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2023~

친구의 출국 기념 독주회에 다녀와서

참참. 2024. 6. 16. 20:31


어느새 10년이나 알아온 친구가 곧 기약없이 독일로 떠난다. 활동하면서 꽤 자주 만난 기간도 있지만 대체로 그렇게 자주 보거나 매일같이 연락하는 사이는 아니었다. 그래도 SNS로 서로의 근황을 업데이트해가며 느슨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평소엔 특별히 만날 일 없지만 무슨 일 있으면 연락할 수 있는 사람. 연락하고 싶은 사람. 그런 사람 귀하다. 이런 게 조용히 응원하고 응원받는다는 건가 싶다.

1부 세 곡의 연주를 마치고 인터미션이 끝난 뒤, 친구는 눈부신 금빛 드레스 차림으로 나타났다. 객석에서 탄성이 터져나왔다. 그는 쉼없이 반짝거렸다.

2부 연주까지 마친 뒤에는 드디어 마이크를 잡았고, 이 말들을 어떻게 참고 피아노만 치고 있었나 싶게 이야기를 쏟아냈다. 고퀄리티 리플렛에 적힌 일대기처럼 토크도 시종일관 유머로 가득했는데 그 웃음 속에서 눈물이 공존하는 게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연주도 감동이었고, 이야기는 더 감동이었다. 탁월한 기획자답게 입장부터 돌아가는 길 답례품까지 완벽하게 잘 기획된 행사이기도 했다.

리플렛의 첫 곡에 곁들여진 설명에는 뿌리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나도 꽤 오랜 시간 땅에 제대로 발을 딛고 있지 못하고 어딘가 ”부유하는“ 듯한 느낌으로 살았던 것 같다. 한동안은 나는 가족도 무엇도 없고 아무데도 기댈 곳도 없다고 생각했다. 누군가와 가까운 사이가 된다는 것이 내게 너무 중요했고, 그 중요한 일에 자주 실패하고 있다고 느끼곤 했다. 그 시절들이 생각났다.

오늘 아침에 달리기를 하다 문득, 달릴 때는 내가 땅에 발을 딛는다는 것이 너무 잘 느껴지는구나 하고 생각했다. 왜 달리는가에 대해 그동안 많은 이유들을 생각해봤지만 이건 또 처음이었다. 땅을 박차며 달리면서 동시에 둥둥 떠다니고 있다고 느끼는 것은 잘 상상하기 어렵다. 그 감각이 좋구나, 단단한 땅을 내 발로 차고 나가는 그 느낌을 내가 꽤 좋아하는구나 생각했다.

열정은 고통에도 불구하고 온전히, 성실히 거쳐나가는 것. 아마 정확한 워딩은 조금 달랐을 테지만(녹화해서 다시 보고 싶은 토크쇼였는데 못해서 아쉽다), 그게 인상깊었다. 그래왔던 그동안의 삶을 통째로 정리하고 통합해서 긍정한 뒤 앞으로의 삶도 잘 살아낼 수 있다는 근거로 삼아버리는 태도가 대책없이 멋있다.

멘델스존의 웨딩마치 곡을 연주하며 또 삶의 다음 장으로, 다음 반짝임으로 가는 친구에게 내가 해줄 건 별로 없지만 지금까지처럼 먼 발치에서 글 읽고 영감 받고 좋아요 누르면서 응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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