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바라는 책읽기

<실패를 통과하는 일>, 박소령

참참. 2025. 12. 11. 0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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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간이 되기도 전부터 내 SNS 타임라인에도 이 책에 대한 언급이 많았다. 믿고 보는 제현주 작가님과 신수정 작가님의 추천사까지. 그 언급들만 봐도 벌써 너무 재밌어보였다. 기대치가 상당히 높은 상태로 구매했는데 당시 이제 막 출간된 것 같은데 내가 구매한 책에 "9월 19일 초판 1쇄, 9월 23일 초판 4쇄"라고 찍혀있는 걸 보고 4일 만에 4쇄라는 것에 상당히 놀랐다. 인스타에 출간 첫 주부터 작가님 몫의 책을 작가님이 직접 들고 교보문고까지 가셔야했다는 에피소드도 이해가 된다.

책뿐 아니라 뭐든 이렇게 기대치가 높은 상황에서 기대만큼 좋기가 쉽지 않은데, 이 책은 기대 그 이상이었다. 이런 이야기 더 많이 필요하다. 읽고나서 3일 정도는 회사에서 점심 먹을 때도 이 책 얘기만 한 것 같다. 나도 스타트업에 다니고 있지만 창업이라는 것, 스타트업 대표가 하는 일이라는 것에 대해 무지했다. 아는 것도 없었지만 심지어는 뭘 알고 싶은지도 몰랐는데 이렇게 생생하고 세세한 창업자 본인 입장에서의 이야기라니. 창업해본 적도 없고 투자자도 아닌 나로서는 어디서도 들어본 적 없는 진짜 귀한 이야기였다.

얼마 전 지금 다니는 회사에 상당한 규모의 레이오프가 있었다. 말로만 듣던 걸 직접 겪어보니 당황스러웠는데, 이 책을 읽기 전이었다면 몇 배는 더 받아들이기 어려웠을 거다. 레이오프를 결단하고 실행에 옮기는 창업자, CEO의 입장이나 그 과정을 회사에서 직접 겪은 레이오프로는 거의 알 수가 없었다. 직접 겪은 사건은 함께 일하던 동료들이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지는 것에 가까웠다. 가장 먼저 느낀 감정은 당황스러움과 상실감, 그리고 나도 언제 잘릴지 모른다는 불안감과 위기감이었다. 며칠 지나고나니 좀 진정이 됐지만, 그 결정의 배경이나 뒤에 있는 것들은 어쩔 수 없이 사후에, 일부만 전달 받을 수 있었다.

<실패를 통과하는 일>에서 반복적으로 나오고 가장 인상깊었던 것 중 하나가 "늦게 레이오프해서 후회하는 경우는 많아도 빨리 해서 후회하는 경우는 없다", "레이오프를 해야한다면 한번에 최대한 많이" 등의 조언이었다. 그냥 들었을 때는 갸우뚱인데 이 책의 이야기를 따라가면서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물론 레이오프를 하지 않을 수 있다면 제일 좋겠지만, 사업의 방향도 계속 바뀌고 조직에 필요한 인재도 계속 변하는 상황에서는 정말 어쩔 수 없겠구나 싶었다. 책을 읽으며 그런 관점에 푹 빠져서 생각해봤기 때문에 직접 겪으면서 받은 상처도 필요 이상으로 벌어지거나 곪지 않을 수 있었던 것 같다. 이런 것도 작가님이 말씀하시는 (인생을 바꾸는) 콘텐츠의 힘이다.

여기까지 쓰고 책을 다시 펼쳐봤는데 목차를 보면 레이오프는 (다른 챕터보다 긴 편이긴 해도) 10개의 챕터 중 하나일 뿐이다. 근데 왜 강렬하게 기억에 남았을까? 아무래도 가장 격렬한 감정이 오갈 수밖에 없는 일이어서 아닐까. 책으로 읽고 있을 뿐인 나까지 감정이 요동쳐서 힘들 정도였다. 10개 챕터 모두 어떤 배움을 얻었는지에 포커스가 있고, 그러다보니 아무래도 주로 힘들거나 어려웠던 점들이 많이 나왔던 것 같은데 나는 그 중 레이오프가 압도적이었나보다. 물론 최근 내가 레이오프를 겪어서 그런 것도 크다.

창업의 여정을 마무리하기로 결정하게 된 이야기를 맨 앞에 배치한 게 좋았다. 책에서 그동안 창업해서 겪으신 일들, 창업이라는 경험 전체에 대해 "나를 알아가는" 과정이었다고 하셨는데, 그 메시지가 첫 장부터 확실하게 각인됐다. 시작할 때의 나, 시작할 때 내가 하려고 했던 것과 몇년이 지난 그 시점에서의 나와 지금 실제 하고 있는 일을 돌아보면서 다시 나를 찾는 장면이 꼭 영화 같았다. 말을 타고 오랫동안 이동하면 너무 빨라서 영혼이 미처 따라오지 못할까봐 가끔 멈춰서 기다리곤 했다는 인디언 이야기도 떠오른다. 일이 아무리 중요해도 내가 있고 삶이 있어야 일도 있다는 걸 기억하고, 어떤 인생을 살고 싶은지 그걸 나 자신에게 물어보고 계속 동기화시켜야겠다. 인생은 가고자하는 곳도 자꾸 바뀌고, 길은 복잡하고, 그때그때 타고 있는 교통수단도 다른 모험같은 것이 아닐까. 달릴 땐 시원하게 달리고 길을 잘못 들면 그건 그거대로 그곳을 즐기는 게 좋겠지만 돌이킬 수 없을만큼 너무 엉뚱한 곳으로 가지 않으려면 결국 지도와 내 현재 위치를 가끔 확인하는 수밖에. (아, 그리고 달리기 얘기가 나와서 엄청 반가웠다.)

여담으로 책에서 작가님이 각 상황이나 고민 때마다 도움 또는 영감을 받았던 책이나 콘텐츠가 많이 언급되다보니 관심 가는 게 많았는데, 그 중 첫번째로 <월마트: 두려움 없는 도전>을 읽어봤다.(사실 체감상 거의 매 장마다 한번은 언급되는 <가난한 찰리의 연감>이 더 궁금했는데 그건 근처 도서관에 없어서 일단 이걸 먼저 빌렸다.) 간단히 말하면 분명 재밌고 인사이트도 있었지만 <실패를 통과하는 일>만큼은 아니었다. 진짜 재밌는 책 안에서 작가가 직접 읽었고 영감을 얻었다는 다른 책이 나오면 그건 지금 읽고 있는 이 책만큼 혹은 이 책보다도 더(이 책을 직접 쓴 사람이 칭찬하니까!) 엄청난 뭔가가 있지 않을까하고 기대치가 올라가는 것 같다. 나만 그런가?

그렇지만 작가님 인스타를 팔로우하면서 읽게 된 컨텐츠에 대한 평들이 너무 재밌다. 계속 궁금하다. 덕분에 새로 알게 되는 작품도 많다. 컨텐츠가 인생을 바꾼다고 믿(고 그걸로 창업까지 해본 적 있)는 사람의 컨텐츠 추천과 평인데, 이건 못 참지.

(https://www.instagram.com/soryoung.pa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