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전 글에도 등장한 돌콩 유튜브의 자기계발서 100권 5분 요약 영상에는 제약constraint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Dare to introduce constraints into life."(과감히 삶에 '제약'을 부과할 것.)
행복하려면 온 우주와 무한한 자유가 필요할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오히려 내 삶을 제한하는 제약조건들이 삶에서 의미와 행복을 찾는데 도움을 줄 수 있다. 영상에서 말하는 제약의 예시는 이렇다.
"Introduce people, community, pats, and plants into your life."(내 삶에 사람들, 공동체, 반려동물, 식물들을 초대할 것.)
속초 여행에서 사온 또 한 권의 책 <매일의 감탄력>(김규림 지음, whale books)에는 "한계라는 가능성"이라는 제목을 달고 있는 글이 있다. 아이팟 수리와 포맷을 계기로 한 달에 MP3 파일 30곡씩만 다운로드할 수 있는 요금제를 결제한 경험에 대한 글이다. 30곡이라는 제한이 생기자 한 곡, 한 곡이 소중해지고 30곡을 엄선하는 과정에서 내 취향과 이 노래가 내게 갖는 의미 등을 생각해볼 수 있어 좋았다는 경험을 소개한다. 이어서 데드라인이나 예산이 정해지지 않은 프로젝트에서 느낀 막막함, 그래서 오히려 스스로 제한 조건을 설정했더니 그 안에서 더 마음껏 놀고 내가 하고싶은 게 뭔지가 명확해졌던 경험들을 연결한다.
고등학교때 기숙사 생활을 하면서 3년간 극히 통제된 생활을 했었다. 학교는 산 속에 있었고 핸드폰과 컴퓨터는 금지였다. 기상은 5시 50분, 야간자율학습은 밤 12시에 끝났다. 시간도 마음대로 쓸 수 없고, 돌아다닐 수 있는 곳이라곤 작은 체육관, 운동장, 교실, 독서실, 기숙사방이 전부였던 곳에서 나는 자유를 갈망했다. 원하는 시간에 자고 원하는 시간에 일어날 자유, 원하는 곳에 갈 수 있는 자유, 원하는 것을 할 자유. 그리고 그로부터 약 10년 후, 일을 그만두고 귀촌을 해서 결국 그 모든 자유를 얻었다.
돈이 많지 않더라도 365일, 24시간 내내 아무것도 강요받지 않는 자유를 얻고자 했고, 그래서 얻었는데 나는 더 불행해졌다. 그 불행에는 돈이 없다는 인식도 분명 한몫했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 상태에서 돈은 핵심이 아니었다. 있었다면 조금 더 나을 수도 있었겠지만 오히려 더 나빴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분명 그 공허함을 채우거나 잊기 위해 돈으로 가능한 많은 것을 시도했을텐데 운이 좋았다면 그럭저럭 잘 맞는 취미생활이라도 찾았겠지만, 어쩌면 그 돈의 힘으로 말초적인 자극을 찾아다니며 삶을 더 철저하게 파괴했을지도 모른다.
여차저차해서 결국 서울로 돌아왔고, 어쩌다보니 직장인이 되었다. 매일 9시부터 6시까지 내가 갈 곳이 있고 내가 할 일이 있다는 것이 주는 그 안정감. 처음엔 심지어 새로운 걸 배우고, 매일 주어지는 퀘스트를 깨고 누군가에게 인정받거나 욕을 먹는 회사생활이 너무 자극적이어서 주말이 심심하다 느낄 정도였다.(마침 시작된 코로나 때문에 사람도 못 만나서 더 그랬다) 어쨌든 하루에 11시간은 잡아먹는 직장생활이라는 그 커다란 제약 덕분에 조금씩 나머지 시간들의 의미도 더 커졌고, 그 소중한 시간에 무엇을 하고 싶은지에 집중하게 됐다. 오늘 출근지하철에서는 무슨 책을 읽을까, 출근길에 운동도 겸하고 풍경도 구경할 수 있게 자전거로 출근을 해보는 건 어떨까. 퇴근길엔 무슨 컨텐츠를 볼까, 어떻게 시간을 쪼개서 하고 싶은 공부를 할까. 할 시간이 없어지니까 하고싶은 게 더 생기는 게 웃프다고 생각했다. 마치 시험기간이 다가오면 평소에는 생각해본 적도 없던 별 희한한 것들이 다 하고싶어지던 고등학생 때처럼. 그게 참 납득이 되면서도 한편으로는 계속 신기했는데, 이제야 이해가 된다.
그동안 내 삶에는 더 많은 제약이 생겼다. 연봉은 올랐는데 주택담보대출을 빡세게 갚게 된 덕에 가처분 소득은 더 줄었다. 평생 함께하고 싶은 한 사람과 앞으로도 삶을 함께하기로 하고 혼인신고를 했다. 그와의 저녁식사와 산책이 좋아서 친구나 다른 사람들을 만나는 횟수가 많이 줄었다. 회사 일만으로도 일상에서 아주 많은 시간을 코딩하는데 쓰고 있는데 지인의 프로젝트 참여요청을 수락함으로써 매주 온라인으로 회의를 하고 집에서 또 코딩을 한다. 그 와중에 감사일기를 쓰고, 달리기를 하고 요가원에 가서 요가도 한다. 정작 회사도 안 가고 24시간 내내 마음대로 할 수 있을 때는 감사일기도 안 썼고, 달리기도 안 했고, 산책도 안 했다. 인생이 참 재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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