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2020~2022

나는 언제 모욕감을 느끼나

참참. 2020. 2. 20. 05:29

 

 

글쓰기 모임 '미지'의 이번주 공통글감으로 모욕감이라는 주제가 나왔다. 사실 이번 공통글감에 대해서는 글을 쓰지 않으려고 했다. 딱 떠오르는 경험이나 소재가 없기도 했고, 그렇다고 그걸 찾자니 내가 그 모욕감의 경험을 애써 기억해서 다시 겪고 싶지 않았다. 부정적인 감정을 최대한 줄이고 의식적으로 더 나은 감정상태에 있는 일상을 만들고자 하는 요즈음이라 거기에 영향을 받고 싶지 않았다. 내가 충분히 괜찮은 상태에 있다면 별 문제가 없지만, 불안정한 상황에서 내가 강렬하게 부정적인 평가를 당했거나 기분이 다운되는 걸 느꼈던 경험을 불러온다면 현재의 몸과 감정도 거기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어서 피하려고 했다는 말이다.

여전히 그 생각은 같지만 어제 오랜만에 만난 지인과 사주, 타로, 그리고 내 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와서 잠자리에 들고 깼는데, 꿈을 기억하려고 하다보니 꿈속에서 느낀 감정이 모욕감에 가까웠던 것 같아 글을 쓰게 됐다. 사실 이전까지 나는 꿈에 대해 크게 의미부여를 하는 사람은 아니었는데, 어제 만난 지인분은 자기 꿈을 기록해서 그 꿈을 가지고 다른 사람들과 함께 그 꿈의 상징들을 해석해보는 작업을 흥미롭게 하고 계셨다. 그래서 내가 적어간 꿈도 해석해봤더니 꽤 재밌는 측면이 많았다. 우선 꿈에 등장하는 모든 등장인물은 결국 '나'라고 생각할 수 있다는 점, 또 꿈 해석에 대한 공부를 딱히 한 사람이 아니어도 우리가 사회적으로 느끼는 해당 사물이나 해당 상황에 대한 상징성, 은유를 가지고 이렇게 저렇게 내 당시의 상황이나 무의식적으로 했던 생각들에 대해 얘기해보는 게 재밌었다.

어젯밤 꿈에서는 다른 사람들이 내 말을 끊는 상황이 여러 번 반복해서 벌어졌다. 무슨 워크샵같은 데에 함께온 것 같았는데, 현실적으로는 한꺼번에 볼 일이 없는 사람들 같았지만 뭐, 꿈이니까, 다양하게 섞여서 있었다. 그러다 마지막엔 내가 친하다 생각했던 누군가가 내가 아끼는 책갈피로 지저분한 뭔가를 긁어냈고, 내가 거기에 대해 화를 냈다. 멀리 있던 어떤 다른 분이 와서 무슨 상황이냐고 물어봐서 내가 화를 내던 상황에 대해 설명해주는데, 그 물어본 사람의 남자친구분이 오더니 내 말을 끊고 뭔가 말을 했고, 그 말을 듣고 그분이 뒤돌아서 남자친구분이랑 같이 가버렸다. 그래서 열심히 설명해주던 나는 무시당한 것같은 기분을 느끼며 그 사람, 그 커플을 참 무례하다 생각하며 잠에서 깼다.

돌이켜보니 나는 내가 말을 하는데 무시당하는 걸 몹시 싫어했다. 그렇다고 직접적으로 화를 내는 일은 거의 없지만, 마음 속으로는 그런 일이 생길 때마다 기분이 좋진 않았던 것 같다. 꼭 내 말에 긍정적인 피드백을 해야한다는 게 아니라 적어도 말을 끊고 아예 다른 소릴 하거나 아무 반응도 없이 무시하진 않았으면 좋겠다. 나는 이런 나를 계속해서 의식해왔다. 그리고 나의 그런 부분에 대해 스트레스 받아오기도 했다. 좀 더 쿨하고 싶었다. 남들이 나에게 어떻게 하든, 어떤 평가를 내리든 상관없는 사람이고 싶었다. 나이가 조금 더 들고, 연습의 결과로 어느 정도는 덜 신경을 쓸 수 있게 됐지만 그래도 아주 크게 달라졌냐고 하면 사실 아닌 것 같다. 대신 난 내가 그런 사람이기 때문에, 나도 다른 사람의 말을 무시하지 않는다, 아니 어찌 보면 못한다고 해야할 정도다. 무의식적으로 나는 내 주변에서 하는 말들에 다 반응을 하려고 하고, 의식적으로도 다른 사람이 어떤 말이든 했다면 꼭 듣고 뭔가 거기에 공감하고 반응하고자 하는 편이다.

가끔은 이런 내가 스스로도 피곤하다. 실제로 최근엔 그 피곤함 때문에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자리에 예전처럼 선뜻 뛰어드는 걸 망설이기도 했다. 내 말에 충분히 집중해주는 사람, 또 그럴 수 있는 상황에서만 사람을 만나고 싶은 마음이 들어서다. 예전부터 대규모의 모임보다는 일 대 일의 만남이나 소규모의 모임이 더 좋았다. 하지만 일 대 일로 만나고 있는데 상대가 내 말을 무시한다면 그 타격도 더 클 수밖에 없다. 그게 결혼생활에서 감정적으로 힘들었던 부분 중 하나이기도 했다. 그런 친밀한 일 대 일 관계에서 무시당한다고 느끼는 경험이 반복되자 아무리 그 사람이 그러려고 하는 의도가 없었다고 생각하려 해도 결국 상처로 남았다. 그리고 그런 상황이 되니까 점점 더 말을 안 하게 됐다. 그 상처를 피하고 싶어서 나도 모르게 말수가 점점 줄어갔던 것이다.

모욕감에 대해 돌아보는 게 쉽고 즐거운 일은 아닐 수 있지만, 내가 어떨 때 그런 기분을 느끼는지, 어디에 취약한지를 알아가는 것도 꼭 필요한 일이다. 그런 면에서 도움이 됐다. 모욕감을 느끼면 내가 어느 부분에서 그렇게 느꼈는지를 정리하고, 그 상황에 문제가 있으면 정리한 걸 바탕으로 그 문제를 잘 풀어갈 수 있으면 좋겠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면 정리한 걸 바탕으로 그 감정을 잘 받아들이고 덧나지 않게 잘 소화해내는 것도 중요하고 말이다. 앞으로 모욕감을 느낄 일이 없으면 좋겠지만 그러기엔 삶이 너무 많이 남은 거 같으니, 어쩔 수 없이 마주한다면 잘 다독여서 더 나은 삶의 재료로 쓸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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