구나하고 느꼈던 시간. 실은 요즘 보던 책만 보고 새로운 책은 정말 오랜만에 접했는데, 이런 책을 만날 수 있어서 고맙습니다. '시간을 들여 재료를 다듬고 요리하고, 내 앞에 놓인 음식을 바라보며 오관게를 ..

<당신도 초자연적이 될 수 있다>, 조 디스펜자

수십 년 동안 자동으로 해온 행동, 무의식적인 습관, 반사적인 감정반응, 굳어진 태도, 그리고 세대를 거쳐 내려온 유전 프로그래밍을 거스르는 일이 처음에는 당연히 부자연스럽게 느껴질 것이다. (...) 부자연스럽게 느껴지는 어떤 일을 한다는 것은 우리가 위협을 느낄 때 유전적으로 프로그래밍된 대로 행동하거나, 사회적으로 교육받은 대로 행동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변하는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자신이 속해 있던 집단이나 무리, 패거리의 의식을 떨치고 나오는 존재는 누구든 미지의 것이 주는 불편함과 불안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하지만 가능성은 미지의 영역에서 살아갈 때에만 생겨나는 것임을 잊지 말자. - , 조 디스펜자, 472쪽

나만 그런 거 아니었구나?

우울감의 기억이 아직 많이 남아있을 때 허지원 선생님께서 쓰신 를 빌렸다. 도서관에 반납해야하는 날짜가 이젠 정말 얼마 남지 않아서 뒷부분을 마저 읽고 있는데, 책 진짜 좋다. '우울이 우리의 어깨를 붙잡고 아래로 내리 누르기 시작하면, 단순하거나 중립적인 사건들에도 회의감은 고개를 쳐들고, 우리는 자꾸만 '왜?'를 고민하게 됩니다. "내가 왜 살아야하지?" "왜 죽으면 안 되지?" (중략) '왜?'가 어디 있어요. 그냥 하는 겁니다. 다들 되게 생각 있어 보이고 의미 있는 삶을 살아가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삶에 뭔가 큰 의미가 있어야 한다는 믿음은 누군가의 삶에 도움이 되는 기능적 요소라기보다는 상처 입고 고단했던 자기애가 남긴 하나의 증상같은 것입니다. 삶에 큰 의미가 있을 필요가 없습니다...

진심이 굳이 통해야 하나

"내 가슴속의 모든 진심이 굳이 통해야 할 이유가 있나요? 생각해 보면 나조차도 모든 사람의 진심을 일일이 알아주며 살아오지 않았으면서. '아, 맞다, 그래도 너는 이런 진심이 있었지?' 하며 살지 않았잖아요. 진심이면 언젠가 통할 것이란 믿음은 타인의 인정이 너무나 중요하다는 말과 다름이 없습니다. 타인이 자신을 알아주지 못했을 때에 적개심을 표현하기 위한 목적의, 그럴듯한 자기기만 입니다." (허지원, 중에서) 뼈 때리는 지적이다. 사실 나 역시 진심이면 통할 거라는 믿음을 계속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내 진심을 알아봐주는 사람(이 책에서도 언급되는 이른바 '소울메이트')을 찾고 싶다고 생각했다. 책에서 저자는 소울메이트를 찾는 사람에 대해서도 "실은 예측가능하고 통제 가능한 상대를 원하는 것"이라..

10년만에 다시 한번 『앨저넌에게 꽃을』을 읽고

2013/05/09 - [내가 바라는 책읽기/고교시절 책읽기(~2008)] - , 대니얼 키스 10년 전에 읽었던 소설 『앨저넌에게 꽃을』. 당시에 큰 감동을 받고 블로그(당시엔 네이버블로그)에 짧은 리뷰(위 링크)도 썼었는데, 이번에 다른 출판사에서 정식으로 다시 번역되어 나왔다는 소식을 들었다. 너무 오래 지나서 어떤 내용이었는지 어렴풋한 기억밖에 남아있지 않아 이전 번역본과의 비교는 어렵지만, 여하튼 황금부엉이 출판사에서 나온 새 번역본으로 다시 한번 읽어보게 됐다.고등학생이던 나와 20대 후반이 된 나는 다른 사람이라고 봐야한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그런 생각을 더 구체적으로 해보게 됐다. 스포일러가 될까 조심스럽지만 소설의 내용을 좀 이야기해보자면, 주인공 찰리의 일기와도 같은 경과보고서 속에서..

최성현, <산에서 살다> 중에서

만 년 동안 반복되는 일이다. 만 년 전에도 주름조개풀 같은 풀이 있었을 것이다. 발이 없는 식물이 동물을 이용해 자신의 씨앗을 퍼트리는 이 전략을 버리기는 어려울 것이다. 진득찰, 도깨비바늘, 그령, 짚신나물, 도둑놈의갈고리 따위가 주름조개풀과 같은 방법으로 자손을 퍼트리고 있는데, 혹시 그것들이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그대의 여행을 따라나서더라도 화내지 말 일이다. 식물은 우리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내어 주면서 살지 않는가.- 최성현, 중에서 오늘의 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