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프로그래밍을 공부하고 있다. 아직 막 시작한 초보단계이긴 한데, 나름으로는 앞으로 먹고 사는 일까지 고려한 진지한 마음이다. 중학생이던 시절 꿈이 프로그래머였던 적이 있다. 오랜 시간동안 손도 대본 적 없이 살아온 완전한 미지의 영역이지만 해보고 싶었던, 동경하던 일 중 하나였던 것만은 진심이다.
나는 머리로는 창조적인 일, 새로운 걸 만드는 일을 하고싶다고 생각해왔지만 냉정하게 돌아보면 그래본 적이 별로 없는 것 같다. 일단 손재주가 그리 좋은 편이 아니라서 손으로 뭔가를 직접 만드는 건 자신이 없다. 시도해본 적이 없는 건 아니다. 뜨개질로 목도리도 떠봤고, 동네에서 목공 수업 들으며 의자도 만들어봤다.
내가 해온 일 중 그래도 뭔가 새로운 걸 만드는 일이라고, 창조적인 일이라고 할만한 것은 글쓰기 정도밖엔 딱히 떠오르는 게 없다. 작곡도 할 줄 모르고, 그림도 못 그리며, 기계도 잘 못 다룬다. 농사도 잘 해내지 못했다.
어쩌면, 내가 프로그래밍, 개발에 대해 갖는 로망 중 하나는 이 창조적인 면에 있다. 분명히 뭔가를 만드는 일이고 창조성을 요구하는 면이 있다. 뭔가를 만들어내는 일을 해내는 사람들을 보면 만들고싶은 게 분명한 경우가 많다. 손재주와 기술의 문제도 있지만 만들어내고 싶은 게 분명한 사람이라면 꼭 자기 손이 아니더라도 어떤 식으로든 만들어낸다. 난 아직도 만들고 싶은 걸 찾는 중이다.
목공 수업을 들을 때도 난 이걸 배워서 꼭 뭘 만들어야지하는 생각이 안 들었다. 요리를 할 때도 그때그때 먹을 만한 수준에서 만족했고, 농사를 지을 때마저도 별로 딱히 뭘 꼭 농사 지어서 먹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잘하고 못하고 이전에 열정과 의지부터 부족했다는 느낌이다. 정말 하고 싶었으면 프로페셔널하진 않아도 그럭저럭 할 수 있게는 됐을지도 모른다.
프로그래밍 공부는 아는 형님이 코칭해주고 있어서 컴퓨터의 기본구조와 C언어부터 건드리기 시작했다. 근데 막상 시작하고나니 처음부터 너무 어렵게만 느껴지고 의욕이 생기질 않아 정체하고 있다가, 이틀 전부터 파이썬을 건드리기 시작했다. 다행한 건, 게임을 만들어보고 싶어졌다는 것이다. 어렸을 때부터 게임은 좋아했으니까 이상할 일은 아니지만 뭔가 만들어보고 싶은 프로그램이 생겨서 기쁘다. 아직은 구체적이진 않지만.
또 내가 쓰는 어플들과 웹서비스들이 새롭게 보이고 이런 점이 개선된 프로그램이 있다면 어떨까하는 마음도 조금씩 들기 시작했다. 난 일상생활할 때 그냥 있는 물건, 있는 서비스를 그럭저럭 이용할 뿐, 대단히 개선을 위해 노력하거나 새로운 서비스의 가능성을 찾아낸다거나 할 정도로 부지런하지 않았는데 조금씩, 조금씩 내게도 그런 게 생기고 있다. 긍정적이다.
많은 개발자들이 직업적인 개발자가 될 수 있을 만큼 하려면 굉장히 험난한 과정들이 있다고 경고하기도 하지만 어쩌면 이번에는 그럭저럭 나와 맞는 분야를 찾은 건 아닐까하고 설레발을 한번 쳐본다. 설레발은 대개 이불킥으로 끝나지만 이 설렘을 안고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지금 기분이 나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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