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2023~

무엇을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

참참. 2024. 2. 15. 08:21
 
24년 1월 18일 인스타/페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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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에 처음 읽은 책이 <오르부아 에두아르: 나는 프랑스 책벌레와 이혼했다>였다. 별점 5점을 줬다. 이혼하는 사람은 많은데 이혼경험담은 아직도 귀하다. 이 책은 힐링에세이라는 주장이 우습지 않을만큼 다정하다. 이혼 얘기하는데 이렇게까지 다정한 것도 재밌는데 그게 나와 연인의 엄청난 공감 포인트였다. 이주영 작가님은 결혼은 축하하는데 왜 이혼은 축하하지 않냐며, 더 나은 삶을 위한 선택이니 당연히 축하해야한다며 자기라도 모든 이혼하는 사람들에게 축하인사를 전한다고 썼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자기와 안 맞아서 힘들게 버티며 다니던 회사를 퇴사하는 친구를 축하할 수 있다면 이혼도 마찬가지 아닐까 싶다. 아직도 회사에서 이혼얘기를 꺼내면 다들 당황한다. 이젠 그게 좀 재밌기까지 하다. 나라도 이혼한 사람이 당신 옆에 멀쩡히 살고 있다는 것을 알려야겠다.
요즘은 신수정 작가님의 <일의 격>을 읽고 있는데, 안타를 맞는다는 것은 스트라이크를 던질 수 있다는 의미라는 글이 참 좋았다. 내가 실패로 여겨지는 무언가를 경험하고 있다는 것은 적어도 내가 뭔가에 도전했다는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스스로를 대견하게 생각할 만하다.
나에게 있어서 내 삶, 내 성격, 내 정체성이라는 게 결국 내 기억에 기반한다면 어떤 것을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 지금까지 공부한 바에 따르면 어떤 기억이 장기기억으로 갈 확률은 크게 세가지에 의해 높아진다. 감정, 연결, 반복출력이다. 크고 강렬한 감정(그리고 부정적인 감정이나 생존위협의 경우 좀 더)일수록, 그런 감정을 동반한 기억일수록 깊이 새겨질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기존의 기억들과 연결고리가 많을수록, 그것을 연상시키는 다양한 것들과 연결시켜놓을수록 기억될 가능성이 높다. 연결에서 이어지는데, 기억은 반복해서 입력하는 것보다는 출력과정에서 새겨진다. 출력이 쉽게 되려면 그것을 연상시키는 것이 다양하게 많이 연결되어있을수록 유리하다.
이런 관점에서 친밀한 사람과 하루의 일들을 나누는 것은 그 일들을 장기기억으로 보낼 가능성을 현저히 높인다. 겪은 일을 다시 이야기하고(출력) 그에 대한 감정을 나누면서 친밀한 사람과 그 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는 새로운 기억, 감정과 연결된다. 그 이야기를 나눈 장소나 그때 먹은 음식, 들은 음악, 냄새 등과도 연결됨은 물론이다. 또한 그 일이 이제 상대방의 기억 속에서 공유된다. 그렇게 그 경험들이 장기기억으로 가고 내 삶과 성격, 내가 사는 세계가 된다.
심리상담은 마치 그 기억을 꺼내서 다른 색깔로 칠해서 다시 넣는 작업과 비슷한 것 같다. 내가 반복적으로 꺼내보면서 내 잘못과 내 결함의 증거로 삼았던 기억을 꺼내어 다른 질문을 던진다. 내가 아니라 내 가장 친한 친구, 혹은 그저 어린 아이가 그 상황에 처했고 그런 행동을 했다면 나는 그걸 뭐라고 생각할까라든지, 내가 고정시켜두었던 관점에서 벗어나 기억을 다르게 해석해서 다른 색으로 칠해 다시 넣어둔다. 그럼 내 세계의 일부였던 그 기억이 이전보다 나를 덜 괴롭히게 된다. 인간의 기억은 생각보다 부정확해서 사실 그 기억들이 실제로 일어난 팩트와는 크게 관련이 없을 수도 있다. 그것에 대한 내 해석, 내 감정들이 더 핵심이다. 기억이 부정확하고 꺼낼 때마다 편집된다는 것은 희망적이다. 역사적 과거는 바꿀 수 없지만 그 과거가 어떤 것이었나에 대한 내 기억의 색깔은 어느 정도 바꿀 수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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