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그래밍을 가르쳐주던 형이 갑작스레 '사람 구해달라는 데가 있는데 해볼래?'하고 얘기했다. 사이트를 관리하는 업무인 것 같은데, 문제는 구체적인 게 하나도 없었다. 구체적인 업무가 뭔지, 소속팀이 어딘지, 어느 정도 규모의 기업인지, 어떤 분위기인지, 근무시간은 언제부터 언제인지, 야근은 얼마나 하게 될지, 월급은 얼마나 주는지, 근무를 언제부터 시작한다는 건지, 어떤 능력이 필요한지 하나도 몰랐다. 회사 이름과 홈페이지, 사무실 주소 정도는 나와서 검색해보니 집에서 가려면 적어도 1시간 20분이 걸리는 곳이었다. 어떻게 타도 지하철 3개 호선을 거쳐야하는 곳이라니 시작도 하기 전에 출퇴근할 걱정부터 됐다. 게다가 31년동안 건드려본 적도 없는 분야에 다른 사람 추천으로 들어가서 내가 업무를 제대로 소화할 수 있는 게 맞는 건가하는 두려움도 크다. 이 형이 전문가니까 '빡세게' 배우면서 하면 할 수 있다는 게 맞는 거겠지만, 도대체 얼마나 '빡세게'!?
마음이 수십수백 번 왔다갔다 했다. 아직 좀 더 공부를 해보는 게 어떨까, 출퇴근 거리도 너무 멀고 전혀 모르는 기업에 갑자기 다음주에 면접을 본다는 게 부담스럽지 않나, 하는 생각과 그래도 그동안 쉬었는데 출퇴근이 좀 멀더라도 도전해보는 게 어떨까, 일을 하면 강제로 빠르게 배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동시에 들었다. 한 살이라도 젊을 때 출퇴근 지옥철도 그나마 참아낼 수 있을 거고, 게다가 그 기업을 계속 검색해보니까 생각보다 좋은 기업 같았다. 들어가보기 전에야 알 수 없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대기업이 선점하고 있는 시장에 뛰어들어서 틈을 만들어내고 8년차 계속 성장하고 있으며 직원복지에 대해서도, 특히 육아휴직 관련해서 좋은 기사가 있다. 또 사람 뽑는 채용공고가 그렇게 많이 검색에 걸리지 않는다는 점도 그럭저럭 좋은 의미 아닐까하고 혼자 그렇게 생각하고 싶다. 사람이 자주 그만두는 곳이었다면 채용공고가 계속 자주 올라와있을테니.
나름대로 해당 제품군을 소비하는 주소비자층에서는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성장하는 기업이라는 점도 확인했고, 나름대로 사회공헌도 하는 곳이라는 생각이 드니까 해보고 싶다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고 있다. 동생에게도 의견을 물었더니 일단 한번 해보는 게 어떻겠냐고 했다. 전혀 모르던 분야라는 두려움은, 이겨내야겠다. 그 회사가 어떤 분위기인지 모른다는 점도 사실 어떤 곳에 채용지원을 하든 결국 마찬가지인 점이니 그것도 좋게 생각해야겠다. 먼 출퇴근이 마지막까지 걱정인데, 그것만으로 포기하기엔 아쉬운 기회가 아닌가하는 쪽으로 점점 기울고 있다. 뭐, 정 못하겠으면 죽기 전엔 그만두면 되니까. 그래, 만약 정말로 일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한번 도전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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