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2013~2019

뜬금없는 여행, 네번째 이야기.

참참. 2013. 6. 26. 07:55


소여2리를 뒤로하고, 출발했다. 일찍 출발하여 아직 6시도 채 되지 않았는데, 벌써 대낮처럼 밝았다.


이번 여행에서 로드킬 당한 동물과 두 번 마주쳤다.


담배라고 한다. 담배가 이렇게 생긴 줄도 몰랐는데, 일하시는 분들이 계시길래 여쭤보았다가 알게 됐다.



괴산군으로.

아스팔트로 도로를 만들기 전에도 전국을 잇는 길이 분명히 다 있었을 텐데. 더 빠르다는 길들이 수도없이 생긴 지금, 걸어가기는 왜 더 위험하고 험난해졌을까. 올레길, 둘레길 등 걷기 좋은 길이 많이 만들어지고 있어서 다행이다. 전국구 걷기여행 길도 만들어보면 어떨까?


네모나게 생긴 도로반사경이 왠지 신선했다.


둘째날부터 생기기 시작했던 물집이 많이 커져서 걸을 때 좀 불편했다.


이 날은 덥고 지쳐서, 괴산군에서 냉면을 사먹었다. 둘째날 선배 아버님께서 맛있는거 사먹으라고 주신 돈이니, 이 돈은 맛있는 거 사먹는 데 써야지라고 혼자 생각하며.

근데 냉면집에 들어가서 시켜놓고 앉아있으니, 뭔가 참 씁쓸했다. 냉면이 나오길 기다리면서 대일밴드를 붙이고 있었는데, 다른 손님은 아무도 없었지만 주인아저씨, 아주머니와 나는 아무런 대화도 나누지 않았다. 그냥 식당주인과 밥 먹으러 온 손님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대화를 나눌 필요가 없는 것이다. 돈과 밥을 거래하는 사이일 뿐이니까. 말을 하려니까 더 민망하게 느껴졌다. 얻어먹자면 내가 어떻게 여행하고 있는 건지, 뭐하는 사람인지, 서로를 소개하고 마음을 주고받아야 한다. 그게 좋았다. 냉면은, 얼음이 떠있는 국물을 벌컥벌컥 들이키던 것밖에 기억이 나지 않는다.



수원을 벗어나서 한참을 걸어도 계속 수원국도여서, 도대체 수원도 아닌데 왜 계속 수원국도지? 했는데, 드디어 충주국도를 만났다. 반가웠다.


점심을 먹고, 너무 일찍 출발한 탓인지 졸음이 몰려왔다. 마침 이런 좋은 곳이 나타나서, 가운데에 가서 벤치에 누워 잤다. 손전화기와 지갑은 주머니에 넣고 가방은 그냥 다른 벤치에 올려놓았다. 그러곤 밀짚모자를 얼굴 위에 덮고 달콤한 잠을 잤다. 대낮에 길거리에서 자보긴 처음이었다. 자고 일어나니 30분이 지나 있었다. 그럴 수 있다는 게 자유롭다고 느껴졌다.

처음엔 지나가던 사람이 뭐라도 가져가면 어떡하지, 해코지하면 어떡하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생각해보니, 크게 잃을 것도 없더라. 가진 것이 별로 없다는 데서 오는 자유가 있다는 걸, 슬쩍 훔쳐본 듯한 기분이었다.


잠자던 곳은 이런 귀여운 것들이 있는 곳이었다.


지도를 보면서, 잠시 국도에서 벗어나 바로 옆의 마을쪽 길을 걷다가 보았다.

그리고, 마을에서, 오늘은 사치를 부리기로 하고 사먹었던 아이스크림 하나.
여름날 몇시간씩 걷다가 아이스크림을 하나 사서 베어물면, 2분간 천국을 '맛볼' 수 있다.


길 옆을 큰 차들이 여행에서 가장 무서운 것이었는데, 이렇게 큰 차가, 내가 가는 길 앞으로 오더니 갑자기 비상등을 켜며 멈췄다. 그 옆으로 지나가니 창문이 열리더라. 차가 어찌나 큰지 창문이 끝까지 내려갔는데도 운전하시는 분과는 서로 머리털조차 볼 수가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나 때문에 멈춘 것 같아서, 문을 열었더니, 어디까지 가느냐고, 타라고 하셨다.

이런 경험이 처음이라(게다가 이렇게 거대한 화물차라니.) 좀 당황했지만, 얼마나 소중한 인연인가 싶어서, 얻어탔다. 조수석 발 놓는 데에는 온갖 페트병들이 어지럽게 쌓여 있었다. 내리려고 문을 열었을 때 몇 개가 후두둑 떨어질 정도였다. 아저씨는 내 젊은 시절이 생각나서 차를 세웠노라고 하셨다.

아저씨는 턱 전체와 코에 수염을 까맣게 다 기르고 계셨는데, 인상이 좋으셨다. 알고보니, 부산 가는 길이셨다. 부산 간다고 했더니, 부산까지 태워줄까라고 물으시기도 했다. 나도 장난기가 발동해서, 그래도 되냐고 여쭈었더니, 에이 그럼 재미가 없잖아, 라고 하셨다. 이미 저녁 때였기에 그 날 원래 가려고 했던 마을 근처까지만 태워다달라고 했다. 그런데 대화를 나누다보니, 저녁을 사주고 싶다시며, 원래 가려던 마을을 지나쳐서 좀 더 간 곳에 있는 휴게소까지 갔다.


함께 먹은 휴게소의 '밥상'. 아저씨께서는 화물차 운전을, 친구가 하던 일 3개월 대신 해주는 걸로 시작해서, 30년을 하고 계신단다. 어떻게 그렇게 된 거냐고 여쭈었더니, 얘기하자면 너무 길다고 하셨다. 내 나이 또래의 아드님이 하나 있다며, 아드님 얘기도 하셨다. 아들에게는 저 하고싶은 걸 하라고 놓아두는 편이시란다. 어차피 공부도 잘 못하고 공부하기도 싫어하는 아이한테 공부를 강요한다고 해서 그게 되겠냐고. 그랬더니, 운동을 한참 배우다가 또 운동을 그만두기도 하고, 다른 운동을 하다가 또 그만두고, 취직해야겠다며 폴리텍에 갔다가, 친구와 함께 의경으로 군대를 갔다오더니 의경 출신들끼리 경쟁해서 경찰이 되는 길이 있다며, 그쪽을 준비하고 있단다. 아저씨는 지가 하겠다는 데 어떡하겠어, 라는 태도셨는데, 웃으며 말씀하시는 걸 보니, 깊은 애정이 느껴졌다. 그 애정과 믿음에서 나오는, 조용한 응원이 참 멋있어 보였다.

아저씨는 내가 취사도구는 물론, 침낭조차 없이 여행을 떠난 것에 대해서 준비를 너무 안했다는 얘길 많이 하셨다. 고개를 끄덕거리면서 들었지만, 사실 그렇게 준비를 많이 하고 왔다면 아마 아저씨도 못 만났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준비없이 갔기에 이렇게 훌쩍 떠날 수 있었고, 그랬기에 이 여행에서 만난 그 사람들, 그 소중한 인연들을 만날 수 있었다. 


이렇게 큰 차였다. 평생 이렇게 큰 차는 처음 타봤다.

밥을 먹고 '기사님 전용' 샤워실에서 같이 샤워까지 했던, 이화령터널휴게소.
헤어질 때 연락처를 여쭈었더니, 알아서 뭐하게라고 하시면서도 가르쳐는 주셨다. 성함은 안 가르쳐주시고 그냥 아저씨라고 저장해놓으라고 하시며, 나중에 '성공'하면 연락하고, 안 하면 하지 말라고 하셨다. 그러겠다고 했다.

물론, 내가 그러겠다고 한 성공은 아저씨 기준의 성공과는 다를 수도 있다. 근데 내 성공의 기준은 내가 정하는 거니까, 어떤 기준으로 성공했답시고 연락을 한다해도 아저씨는 아무 말씀도 못 하실 거라는 생각은 혼자서만 했다.


아저씨와 함께 휴게소에서 시간을 너무 보낸 모양인지, 휴게소를 뒤로하고 다시 마을쪽으로 되돌아가는데, 여름이라 길기만 하던 해가 지고 있었다. 여태까지는 항상 해가 지기 전에 마을에 도착해서 잘 곳을 잘 찾았는데, 이번에는 좀 불안했다.

게다가, 내가 아까 지도로 보아둔 마을을 지나쳐와서, 다른 마을로 가야만 했다. 이때 느낀 것인데, 회관에서 자고 하는 건, '큰' 마을일수록 오히려 불리하다. 어르신들만 계시는 작은 시골마을은 비교적 쉽게 재워주시지만, 아이들도 많고 큰 마을에서는 좀 꺼려하기도 한다. 특히 마을회관 안에 값나가는 물건들이 많으면, 아무래도 위험부담이 큰 것이다.

이 마을에선 처음으로 이장님을 뵙지도 못했다. 다만 모텔 앞까지 갔다가, 해가 다 져서 어둑어둑한 상황에서, 그래도 모텔에서 돈 내고 자러 여기까지 걸어온 것은 아니지 않냐는 마음에 최선을 다해보자고, 마지막으로 여쭤본 분께서 도움을 주셨다. 우선 이장님께 바로 전화를 거셔서, 회관을 여쭤보시더니, 안 되겠다는 답변을 알려주셨고, 고맙게도, 그럼 우리 집에 가자며 데리고 가주셨다. 딸아들, 두 분은 모두 서울에서 학교를 다니고 있어서 집이 비어있으니 괜찮다고 하셨다.

저녁 못 먹었으면 집에 먹을 거 많으니까 먹으라고 해주셨다. 가능했다면 하루에 저녁을 두 끼 얻어먹는 데 도전했겠지만, 휴게소에서 너무 잘 먹었더니, 배가 불렀다. 빵이라도 먹으라며 빵을 주셔서 그건 먹었다. 폐를 끼치는 김에, 남의 가정집에서 실과 바늘을 빌려 물집까지 터뜨렸다. 해병대 출신이시라는 아저씨께서 군시절 해보았다시며 실 끼워놓고 가만히 있으면 알아서 흘러나올 거라고, 하셨다.

다만, 이 집에서 자지는 못했다. 모르는 사람의 가정집에서 자는 굉장한(?) 경험을 할 뻔했으나, 사모님께서 제주도에 가셨는데, 밤 늦게 도착해 모르는 사람이 자고 있으면 너무 당황할 것 같아서 아무래도 안되겠다고 하셨다. 지금 비행기를 타, 연락도 안 된다시며. 대신 건강원을 알아봐줄테니 거기서 자면 될 거라고 하셨다. 마을에 있는 그 건강원에, 차까지 태워서 데려다주셨다. 주민 분들이 세네 분이 계시고, 바둑을 두시면서 관심을 보여주셨다. 역시 군대는 어디서 나왔냐는 주제는 아저씨들과 가장 쉽게 이어질 수 있는 주제였다. 사실, 그걸 제외하고는 다른 시대에 다른 곳에서 태어나고 자란 분들과 비슷한 경험이나 관심사를 찾는 것이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닐 터라, 여전히 군대라는 것에 부정적이면서도 은근히 묘한 고마움도 느꼈다.

다들 친절하게, 컵라면이랑 커피포트도 있으니까 내일 아침에 먹고 가라고 알려주셨다. 

그동안 걸으면서, 물집도 잡히고, 왼쪽 발목이 꽤 부었다.


걸은 길. 약 35킬로미터. 쓴 돈은 대일밴드, 냉면, 아이스크림 - 8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