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눈을 떴을 때 알았다.
일단 어제보단 낫다는 걸. 회복됐다, 조금은.
지금은 저녁 6시반. 매일 아침마다 하던 15분 남짓한 요가프로그램을, 방금에서야 했다.
오늘 하루는 말 그대로 흘려보냈지만, 이것마저 하지 않으면 내 일상이 너무 무너질 것 같아서.
인간은 무리 짓는 동물이라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아도 괜찮은 사람도 물론 있는 건 알지만, 적어도 나는 그런 사람인 것 같다.
소속감이 함께 가져다주는 어떤 안정감이 내겐 삶의 아주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종종 있다. 근데 그게 내 마음대로 얻을 수 있는 게 아니다.
삶의 시기마다 내가 가장 주요한 소속감을 느끼는 그룹이 있었는데, 이를테면 군생활을 할 때는 아무래도 군대라는 식이다. 대학교 때는 풍물패 동아리가 가장 큰 소속감을 줬다. 당시에도 내가 동아리를 그만두지 않고 계속하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가 뭘까라고 끝까지 고민해본 적이 있는데, 그때 내렸던 결론이 소속감이었다. 아마 중간에 그만뒀으면 내가 그 소속감의 단절과 함께 찾아오는 공허함에 많이 힘들지 않았을까하고 상상한다.
그러나 삶은 계속되고, 고등학교 친구들 그룹과의 소속감도, 가족도, 대학교 동아리도, 군대도, 활동했던 단체도, 이젠 더이상 나에게 특별히 소속감을 주지 않는 것처럼 느껴진다. 최근엔 직장도 옮겼다. 새 직장에 출근한지 2주 밖에 되지 않았다보니 아직 새 직장에 소속감을 느끼기엔 너무 이르다. 오히려 전직장 사람들과의 카톡방이 더 편하다. 그렇지만 당연히 전직장에도 소속감을 느끼지 않는다.
어머니와 여동생이라는 가족도 있지만, 가족은 이제는 내겐 그냥 가끔 만나는 오래된 친구같은 느낌으로 남았다. 다른 사람들이 가족에 대해 느끼는 감정들도 하나같이 다 특이하고 복잡하겠지만, 나 역시 내가 다른 사람들과는 다르게 가족에 대해 감각한다고 느낀다. 친가쪽도, 외가쪽도 굳이 따지자면 따뜻하게 대해주신 편이라고 생각하지만. 내가 혈연가족에 무심한 편인 것 같다. 솔직히 그분들도 나에게 그렇게까지 많은 신경을 쓰는 것 같진 않고.
어제는 나를 싫어했다. 오늘은 반반. 식욕이 별로 없었다. 먹고싶은 건 아이스크림밖에.
나는 가끔 식욕이 드는지 안드는지로 내가 지금 삶에 대한 의욕이 있는지를 가늠해보곤 한다. 또 다른 것은 아침에 눈이 일찍 떠지는지와 눈이 떠졌을 때 자리에서 일어나지는지. 그리고, 하고싶은 일이 떠오르는지.
그래도 어젯밤에 잠은 잘 왔고, 잘 잤다. 그것만으로도 아마 꽤 괜찮은 상태. 정말로 스트레스 받으면 잠도 잘 오지 않는다는 상황도 경험해봤다. 아무것도 할 에너지가 없어서 잠자리에서 일어나질 않고 자다가 깨서 멍하게 누워있다가, 만 반복하던 시기도 있었다. 그래도... 어쨌거나 잠을 잔다는 건 뭔가 회복해가고 있다는 거 아닐까. 잠을 많이 자면 많이 잤다는 사실 자체에 또 스트레스를 받기도 하지만. 어쨌거나.
최악은, 내가 누군가에게 상처준 일만 계속 떠올리면서 나는 소중하고 가까운 사람들에게 상처만 주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분명 좋은 영향을 주기도 할텐데 그런 건 사실 모르겠다, 구체적으로 전혀 떠오르지 않는다. 이것저것 선물하는 것도 좋아하긴 하지만, 그런 건 사실 내 욕심에 주는 것일 뿐이지 않나. 실은 아무리 좋은 말을 평소에 한다해도 상처주는 게 더 크지 않나. 근데 상처를 주지 않는 사람일 수는 없다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내가 누군가에게 너무 상처주는 사람이라고 느낄 때마다, 그런 내가 너무 싫고 그런 상황을 더 이상 만들지 않을 수 있도록 그만 살고 싶어진다.
악순환이다. 이렇게나 자존감을 스스로 깎아먹고 있으니까, 또 상처줄 일이 더 생긴다. 상대방이 하지도 않은 일을 의심하고 오해하게 되니까. 날 좋아할 리가 없다고 생각하면서. 그리고 그렇게 상처줬다는 사실이 다시 내 자존감을 깎아먹는다. 바보같다. 나도 알고 있다. 그래도 알고는 있어서 다행인가, 싶다.
어찌나 단순한 동물인지, 누군가 나에게 관심을 주고 있을 때는 내가 가치있는 사람처럼 느껴진다. 오랫동안 연락 없던 사람의 안부전화 하나에도 많이 기뻐한다. 물론 정말 맘에 안 드는 사람이었을 경우엔 성가시기도 하지만.
어째서 다른 사람의 관심에서 삶의 의미를 찾는가. 다른 사람과 상관없이 스스로 가치있다고 느끼면 좋을텐데.
넷플릭스에서 드라마 "빵과 스프, 고양이와 함께하기 좋은 날" 1화를 봤다.
전에는 일본영화나 일본드라마를 싫어하는 것까진 아니어도 사실 그다지 선호하진 않았다. 좋은 건 좋지만, 종종 너무 심심하고 지루하다고 느꼈다. 이렇다할 사건이나 갈등, 스토리라고 할만한 게 없을 때 특히. 차라리 애니메이션은 몰라도.
근데 지금은 이렇게 조용하고 잔잔한 게 좋다. 오히려 시끄러운 영화는 이젠 잘 감당이 안 된다. 내가 변한 걸까 아니면 원래 이랬는데 나를 잘 몰랐던 걸까.
어제도 안 씻었다. 이제 씻어야겠다. 이틀 정도 안 씻는 건 견딜 수 있지만, 요즘은 정신건강과 기분을 위해 씻는다. 이상하게 샤워를 하면, 안한 것보다는 기분이 그래도 조금 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