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2013~2019

뜬금없는 여행, 세번째 이야기.

참참. 2013. 6. 25. 08:49


선배네 집에서 묵기 위해 원래 가려던 경로에서 벗어나기 시작한 지점까지는 시내버스를 타고 갔다.
죽산시외버스터미널까지 버스를 타고 간 뒤, 어제 걸어왔던 그곳에서부터 가려던 길을 걷기 시작했다.
38번 국도를 타고 동쪽으로.


지나가다가 본 광경. 이걸 뭐라고 부르지? 내 머릿속에는 '나무밭'이라는 생각밖에 안 떠올랐다. 나무도 이렇게 대량으로 모아서 키운다는 게 뭔가 신기하게 느껴졌다.


선배 어머님께서 아침에 챙겨주신 곶감을 길 가다 휴게소에서 먹었다. 점심식사를 할 거리가 별로 없었기에.


흙도 거의 없는, 아스팔트 사이에서도 끝끝내 생명을, 피워내고 있었다.


드디어, 충청북도! 좀 감동적이었다. 무슨 국경을 넘는 것도 아닌데, 드디어 경기도를 벗어났다는 것이 내심 뿌듯. 

뭘까? 검게 씌워놓은 것은 많이 보았는데, 여기선 그 위에 하얀 무언가를 더 덮어놓았다. 마치 눈이 내린 들판 같았다.


충청북도에서 처음 만난 인연. 이상하게도, 그 전까지는 국도에 휴게소나 주유소가 꽤 있었는데, 충청북도로 넘어오고나서는 국도 옆에 휴게소가 거의 없었다. 그러다보니 앉을 곳도 마땅치 않고, 그늘도 없어서 점점 지쳐가고 있을 때, 이곳 원당교차로가 나왔다. 지붕과 그늘이 있어서, 잠깐만 쉬어가도 되겠냐고 거기 계시던 아주머니께(오른쪽에서 두번째, 서 계신 분) 여쭙고, 앉아서 쉬었다. 쉬면서 아주머니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물어보시는 말씀에 있는 그대로 다 말씀을 드렸더니, 마침 점심 때니까 점심이나 먹고 가라고 하셨다. 나로서는,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한 15분에서 20분 기다리니 밥이 도착했고, 복숭아에 종이봉투 싸는 일을 하시던 분들께서 모두 식사하러 오셨다.
밥을 먹기 전에 찍었으면 좋았겠지만, 놓쳐서 다 먹고 정리하는 어수선한 사진. 반찬은 무려, 닭도리탕이었다! 옆에서 뜯은 상추 등 싱싱한 채소들과 함께. 나까지 껴서 먹었는데도 다행히 밥이 남았다.


이번 여행에서 이야기를 나눴던 사람 가운데 아마 가장 젊은, 누나. 본래 직업은 간호사라고 했다. 옆에 있는 무쏘('무댕이'라고 부르던)로 달렸던 무용담을 이야기해주면서, 무슨 일 생기면 전화하라고 했다. 온종일 바로 옆으로 차들이 지나다니는 길을 혼자 걷고 있던 내게 그 말이 어찌나 든든하게 느껴지던지.

 

무려 수박까지 주셨다. 이번 여름, 첫 수박을 나는 충청북도까지 걸어가서 먹었다. 어찌나 맛있던지.
밥 먹을 때, 밥 먹었으면 일 하고 가야된다고 말씀을 하셨는데, 사실 이 정도 얻어먹었으면 한두시간이라도 일을 도와드리고 가는게 맞겠다는 생각이 스스로도 많이 들었다. 결국 못 도와드리고 가게 됐지만, 복숭아 정말 맛있으니 복숭아 딸 때 놀러오라는 말씀을 꼭 지켜서, 수확할 때 도와드리러 가야겠다고 다짐을 했다.
사실 복숭아를 좋아하는 나에게는 다섯 가지가 넘는 종류의 복숭아(이름도 처음 들어보는 것들이었다)를 따자마자! 먹어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달려갈 마음이 가득.


복숭아밭이 참 많았다. 이곳에서 나오는 것이 바로 '햇사레' 복숭아라고 한다.


아쉬움을 뒤로 하고, 또 열심히 걸었다. 저수지를 끼고 열심히 걸어 목표했던 음성군 '감우리'에 도착했는데, 마을에 주민분들이 얼마 없었다. 알고보니, 충청북도 도민체전에 가수가 오는 날이라, 다들 구경가셨단다. 회관에서 쉬고 싶은데, 이장님도 안 계셨고, 몇몇 주민분들께서 조금 불편해하셨다.

이장님이 돌아오시기를 마냥 기다리며, 마을 여기저기를 힘없이 돌아다니며 30분을 넘게 보냈는데, 그러다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시던 분과 꽤 긴 대화를 나누게 됐다. 어떻게 하다보니 그분께서 조금만 더 걸어가면 나오는 '소여리'를 추천해주셨다. 감우리에 살지만 소여리에서 일을 하시는데, 여기서 많이 멀지도 않고, 거기 이장님이 훨씬 젊고(무려 40대!), 가면 바로 만날 수 있을 것이라면서. 그렇게 감우리를 뒤로 하고, 소여리로 가게 됐다.


그렇게 소여2리에 도착했고, 불과 5분 만에 잠자리와 저녁식사가 해결되는 기적이 일어났다.

"안녕하세요? 무전여행 중인 학생인데요, 마을에서 하룻밤 묵어가고 싶은데, 혹시 이장님 댁이 어딘지 좀 여쭤봐도 될까요?"
"내가 이장인데"
"아, 이장님 안녕하세요! 무전여행을 하고 있는데, 혹시 회관같은 곳에서 하루만 묵어갈 수 있을까요?"
"회관에서 자는 거야 어렵지 않지. 몇 명인데?"
"저 혼자요"
"혼자 왔다고?"
"예"
"어, 여기 바로 옆이 회관이야. 따라와. 그런데 뭐하러 이런 사서 고생을 해?"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기에.."
이장님 피식 웃으셨다.
"씻고 있어, 저녁 먹을 때 부를게."

 이장님 댁의 저녁식사에 초대(?)를 받았다. 왼쪽에 보이는 콩비지찌개가 진짜 맛있었다. 소여리 이장님도 복숭아 농사를 지으시는 것 같았다. 무려 하루 세 끼를 전부 제대로 된 '밥'을 얻어먹은 굉장한 날이었다.


내가 잤던 회관.

저녁을 얻어먹었던 이장님 댁.



걸은 길. 약 40킬로미터. 쓴 돈은 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