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2020~2022

일주일에 7일

참참. 2021. 11. 30. 04:58

 

만나는 모든 날을 단순히 "몇월 몇일 어디에서 만났다" 정도만이라도 기록으로 남기고 있다. 처음엔 우리가 하도 걸어서 같이 몇 킬로미터나 걷는지 한번 세어보자고해서 시작된 기록이다. 요즘은 거리는 기록하지 않고 있지만 언제언제 만났는지 기억하고 싶어서 노션에다 만나는 날들을 간단하게나마 계속 적어두고 있다. 지난주에는 단 하루도 얼굴을 보지 않은 날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됐다. 매일 적어도 한 시간 이상 얼굴을 마주했다.

나는 오랫동안 내가 말이 너무 많다는 것을 자책하며 살았다. 그렇지만 돌아서 후회하는 순간들이 쌓이고 의식적으로 조심한다해도 늘 말이 많은 사람이었다. 말이 많은 것을 후회하는 것도 지겨워서 나중엔 수다를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스스로 긍정하려 애쓰며 너스레를 떨고 다녔다. 말이 없어진 것은 결혼하고 귀촌을 해있는 동안이었다. 그때는 평생 그렇게 말없이 살아본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말이 없는 기간이었다. 내가 그렇게 말을 안하고 살 수도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근데 나란 사람은 역시 그렇게 살 수가 없었나보다.

말을 많이 하면 말을 많이 했다는 사실 자체와, 했던 말 중에 굳이 하지 않았어도 됐을 것 같은 말, 더 잘 하고 싶었던 말 등등을 곱씹어가며 후회했고, 말이 극도로 줄어드는 기간을 거친 뒤에는 내가 말이 없어질까봐 두려워졌다. 어느 정도 대화가 통하는, 처음 만나는 사람과의 대화는 좀 어색할지언정 차라리 즐겁기 쉽다. 일단 이야기가 좀 통하기 시작하면 무슨 얘기를 꺼내도 다 처음 하는 얘기고, 흥미로운 얘기다. 상대방이라는 존재 자체가 신선하고, 적극적으로 에너지를 써서 호감을 얻기 위해 대화에 참여하게 된다. 내 모든 기억과 경험들을 탐색하며 온갖 사소한 공통점들을 찾아낼 수 있다. 본능에 가깝다.

어느새 우리가 만난지 100일이 넘었다. 어떨 땐 아직 100일밖에 안 됐다는 게 더 신기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렇게 만나는 동안 쉬지 않고 이야기를 나눴는데, 아직도 일주일에 7일을 만나도 할말이 있을까? 계속 할말이 있다. 만나면 만날수록 더 할말이 많아진다. 거의 뭐든 다 얘기할 수 있어서 너무 좋다. 어쩌면 대화의 주제는 큰 문제가 아니다. 주제에 관심이 없더라도 그 말을 하는 사람에 대한 관심이 있으니까.

이렇게 매일같이 이야기를 나누고, 심리상담 선생님도 매주마다 만나서 또 그동안 살아온 온갖 이야기들을 꺼내놓으며 산다. 체한 게 아닌 이상 오늘 배가 터질 것같이 먹어도 내일이면 또 배가 고프고, 오늘 아무리 많은 말을 했어도 내일이면 또 내일의 할말들이 떠오른다. 오늘 세상 충만한 사랑을 받았다해도 내일이 되면 또 사랑받고 싶은 기분이 들 것이다. 정혜신 선생님이 그게 당연하다고 써주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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