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한 해도 꽤 다사다난했던 것 같다. 두 번 정도 다녀보고 싶은 회사에 지원했는데 떨어지기도 했고, 꽤나 마찰을 각오하고 사내에서 팀을 옮겼다. 그렇게 옮긴 팀에서 잘 적응하고 있었는데 12월에 다시 조직개편으로 이번엔 타의로 팀을 옮겼다. 다행히 옮긴 팀 구성원 분들과는 꽤 잘 맞는 것 같다.
혼인신고를 했다. 2020년 초에 이혼했으니 약 4년만에 두번째 결혼을 한 셈이다. 결혼식은 안 했지만 회사에서 준 휴가와 화분은 받았다. 휴가 덕분에 제주도로 여행을 갔다. 이 제주도 여행이 정말 좋았다. 쏘카를 빌려서 타고 다녔는데 날씨가 너무 좋아서 창문으로 내내 꽃이 보이고 창을 열면 꽃향기도 나서, 원래 운전을 그리 좋아하는 편이 아닌데 이땐 그냥 드라이브만 해도 좋았다.
한라산도 처음으로 등산해봤는데 재밌었다. 아내와 회고하면서 곰곰이 냉정하게 생각해보니 제주도에서 묵었던 숙소 두 곳이, 특히 처음 묵었던 숙소 같은 경우에는 딱 숙소 건물, 방 내부 시설만 놓고 보면 그렇게 고급스럽거나 좋은 곳은 아니었는데(가성비가 좋은 곳) 그런 게 별로 안 중요하고 기억도 잘 나지 않을 정도로 여행 전체가 좋은 기억으로 남았다. 유일하게 아쉬웠던 건 금오름 근처 지역의 돼지분뇨 냄새 정도? 처음 묵은 동네에서는 꽃향기를 맡고 다녀서 그런지 두번째 숙소 근처 동네에서 간혹 나던 축산 분뇨 냄새가 못내 아쉬웠다.
10km 마라톤 3회, 5km 1회 참가했는데 거의 참가할 때마다 개인기록을 경신해서 작년의 나로서는 기대하지도 않은 수준의 기록을 내서 기뻤다. 5km 대회는 오랜만에 강원도 홍천에 가서 개구리님과 소금쟁이님을 뵙는 계기가 되었고 두분과 함께 대회에 참가할 수 있어서 뜻깊었다.
동생네 가족과도 그 어느때보다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낸 한 해였다. 속초 여름휴가에 일본 후쿠오카, 유후인 여행도 동생과 조카와 함께 갔고, 김장김치를 가져다주러 동생네 집에도 놀러갔고 최근에는 동생과 조카가 우리 집으로 놀러오기도 했다.
올해 가장 기억에 남는 배운 것은 "필요한 건 요청하라"였다. 전부터도 이 내용은 계속 배우긴 했지만, 올해는 유독 강렬했던 것 같다. 필요한 걸 요청하거나 요구한다는 게 말할 것도 없이 당연한 일인데도 사실 현실에서는 쉽지 않은 점이 많다. 근데 가고 싶은 회사의 CTO이신 향로님한테 링크드인으로 1촌을 걸어서 큰 기대없이 커피챗을 요청했는데 회사도 바쁘고 결혼준비까지 하시느라 더블로 바쁜 상황에서도 시간 내어주셨다. 회사에서도 팀을 옮긴다는 게 그리 쉬운 요청은 아니었고 우여곡절도 있었지만 어쨌든 받아들여지는 경험이 있었다.
미국 디스커버리 <<억만장자 파헤치기>> 프로그램을 보면서도 당당하게 요청하는 모습이 제일 인상깊었다. 거절당하기도 하는 건 당연한 거지만 애초에 요청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상대방이 내가 원하는 걸 알아채거나 해줄 가능성은 아예 없다고 볼 수 있다. 요청을 하면 뭐 거절을 당하거나 사이가 안 좋아질 수는 있겠지만 최소한 상대방이 내가 원하는 걸 인지할 수 있고 그걸 어떻게 해줄 수 있을지 고민해볼 수가 있다. 그리고 상상하는 것보다 상대방은 의외로, 신기하게도 요청을 들어주고자 한다는 걸 느꼈다. 신기했지만 곰곰이 입장 바꿔 생각해보면 나도 누가 요청하면 반드시는 아니지만 웬만하면 해주는 쪽으로 먼저 고민을 해보는구나, 그렇게 생각하니까 이해가 됐다.
아내와 넷플릭스에서 <<지금 구매하세요>>라는 다큐멘터리를 봤는데, 그걸 보면서 내가 어떤 것에 가치를 두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됐다. 지금 회사도 충분히 좋은 회사고 좋은 동료들과 함께 만족하며 다니고 있지만 더 내가 추구하는 것과 비슷한 가치를 지향하고 추구하는, 그리고 세상에 실현하는 회사에 갈 수 있다면 더 재밌을 수도 있겠다, 그런 생각을 했다. 그래서 이번에도 적극적으로 요청해보고 있다.
새해에 특별히 바라는 건 없지만 지금까지처럼 잘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