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2013~2019

뜬금없는 여행, 다섯번째 이야기.

참참. 2013. 7. 2. 10:20


아저씨들 말씀대로 안에 쌓여있던 컵라면을 하나 꺼내 먹고, 하룻밤을 묵었던 조령건강원을 나와 다시 길을 떠났다.
어제 들은 많은 이야기와, 그동안 차들과 함께 걷는 길에 조금 지쳤던 경험 덕분에, 빙 돌아서 가더라도 문경새재의 아름다운 길을 걸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고, 그렇게 했다.


지도만 보고는 가는 길을 잘 모르겠어서, 경찰 아저씨께 여쭤보았다. 아주 친절하게 설명을 해주시며, 수옥폭포가 그렇게 좋다고, 수옥폭포 쪽으로 꼭 가보라고 추천을 해주셨다. 내가 폭포 좋아하는 건 또 어찌 아시고 폭포로 유혹을 하셨다.

경찰서 앞에 붙어있던 안내지도.



폭포를 향해서 길을 가는데, 길거리에 이런 보물(!)이 있었다.


드디어 도착한 수옥폭포. 토요일이라 그런지, 단체로 오신 분들이 있었다. 부탁하시기에 단체사진도 찍어드렸다. 내 사진은, 혼자 알아서 찍었다.


올라가는데, 왼쪽으로는 물이, 오른쪽으로는 산이. 귓가엔 새소리가 들리고 아무도 없이 조용한 가운데 바람만 살랑살랑 불었다. 그래, 걷는 길이 이래야지. 발목도 안 아프네(라고 생각하는 순간 다시 아파졌다.)

출발할 때는 하루에 50킬로미터씩 걸어 8일 만에 부산에 닿아야지, 라는 패기가 넘치는 각오로 출발했다. 그렇지만 발목이 팅팅 부어 누구보다 천천히 문경새재를, 그것도 빠른 길이 아니라 돌아서 가는 예쁜 길로 걸어서 넘는 지금, 이대로 행복하다. 급할 것이 뭐 있으랴, 싶기도 했다.

신기한 뭔가가 있었는데, 아무도 없어서 그냥 건물만 구경하고 나왔다.


어사또가 걷던 길이라든가, 문경새재 과거 길이라는 안내들이 정겹다.

한국의 아름다운 길이라는데, 참 생뚱맞은 도로에나 있을 법한 표지판.

이런 관문이 세 개. 3관문에서 시작해서 1관문으로 갔다. 사진은 2관문.

여기도 토요일이라 그런지, 걷는 사람이 굉장히 많았다. 쉬다보니, 잠깐 사람이 아무도 없는 틈이 나서 냉큼 사진을 찍었다.
맨발로 걷는 사람도 많았다. 나도 물집만 아니었다면, 맨발로 걷고 싶었다. 

사람들은 저마다 왁자지껄 즐겁게 산책을 즐기고 있었다. 문득, 이 예쁜 길을 누군가와 함께 걷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차들만 지나다니는 국도를 며칠이나 혼자 걸으면서도 아무렇지 않았는데,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많은 사람들과 함께 걷던 이때, 외로움이 찾아왔다. 이 아름다운 곳에서, 누군가를 위해 준비한 음식을 함께 먹고, 손을 잡고 걷고 싶다.

별로 길지도 않은 산책로를 넘는데, 몇번을 쉬었는지 모르겠다. 많은 사람들이 나를 앞질러 갔다. 아무렴 어때?
재밌는 소설을 읽을 때 이 이야기가 끝나지 않기를 바라듯, 이 길이 차라리 끝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마저, 들었다.


아침에 컵라면 하나 먹고, 가져온 초코바 하나 먹으면서 걷다보니 점심 때였다. 약수터가 옆에 있고, 사람들이 잔뜩 모여서 음식을 먹는 곳이 있어서 거기서 눈치를 보고 있었다. 단체로 온 분들도 계시고 가족 단위로 온 분들도 있었는데, 그 가운데 한 가족이, 딱 보니까 김밥이 너무 많아서 다 못 먹을 거 같더라. 참, 지금 생각해도 민망하고, 그때도 사실 민망해서 계속 망설이고만 있었다. 더 뻔뻔해져야 하는데. 선뜻 말을 못 걸고 계속 있다보니, 김밥 남은 걸 대충 싸시더니 버리러 가시는 거다! 다급해져서 빠른 걸음으로 아저씨한테 다가가 "김밥 버리시는 건가요?" 했다.

아저씨는 처음에는 아마, 거기 분리수거하는 쓰레기통에 음식물 쓰레기를 막 버리면 어떻게 하냐는, 그런 뉘앙스로 들으셨나보다. "아니, 그게 아니라 몇개 안 남아서." 생각해보면, 몇개 안 남았다고 음식물 쓰레기가 아닌 건 아닐 텐데, 아저씨도 적잖이 당황하셨나보다. 하긴, 내가 그 아저씨여도 당황했을 거야. 이런 말 하는 나 스스로도 당황스러운데, 아무렴.

어쨌거나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 대충 상황파악이 되면서 그 김밥을 얻어먹을 수 있었다. 아저씨는 말을 했으면, 억지로 먹기 전에 한줄 정도는 다 줄 수 있었는데, 라고 하시며 가족들 있는 곳으로 돌아가서 초코바 하나와 토마토 하나를 가져오시더니, 먹으라며 주셨다. 어지간히도 불쌍해보였나보다. 그렇지만 부끄럽기보단 무지하게 고마웠다. "아니, 괜찮은데."라고 맘에도 없는 소리가 버릇처럼 입밖으로 나왔다가, "고맙습니다"하고 냉큼 받았다.


달팽이에 관한 이야기를 썼었는데, 이런 귀여운 작품을 보니 반가웠다.

이러고 문경새재를 넘었다. 이 사진을 본 사람들의 반응은, "밥을 줘야하게 생겼네!" 였다.

여기에 들어갈 때까지만 해도 계속 고민하고 있었지만, 결국 여행 마지막 숙소가 된, 신현1리 마을회관.


오전에 산을 오르는 길가에 어떤 절에서.



걸은 길. 약 30킬로미터. 쓴 돈은 어제의 감동을 잊지 못하고 충동적으로 사먹은 아이스크림 하나 - 6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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