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2023~

새 삶

참참. 2024. 2. 15. 08:59

 

요즘도 가끔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생각의 습관이란 참 무서워서, 비슷한 상황에 처하면 나도 모르게 그런 상황에서 늘 해오던 익숙한 생각으로 돌아간다. 그러나 여기에 새로운 길을 연결할 수는 있다. 심리상담 선생님은 죽고 싶다는 생각이 자꾸 든다는 내 말을 듣고 단호하게 "그건 잘 살고 싶은 마음"이라고 말씀하셨다. 곰곰이 생각해본 결과 과연 그랬다. 쉽지 않은 이야기이지만 내 기억에 연인에게도 이 얘길 했던 것 같다. 이 과정을 통해 새로운 연결이 만들어졌다. 이제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 아 내가 지금 잘 살고 싶구나하고 생각이 이어진다. 기적이다.

이전에는 어땠는지 생각해보면, 2019, 2020년에는 이렇게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죽고 싶다, 삶이란 어차피 이렇게 고통스러운 나날들을 계속 견뎌나가는 것뿐 아닌가, 내가 더 살아야할 이유가 있나, 내 삶에 더 기대할 만한 것이 남아있나, 상황이나 기분이 여기서 더 나아질 만한 가능성이 있나, 없어보인다, 이렇게 고통을 견디면서 수십 년을 더 살아야할 이유가 없다면 그만두고 싶다. 당시의 나에게 이 논리는 너무 완벽해보여서 내 안에서 계속해서 반복됐다. 그때의 사고과정을 복기하다보면 그럼에도 정말로 죽지는 않아서 지금까지 살아있다는 것이 더 신기하게 느껴질 때도 있다. 그러니까 이대로 가면 정말로 죽겠다라는 상황까지 버티고서야 무슨 수를 써서라도 삶을 바꿔야겠다는 결심이 섰고, 서울로 왔고 이혼을 했던 거였다.

그 덕에 살아났지만, 그렇게 반복하던 생각들이 주거지를 바꾸고 이혼했다고해서 갑자기 다 사라지진 않았다. 그래서 그 뒤에도 종종, 자주 죽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다만 아주 많은 변화들, 직장에서 일에 몰두하는 시간들, 새로운 사건들 덕에 그런 생각을 할 시간이 줄어들었을 뿐이다. 그것만으로도 물론 큰 도움이 됐다. 하지만 여전히 그 생각이 시작되면 살아야하는 이유, 살고 싶은 이유라는 질문에 답을 할 수 없었다.

그러다 사랑을 재정의하게 하는 사람을 만났다. 마치 사랑이란 어떤 것인지, 사랑하고 사랑받으며 사는 삶이란 어떤 느낌이고 어떤 모습인지를 처음으로 겪어보는 것 같았다. 그 사랑과 그 사람은 살고 싶은 이유의 강력한 하나의 축이 되었다. 태어나서 한번도 진지하게 해본 적 없는 오래 살고 싶다는 생각까지 들 정도로.

몇달 전 불안감이 올라와서 오랜만에 심리상담 선생님과 마주 앉았을 때, 선생님의 "잘 살고 있다"는 한 마디가 내가 지금 정말 잘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스스로 돌아보고 인정할 수 있게 만든 적이 있다. 그건 선생님의 능력이기도 하지만 애초에 내가 정말 잘 살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내가 정말 잘 살고 있지 않았을 때는 선생님도 그렇게 말씀하시지도 않았고 설령 하셨더라도 내가 납득하지 못했을 거다. 선생님의 잘 살고 있다는 말을 듣고 내가 몰두하던 "문제"에서 고개를 들어보니 잘 살고 있는 내 삶의 풍경이 눈에 들어왔고, 그래서 납득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풍경 안에는 연인이 있었다. 눈을 돌려 옆을 봤을 때 그를 보면 내가 잘 살고 있는지 알 수 있다.

다시 죽고 싶다는 생각이 찾아왔을 때, 나는 그게 잘 살고 싶은 마음이라고 이어서 생각했고, 그럼 잘 산다는 건 어떤 것이지하고 생각하며 곁에 있는 그를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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