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2020~2022

쾌락주의자

참참. 2021. 6. 4. 02:12

 

20대의 나는 의미를 쫓으며 살았다, 고 생각한다.

사실, 태어나서 살고는 있지만, 내가 의식적으로 지각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는 태어난 의미라거나 삶의 의미라는 것에 대해 도무지 그런 게 존재하지 않는다는 결론에 도달하고야 만다. 우리가 합리적이라고 여기는 이성과 과학의 논리로 보면 그렇다. 물론 아직까지 밝혀지지 못한 것일 수도 있지만 어쨌든 현재까지 인류는 신(그게 대체 뭔지 정의부터 내려야하겠지만)의 존재같은 건 밝혀내지 못했다는 걸 인정한다면, 현 시점에서는.

뭔가 의미있는 것들이 좋아보였다. 그런 것들이야말로 삶에 의미를 부여해준다고 믿고 싶었다. 내가 생각하기에 "옳은 것"을 추구하는 것을 통해 내 삶이 어떤 의미를 얻길 바랐는지도 모른다. 내 생각의 일관성을 행동과 삶으로도 유지하며 살고싶기도 했다. 내가 옳다고 믿는대로 행동하고 살아가고 싶었단 말이다. 나 스스로도 옳지 못하다고 생각하는 행동을 하는 나를 바라보는 건 괴로운 일이니까, 자괴감이 드니까.

그렇게 의미를 쫓아 귀농까지 했었다는 생각이 든다. 비슷한 것들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추구하는, 사랑하는 사람과. 근데 결국 불행해졌다. 이것만은 명백하게 인정할 수 있다. 어째서 그랬을까에 대한 여러 방향의 탐구 중 하나로, 나는 이번 용의자로 의미를 쫓는 삶을 지목한다. 자다가 깨서는 잠이 오지 않고 혼자 누워서 이런 생각을 계속하면서 결국 잠이 오지 않아 글로 옮기고 있다.

의미있는 것을 쫓지 않으면 인생이라는 거대한 무의미를 감당할 자신이, 없었나보다. 그러나 나는 금욕적으로 절제하는 삶을 통해 어떤 의미를 쫓을 수 있는 사람은 아니라는 결론이다. 나는 쾌락주의자다. 아니길 바랐고 아니라고 믿었지만 이제 와 더이상 부정할 수도 없는 사실을 괜히 혼자 인정해본다. 그리고 이제는 방향을 바꿔서 더 대놓고 즐거움을 추구하며 살려고 한다.

즐거움이란 곁가지같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있으면 좋지만 그 자체만으로 추구할 가치가 있다고 믿지 않았다. 과소평가했고, 때로는 뭔가 부도덕한 것처럼 느끼기까지 했다. 의미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따라오는 부산물로서 거두는 것뿐이라고 생각하려고 했다. 궁극적인 행복, 지속되는 행복은 얄팍한 즐거움보다는 의미있는 삶에서 나온다는 식의 생각을 굳게 믿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의미는 있으면 좋지만 없어도 어쩔 수 없다. 포기할 수 없는 쪽은 즐거움이다. '의미'나 '즐거움'같은 걸 지금 엄밀하게 정의 내려진 학술적인 용어로 쓰고 있는 건 아니지만, 어쨌든. 되도록 즐겁게 살고자 한다. 가령, 나는 여전히 지구와 환경을 걱정하고 그에 대해 고려하는 사람이지만, 플라스틱 쓰레기를 완벽하게 배제하지 못했다고 해서 자신을 비난하는 일은 좀 적당히 느슨하게 하기로 했다. 인권과 노동자의 권리를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내 모든 행위가 그것들을 지키는 방향으로만 이루어질 수는 없고 그건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부분이라는 것도 인정하기로 했다.

맞다, 비겁한 변명이고 도망이다. 자연농으로 자급하며 지구에 해를 끼치지 않고 살겠다는 각오에서 굉장히 많이 후퇴했다. 의미를 쫓는 삶의 측면에서 바라보면. 나는 그 일에서 의미뿐 아니라 상당한 즐거움도 얻을 수 있을 거라 기대했지만 결국 그 정도의 즐거움을 지속적으로 얻지 못하게 되자 나는 의미만으로 버틸 수 없다는 걸 알게 된 것이다. 실은 내가 의미를 쫓아 한 일이라고 생각했던 여러 활동들도 (곁가지라고 생각했던) 즐거움이 더 큰 동력이었다는 걸 돌아보며 인정한다.

좋은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맺는 건 (누구에게나 그렇지만) 나에게 몹시 소중하고 즐거운 일이다. 내 가장 큰 행복의 원천이다. <행복의 기원> 책을 읽기 전에도 인간의 가장 큰 행복의 원천은 '사람'이며 동시에 가장 큰 불행의 원천도 '사람'이라는 건 이미 여러 번 접해본 이야기고 또 나도 마음속으로 충분히 고개를 끄덕거렸던 이야기인데, 새삼스럽게도 다시 한번 와닿았다. 또 내가 그런 사람이라는 게 이상한 일도 아니라는 것, 그렇게 관계에서 행복감을 얻는다는 건 오히려 본능에 가까운 일이라고 느끼게 되어서, 더 받아들이게 됐다. 

타인의 인정, 애정, 스킨십, 따뜻한 말 한마디, 안부연락 따위가 없으면 외롭고 슬퍼지는 내가 한심하고 싫었다. 어째서 혼자서도 충분히 잘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이 아닌 거냐고 스스로를 원망했다. 혼자 있어도 괜찮은 사람이어야 관계도 더 좋아진다는 건 여전히 인정하고 내 마음은 계속 들여다보고 있다. 그것 역시도 다른 게 아니라 내 행복을 위해서. 근데 어째서 이렇게 다른 사람에게 의존하느냐는 식으로 자신을 비난하는 건 내 행복에도 관계에도 도움이 안 되니까 그만해야겠다. 아니 사실, 사람이 다 다른 사람에게 의존하면서 살지 완벽하게 혼자 살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그건 이상한 것도 아니고 잘못된 것도 아니다. 그렇지만 항상 누군가의 애정을 받으며 함께있을 순 없으니까 그저 적당히 잘 헤쳐나가면 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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