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2013~2019

늘 출근하며 아침에 보는 홍대입구역의 광고판.

참참. 2013. 12. 17. 09:11

늘 출근하며 아침에 보는 홍대입구역의 광고판.

1.
사랑하고 사랑받는 건 몇 살을 먹어도 좋은 법이야.

2. 
꿈이란 건 말이지, 삶을 살아가는 자세를 말하는 거야. 그래서 내 꿈은 힙합이야.

3.
사람이 산다는 것은 그렇게 자기가 존재하고 싶은 자리에 자기 자신을 놓아두는 것이다. 무엇이 나를 얽매고 있는 것인가! - 황안나, <내 나이가 어때서> 중에서

4.
삶을 살아가는 자세, 그래, 꿈은 그런 거였다. 자기가 존재하고 싶은 자리에 자신을 놓아두는 것, 그래, 산다는 건 그런 거였다.
직업 따위가 절대 꿈이 될 수 없다. 세상에 불행한 그 많은 의사와 변호사, 공무원들을 보면 알 수 있다. 꿈을 이뤘는데 불행하다면 그건 꿈이 아니었던 거, 라고 생각한다. 강신주 박사가 얘기하듯, 만약 진짜 의사가 꿈이라면, 진짜 변호사가 꿈이라면 - 의사가 되고, 변호사가 된 순간부터 시작이다. 의사로서 내가 할 일들, 변호사로서 내가 할 일들이 그때부터 나를 무지막지하게 설레게 할테니까.(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휴식이 필요하고 노동조건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근데 막상 되보니, 그냥 출근해야할 직장이고, 심지어 끔찍하다면, 여태까지 꿈이라고 착각하고 있던 것뿐이다.

5.
꿈에 대한 이 말이 몹시 마음에 들어서, 찾아봤다. 작가가 누군지. 김수연 작가, 나보다도 어렸다. 그걸 본 순간 여러가지 감정이 교차했다.
그 중엔 긍정적인 감정도 있었지만, 고백컨대, 별로 기분좋지는 않았다. 심지어는 '나보다도 어리면서 뭘 안다고'하는 생각까지 스쳐지나간 듯 했다.
정신을 차리고나니 끔찍했다. 내가 그렇게 싫어하던 꼰대본능이, 고작 스물넷 먹은 나에게, 벌써부터 이렇게 있구나. 나이가 뭐라고,
물론, 나이를 먹으면서 수많은 직, 간접 경험을 통해 많은 지혜를 쌓고 후배들에게 삶 자체로 가르침을 주시는 훌륭한 분들이 너무나도 많아서, 존경해마지않는 분들도 수업이 많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이가 뭐라고. 이런 생각이 든 걸까, 이 생각이 지금 처음으로 내게 들어온 건 아닌 것이 분명하다. 아주 오래 전부터 내 안에 있었다. 느껴진다.
하하하, 진짜 나, 별로구나.

6.
그건 어쩌면, 열등감에 가까운 것이기도 했다. 나도 나름 글 쓰는 거 좋아한다. 근데 솔직히 열심히 썼다고 하면 말도 안되는 구라이고, 책도 많이 읽었다고 하면 진짜 말도 안되는 구라가 된다. 어쩌면, 그런 것들에 대한 열등감? 책 한권을 냈다는, 꽤 대단해보이는 일을 한 후배들에 대한 부러움? 뭐 그런 것들.

7.
근데,
최근 1년 사이에 굉장히 많이 느끼는 건, 진짜 그깟 나이 별 소용도 없다는 거다.
나 자신을 돌아보게 만들고, 부끄럽게 만드는
한수 배워야할 후배들이 마구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위 소설가와 동갑인 청년유니온의 김민수 팀장님, 그 역시 책을 썼고, 난 그 책 무지 재밌게 다 읽었다. 실질적인 도움도 많이 되고.
19살 위영서, 대학입시거부선언, 투명가방끈. 행동하는 그의 모습에 늘 감탄하고, 감동한다. 나보고 학교 때려치고 같이 투명가방끈 하잔다. 
사실, 나 대학교 2학년 끝날 때쯤부터 학교 때려칠까 무지 많이 고민하고 있다. 대학을 다닌다는 거 자체가 절대악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공부가 적성에 맞고, 공부를 하는 직업을 갖고, 평생 공부하고싶은 사람들에게 대학은 꼭 필요한 곳이라고 생각하지만, 요는 내가 딱히 거기에 속하지 않는 것 같다는 자각. 혹은, 정말로 하고싶을 때 다시 할 수 있다는 믿음.

8.
공부엔 때가 있다? 맞다. 근데 인생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때가 있다면, 그건 바로 내가 하고싶은 게 생겼을 때, 바로 그 때다. 그 때는 그걸 해야만 한다. 그때 하지 않으면 영영 못한다. 나중에 한다고 해도, 그땐 이미 그 마음이 아니다. 그리고 그 마음, 무언가 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어올 때, 자꾸 지금은 그걸 할 수 없어, 그건 쓸모없는 일이야 하는 식으로 죽여 버릇하면, 나중엔 정말 아무것도 하고싶지 않아질지도 모른다. 습관, 그거 무서운 거다.
당신이(혹은 나 자신에게) 그 일을 할 수 있는 때는, 바로 지금 이 순간. 당신이(혹은 나에게) 살아낼 수 있는 시간은 지금 이 순간뿐이다.

9.
이젠, 조금은 '나이'라는 걸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있는 걸까.
아직, 갈 길은 멀지만.
내가 더럽게 싫어하는 꼰대-가 되지 않는 건, 생각보다 험난한 길일지도 모르겠다.
하긴, 그게 그렇게 쉬우면 세상에 그 많은 꼰대들이 있을까.
그리고, 그렇게 쉬운 거라면 재미없어서 안할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