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2023~

남들의 시선

참참. 2024. 8. 4. 13:08


전부터 "저 사람이 날 뭐라고 생각할까?"하는 생각을 꽤 많이 했던 것 같다. 한편으로는 남들의 시선같은 건 신경쓰지 않고 살고 싶다, 남들이 뭐라 하든 내가 하고 싶은 일,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고싶다고 늘 생각했다. 그런 (것 같아 보이는) 사람들을 볼 때 멋있다고 느꼈다. 그럼에도 남들의 시선에 신경 쓰는 일을 멈출 순 없었다. 그건 그래야겠다고 생각을 해서 그랬다기보다는 생존을 위한 반응에 가까웠다. 밥을 먹지 않으면 배가 고프고, 그럼 음식냄새에 눈이 돌아가는 것처럼 그런 반응에 가까웠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이걸 그러지 말아야겠다는 생각만으로 의식적으로 통제하는 건 쉽지 않다.

연인은 내게 남들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고 사는 게 신기하다고 했다. 그러려고 노력은 했어도 스스로 특별히 남의 시선을 신경쓰지 않으면서 살고 있다고는 생각해본 적이 없기에, 나도 누군가에게는 그렇게 보일 수도 있다는 것이 신기하다. 그런데 그 말을 듣고 생각해보니 의식적으로 노력한 부분도 있지만, 생리적인 반응 차원에서도 이전보다는 좀 덜 신경쓰는 것 같긴 하다. 뭐가 달라졌을까?

첫번째로 떠오른 생각은 내게 가장 소중한 사람은 연인이기에 그 외의 사람들이 나를 바라보는 시선, 나에 대해 판단하는 것들이 내게 훨씬 덜 중요해졌다는 것이다. 내가 가장 신경써야하는 사람의 우선순위가 명확해졌다는 점이 하나 있고,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바로 그가 나를 쉽게 판단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앞에서 나는 어떤 말을 하고 어떤 행동을 해도 안전하다고 느낀다. 아무리 가깝다해도 우리는 서로 다른 부분도 많은 사람이기에 척하면 척 다 이해할 수 있는 건 전혀 아니다. 그러나 내 말이나 행동이 이해가 안 되거나 기분을 상하게 한다면 넘겨짚거나 오해하기보다는 확인하기 위해 다시 물어보겠지하는 믿음이 있다. 앞으로 절대 싸우지 않을 거라는 믿음은 없지만 또 싸우더라도 결국은 대화 끝에 어떤 이해에 도달하고 그로 인해 서로에 대해 조금 더 이해하게 되면서 화해하게 되겠지하는 믿음을 함께 만들어왔다. 그것이 심리적 안정감을 준다.

"남들의 시선"에서 "남들"은 누구를 의미하는가. 대부분 그렇겠지만 나에게도 이 "남들"이 결코 지구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나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내가 믿는 사람들을 의미한다. 내가 사랑하고 존경하는 사람일수록 내게 미치는 영향이 크기에 나도 그의 시선, 그의 판단에 대해 더 걱정하게 된다. 나에게 별 의미가 없는 사람이라면 나도 그에 대해 별로 걱정하지 않는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랑 상관없는 일이니까. 과거의 나와 지금의 나의 차이는 내가 그 "남들", 즉 내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람의 범위를 어디까지로 상정하느냐의 차이에 크게 기인하는 것 같다.

기억에 의지해 예전의 나의 사고의 흐름을 곰곰이 돌아봤다. 한두 번 봤을 뿐이지만 어딘가 매력적이고 내가 갖고 있지 않은 무언가를 갖고 있는 것 같고, 앞으로 친해질지도 모르고 친해지고 싶다고 생각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내가 의식하는 "남들"의 범위에 포함되었다. 그리고 그들은 별로 관심 없을지라도 그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해 내가 촉각을 곤두세움으로써 스스로 영향을 받았다. 그러니까 그들은 그들의 의지와는 크게 관계없이 내게 영향을 미치는 사람들의 범위에 들어와있었다고 할 수 있다. 내가 스스로 그들에게 (그들이 달라고 한 적도 없는) 나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힘을 부여했던 것이다.

지금은 이 "남들"의 범위가 많이 줄었고, 그 중 압도적인 우선순위를 가진 사람이 나에게 어떤 생각이나 태도를 강요하지 않고 내 얘기를 잘 듣고 나를 최대한 이해하고자 하는 태도를 견지함으로 인해, 나도 나 자신에 대해 더 관대해졌다. 여전히 내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람들은 직장 등에 여럿 존재하고 그들의 시선이나 판단에 대해 아예 신경을 끌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어차피 모든 사람의 마음에 들 수도 없고 그 사람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른다. 때문에 그의 마음에 들기 위해 그가 좋아할 거라고 내가 추측한 어떤 모습을 연기한다는 것도 그냥 내 맘대로 하는 것과 확률은 크게 다르지 않을 수 있다. 되도록 최소한의 예의를 지키는 선에서 솔직하게 행동하고 그게 그 사람의 마음에 들면 좋고, 그게 그 사람 마음에 들거나 안 들거나하는 건 그의 문제이며 설령 그의 마음에 안 든다고해도 그가 나에게 미치는 영향력을 내쪽에서 최소화할 수 있으므로괜찮지 않을까. 게다가 만약 연기를 해서 내가 신경 쓰는 사람의 마음에 든다고 해도 그 관계는 계속 내 추측과 연기에 많은 부분을 기대게 되므로 지속적이고 발전적인 관계가 되는 데에 썩 좋은 시작은 아닐지도 모른다.

그동안 살아오면서 여러 실수를 했고 다른 사람 앞에서 보이고 싶지 않은 모습을 보인 경험들도 그 경험에 대한 내 관점과 해석 여부에 따라 도움이 되었다. 가령 어린 시절의 나는 다른 사람 앞에서 누구라도 잘한다고 인정해줄 만하다고 스스로 느끼지 않는 무엇을 보여주는 것이 몹시 부끄러웠다. 나는 노래도, 춤도, 악기도 딱히 누군가의 앞에서 보여줄 만한 것이 없다. 그런데 차차 그런 모습을 어쩔 수 없이 보이고 후회하고 즐기고 다른 사람들이 그런 모습을 뻔뻔하게 보여주는 것을 경험하면서 달라졌다.

누군가가 못하는 무언가를 해도 그 용기에 감탄하고 그렇게 웃음을 주는 것이 좋고 고맙지, 이상하다고 생각하거나 욕하고 싶은 마음이 별로 들지 않는 걸 경험하고나니 남들도 나에게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상상할 수 있게 됐다. 내가 다른 사람들 앞에서 잘 하지도 못하는 마라탕후루 챌린지같은 걸 춰도 큰 일이 벌어지긴 커녕 그냥 즐거운 추억이 될 뿐이라는 걸 믿을 수 있게 된 것이다. 물론 누군가는 정말로 욕하고 흉보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근데 그런 사람이 있다는 걸 알게 된다면 오히려 좋은 게, 그런 사람은 내쪽에서 멀리하고 싶기 때문이다. 같이 인생을 즐기기에도 모자란 삶에 그런 사람은 별로 곁에 두고 싶지 않다. 한마디로 많이 뻔뻔해졌다.

<매일의 감탄력>에는 "뻔뻔한 사람이 성공하는 이유"라는 글이 실려있는데, 이 글에서 저자는 "뻔뻔한 그림 실력이 부러워요."라고 SNS에 달린 댓글을 보며 너무 적절하다고 생각해 "으하하" 웃어버린 에피소드를 소개한다. 뻔뻔함도 실력이구나하는 깨달음을 얻은 일화도 소개하고 있는데, 공감한다. 뻔뻔하게 공개하면 웃음을 줄 수도 있고 피드백을 받을 수도 있고 어찌 되었건 하는 동안 재밌었으면 재미도 얻을 수 있다. 어쨌든 해보고 공개하면서 얻는 게 훨씬 많다. 그것들이 삶을 더 풍요롭게 만든다. 여전히 그게 마냥 쉽지는 않지만 하고싶은 걸 좀 해본다고해서 대개 큰일은 나지 않는다는 걸, 또라이 소리를 들을지도 모르는 뭔가를 한다는 건 삶이 좀 더 즐거워질 수도 있는 기회라는 걸 믿기에 한번 더 용기를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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