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까지의 나는, 여유시간이 많았다. 아니 사실상 여유시간이 아닌 시간이 별로 없었다고 하는 게 더 적확한 표현일지도 모른다. 작년에도, 올해 초까지도 하루에 3시간 정도만 생계를 위한 노동을 했고, 나머지 시간은 딱히 정해진 게 없는 시간이었다. 누군가와 약속이라도 잡혀있지 않으면 그 시간들은 무기력과 우울로 채워지기 일쑤였다. 그렇게 여유시간이 많았던 그때는 그 시간들이 내게 여유로움을 주지 않았다. 여유롭다고 느끼질 못했다.
역설적으로, 하루에 약 11시간 이상을 생계를 위한 노동에 쓰게 되니(출, 퇴근이 각각 1시간 이상, 점심시간 1시간, 업무 8시간 이상) 여유시간이 얼마나 있는지 명확히 눈에 보인다. 그리고 그 시간들이 정말로 여유시간임을 자각하게 됐다. 그 시간에 몹시 큰 여유로움을 느낄 수 있고, 그 여유로움에 몹시 감사하게 된다. 이를테면 집에 와서 함께 사는 사람과 저녁을 먹는 시간같은 것이다.
조인 적이 없는 나사를 풀 수는 없을 것이다. 나는 조여진 적이 없는 나사처럼 살고 있었다. 거의 나사빠진 상태에 근접한 채로 계속 살았는데, 내가 그 자유로움을 잘 즐기고 활용하지 못했다. 돈이 없어서 그런 것도 있지만 그건 핑계다. 당연히 많은 자유로운 시간을 활용하려면 돈은 그만큼 적을 수밖에 없다. 부모님에게 큰 재산을 물려받은 게 아닌 이상에야. 대신 많은 걸 돈 주고 사는 대신 스스로 만들거나 해내고 돈이 적게 드는 여러가지 것들을 적극적으로 찾고 즐기고 거기서 행복을 누리면 된다. 난 그런 것을 지향했지만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오히려 직장에서 일하는 게 내게 주는 만족감이 있다. 어떤 일이 주어지고 그 일을 해낼 수 있다는 게 좋다. 하나하나의 목표가 눈에 보이고 그게 다 처리되고 마무리되는 것이 눈에 보인다는 게 은근히 기분이 괜찮다. 다만, 지난 금요일에는 조금 도전적인 수준이 아니라 아예 불가능한 수준의 업무가 들어와서 의욕을 상실했지만. 그런 일은 자주 없길 바란다. 사실 일요일인 지금도 월요일까지 도저히 다 해낼 수 없는 일이 쌓여있는 상태에서 월요일에는 또 새로운 업무요청이 들어올까봐 그 생각만 하면 썩 기분이 좋진 않지만, 아마 이런 일이 자주 있진 않을 거고 나도 이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더 노력하고 주의할 것이다.(못하겠으면 못하겠다고 하고 업무를 나눠서 다른 부서에서 할 일은 다른 부서로 넘기고 능력을 키워서 같은 시간에 더 일을 효율적으로 처리해서)
그렇게 하면서 직장이 아닌 곳에서 보내는 시간들을 아기자기하게 내가 스스로 고민하고 계획하는 게 좋다. 이전에는 계획해야할 시간이 너무나 많아서 엄두가 안 났는데, 이젠 평일엔 하루에 자는 시간 제외하면 대여섯 시간만 잘 계획하면 하루를 잘 보낼 수 있다. 직장에선 일에 집중하고. 그리고 일주일에 이틀 있는 주말을 기대하면서 주말에 뭐하지, 하는 즐거운 계획만 세우면 된다. 매일매일을 뭘 해야할지 고민하다 그만 그 일을 일상적으로 잘 해내는 것을 포기하고 무기력에 빠져들었던 때보단 좀 낫다.
나사를 돌리다보면 꼭 맞게 조여진 느낌이 들 때가 있다. 굳이 더 돌아가지도 않는데 계속 더 돌릴 필요는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쉽게 빠지거나 헐거워지는 부분은 좀 꽉 끼워놓을 필요도 있지만 대체로는 기분좋게 조여진 정도면 충분하다. 내 일상이 어느 정도면 기분 좋게 조여진 정도인지 그 감을 잡아가고 있다. 회사에서 너무 많은 일이 내게 주어지는 것이야 완전히 내맘대로 조절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니지만, 그래도 대부분의 직원들이 7시 전에는 퇴근하는 요즈음의 우리 회사 분위기 정도면, 글로벌 스탠다드로 봤을 땐 아쉽지만 지옥같은 노동환경을 자랑하는 우리나라 문화에서는(라떼는 말이야 밤 10시가 기본이었어) 나쁘지 않다. 올해엔 내게 괜찮은 일상을 잘 찾고, 잘 만들어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