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2020~2022

벚꽃과 키보드

참참. 2020. 4. 4. 13:04

 

자전거를 타고 출근하는 길에는 올림픽 공원 앞에서 자전거도로 양쪽으로 벚꽃이 흐드러지게 핀 길을 지나간다. 사무실에 도착하면 얼마 전에 구입한 레오폴드 핑크색 키보드가 있다. 아침마다 자전거타고 벚꽃을 바라보는 건 정말 기분 좋은 일이다. 덕분에 출근길이 한층 더 즐거워졌다. 출근길이 즐겁다는 게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레오폴드 키보드도 정말 맘에 든다. 일단 색깔! 실물이 도착해서 열어보니 사진으로 보고 기대했던 것보다 더 예뻤다. 그냥 보고만 있어도 예뻐서 맘에 든다. 둘째로는 소리! 두드려보니까 소리가 진짜 취향저격 소리다. 다들 그렇게 칭찬하는 레오폴드 갈축의 키감과 소리, 괜히 기계식 키보드 쓰는 사람들 사이에서 고전이라 할 정도로 좋은 평을 받는 게 아니라는 걸 알겠다. 일이 많고 생각대로 잘 풀리지 않아서 짜증이 나려다가도 일하면서 들리는 키보드 소리에 마음이 좀 나아진다. 키보드 소리 듣고 싶어서 더 키보드 치고 싶어진다. 음, 약간 변태 같은가. 하지만 키보드에 관심이 없는 동료 직원들에게는 회사에서 쓰는 일반 멤브레인 키보드와도 별 차이가 안 느껴지나보다. 확 튀는 색깔 정도만 빼고는.

요즘 일이 정말 많은 편이다. 사실 금요일에도 일을 다 못 끝내고 와서 토요일인 오늘도 들여다보고 있다. 내 공부가 부족한 탓도 있다. 내가 더 많이 알고 더 경력이었다면 두 배 정도는 빠르게 끝낼 수 있을텐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근데 뭐, 그건 어찌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고 차차 나아지겠지. 그래도 DB나 HTML 관련한 업무는 즐거운 편이다. 일한다는 느낌과 배워나간다는 느낌이 동시에 있어서 나름대로 성취감도 있고, 더 나아지고 있는 기분이라서 그렇다. 수학문제 푸는 것처럼 분명히 답은 있고 그걸 내가 아는 모든 것과 내가 검색할 수 있는 모든 걸 동원해서 해결해나가는 기분도 든다. 약간 게임하는 것 같기도 하고? 게임의 굉장히 즐거운 점 중 하나가 너무 쉽지도 않고 도저히 해결 못할 만큼 어렵지도 않은 과제들이 주어지고 그걸 해결했을 때의 보상이 매우 확실하고 즉각적으로 주어진다는 점이라고 생각한다. 그게 게임의 주요한 매력요소 중 하나라고 생각하는데, 일도 그런 면이 있다. 게다가 대체로 다른 부서와 연결되어있는 업무들이라서 하나를 해결할 때마다 직접적으로 해당 부서의 업무에 도움을 준다는 것도 좋다. 물론 못 해결하거나 오래 걸리는 바람에 해당 부서의 업무에 방해(?)가 되는 슬픈 경우도 있지만.

밤을 새든 뭘하든 해결할 수 없을 것 같은 문제는 그저 짜증과 피로만 유발하지만, 조금만 더 능력을 키우고 조금만 더 공부하고 조금만 더 시간을 들이면 해결해낼 수 있는 문제들은 의외로 즐거움을 준다. 예전에는 워커홀릭들이 세상에서 가장 이해가 안되는 부류의 사람들이었는데 이제는 아주 약간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우리나라처럼 평균노동시간이 매우 긴 사회에서 직장을 다니는 사람에게는 일이 아닌 다른 취미를 꾸준히 해서 거기에서 성취감이나 나아감을 느끼기가 쉽지가 않다. 그렇게 많은 시간을 일하고 남는 시간에는 TV 정도 보는 것이 지친 사람들에게 주어진 쉬운 휴식의 방법이다. 더 시간과 노력이 들어가는 취미생활을 하기에는 시간과 체력이 남아나질 않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하루종일 하는 일에서 성취감을 찾을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그 안에서도 그렇게 일을 하고 일에서 성취를 보이면 회사 사람들이 인정도 해줄테고, 그런 곳에서 그나마 삶의 즐거움이나 의미를 찾아 버릇하다보면 워커홀릭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물론 난 아직까지는 일보다는 노는 게 좋다. 히히.

 

색깔도 맘에 들고 소리도 너무 맘에 드는 레오폴드 핑크색 키보드!

https://www.instagram.com/p/B-ivFKwJ3Sy/ <- 자전거 타면서 찍은 벚꽃길 영상(5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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