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2020~2022

힘든 일 있으면 얘기해

참참. 2021. 11. 30. 08:02

 

우리는 종종 "힘든 일 있으면 얘기해"라고 말한다. 그건 참 좋은 말이라고 생각한다. 니가 힘들 때 도움이 되고 싶다는 말이니까. 마음을 쓰는 말이다. 나도 종종 한다.

그런데 오늘 문득 그 말을 뒤집어 생각해보니 힘든 일이 있을 때만 얘기할 수 있는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살다가 힘들고 어려운 일에 맞닥뜨렸을 때 가장 먼저 얘기할 수 있는 사람은 매일같이 이야기 나누는 사람이 아닐까싶다. 그 사람이 나를 듣고 있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

대개는 가장 사소한 이야기를 매일같이 나누는 사람에게 가장 어려운 이야기도 나누게 되지 않나 싶다. 물론 사소한 이야기라도 마음을 담은 이야기여야 한다. 사소한 이야기를 매일같이 귀 기울여 들어주는 사이라면 힘든 일 있으면 얘기하라고 굳이 얘기하지 않아도 얼마든지 얘기할 수 있겠지만, 정작 말을 할 때는 귀담아듣지 않으면서 힘든 일 있을 때 얘기하라는 말은 공허하다.

내가 학교에서 매일을 어떻게 보내는지 궁금해하지 않는 아빠나 엄마에게 학교에서 겪은 심각한 일만 이야기할 수 있을까? 분명 매일의 학교생활을 궁금해하지 않는 아빠와 엄마라고 해도 아이가 학교에서 심각한 일을 겪은 걸 알게 되면 "왜 진작 얘기 안했어!"라고 하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듣는 귀가 없으니까 말하지 못한 것은 아닐까, 왜 진작 얘기 안 했느냐는 말은 그 말하지 못한 것조차 상대방의 탓으로 돌리는 말은 아닐까. 

왜 진작 얘기하지 않았냐는 말이 생각났다면 진작 얘기할 수 있는 사이였는지를 돌아볼 일인지도 모른다. 그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그 힘든 얘기를 가장 얘기하고 싶은 사람은 그 본인이었을텐데 얘기하지 못했다면 그만한 이유가 있었을 것이라 한번 더 헤아려볼 일이다. 그래도 지금이라도 알게 되어서, 지금이라도 듣게 되어서 다행이라 생각할 일이다. 내 마음에 받아들일 여유와 에너지가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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