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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맑스, 《임금노동과 자본》

참참. 2013. 8. 6. 09:29



임금 노동과 자본

저자
칼 맑스 지음
출판사
박종철출판사 | 1999-06-24 출간
카테고리
정치/사회
책소개
맑스의 글 가운데 임금 노동과 자본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밝힌 ...
가격비교


《공산당 선언》을 읽으면서 뭔가 안개에 싸인 것처럼 답답했던 것이 상당 부분 해소되는 기분을 느꼈다. 《공산당 선언》이 정치적인 선언문이라면, 《임금 노동과 자본》은 당시 노동자들을 위한 강연을 기초로 한 글이다. 그래서 더 쉽고, 주로 설명을 해주는 투로 이야기하고 있다. 그렇다곤 하지만 그렇게 아주 쉽지만은 않았다.


이 글을 통해 맑스가 이야기한 자본과 임금, 노동자의 관계는 흥미롭다.

맑스는 임금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어떻게 결정되는가? 라는 질문에서 출발하고 있다.

우선 자본가들은 임금노동자들의 '노동력'을 사고, 임금노동자들은 자본가들에게 '노동력'을 판다. 여기서 '노동력'이란 노동과 구분하기 위해 쓰이는 용어다. '노동력'은 임금노동자가 미래에 할 수 있는 노동을 뜻한다. '앞으로 한 달(혹은 하루, 혹은 1년 등) 간의 노동을 할 수 있는 능력'을 자본가는 사고, 임금노동자는 판다고 하는 것이다.

그럼 이제 '노동력'이란 하나의 상품으로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5천원짜리 잡지가 한 권 있고, 우리의 시급이 5천원이라면, 잡지라고 하는 상품과 우리의 '한 시간의 노동력'은 5천원이라는 가치로 표현된다. 자본가는 우리의 노동력을 하나의 상품으로 구매하는 것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임금이란 것은 '노동력'이라는 상품의 가격인 것이다.


그렇다면 상품의 가격은 무엇에 의해 결정되는가? 맑스는 이 질문으로 넘어가고 있다.

흔히 수요와 공급이라고 부르는, '판매자들 사이의 경쟁', '구매자들 사이의 경쟁', '구매자와 판매자 사이의 경쟁'이라는 세 측면에 대해 이야기한다. 우선 수요와 공급이 늘어나고 줄어듦에 따라 상품가격이 올라가고 내려가는 일반적인 원리(수요에 비해 공급이 적어 가격이 올라가면 다른 자본가들이 그 사업에 뛰어들어 공급이 늘어나고 가격이 내려가고, 공급이 많아 가격이 내려가서 이윤이 적어지면 자본가들이 그 사업에서 손을 떼므로 공급이 줄어들고 다시 가격이 조금씩 오른다는.)를 설명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렇게 왔다갔다하는 가격은 어느 선을 사이에 두고 움직일까. 어느 정도면 가격이 '비싼' 것이고, 어느 정도면 '싼' 것인가. 누구나 쉽게 생각하듯, 그것은 생산비용에 달려 있다. 생산에 드는 비용보다 두 배, 세 배를 가격으로 받는다면, 일반적으로 비싸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고, 공급은 많고 수요는 적어 생산비용만큼의 가격도 받기 어렵다면 그건 싼 가격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상품의 가격은 이렇게 왔다갔다하는 변동들 속에서 생산 비용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이다.

"상품들의 가격을 일반적으로 규제하는 바로 그 일반 법칙들이 당연히 임금, 즉 노동의 가격도 규제한다."(39쪽)

그렇다면 결국 노동력이라는 상품의 가격도 끊임없이 변동하면서도, 그 상품의 생산비용 근처에서 결정될 것이다.

"그런데 노동력의 생산 비용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노동자를 노동자로서 유지하고 그를 노동자로서 훈련시키는데 요구되는 비용이다."(39쪽)

특별한 교육이 필요하지 않고, 노동자의 육체적 삶만 유지되면 되는 단순 노동에 대한 임금은, 필요 생활 수단의 가격에 의해 결정된다. 다만, 기계도 오래 쓰면 새 기계로 교체해야하므로, 그 돈까지 미리 계산하여 상품가격에 추가하듯이, 노동자도 새로운 노동자들로 대체할 수 있도록 번식비용 역시 계산에 넣어야한다고 맑스는 쓰고 있다.

"따라서 단순 노동력의 생산 비용은 노동자의 생존 비용과 번식 비용에 달한다. 이러한 생존 비용과 번식 비용의 가격이 임금을 형성한다. 이렇게 결정된 임금을 임금의 최소치라고 한다."(40쪽)


우리가 어떤 공장에서 하루에 5만원을 받고 일한다고 치자. 그래서 10만원 어치의 상품을 생산한다고 하자. 그럼 그 기업가는 10만원의 상품을 생산할 수 있는 노동력을 5만원에 사는 것이다. 노동자는 곧 자신의 생활 유지(노동력의 재생산)를 위해 5만원을 소비하게 되며, 다시 기업가와 똑같은 교환을 반복해야 한다. 반면, 자본은 5만원을 소비하여 10만원 어치의 상품을 얻게 되므로, 노동력을 구매하여 이 과정을 반복하면서 점점 커지게 되는 것이다.

이윤과 임금은 반비례 관계에 있는 것이다. 노동자가 노동하여 생산한 가치 10만원 중 5만원이 임금이고 5만원이 이윤이라면, 이윤이 올라가면 임금이 줄어들고, 임금이 올라가면 이윤이 줄어드는 반비례관계가 형성된다.

맑스는 '가능한 한 급속한 자본의 성장이 노동자에게 가장 유리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아무리 노동자의 물질적 생활을 개선한다 하더라도, 노동자의 이해 관계와 자본가의 이해 관계 사이의 대립을 철폐하지는 못한다. 이윤과 임금은 그 이전이나 이후나 반비례 관계에 있다. 만일 자본이 급속히 팽창한다면 임금이 상승할 수도 있을 것이다.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더 빨리 자본의 이윤은 상승한다."(58쪽)고 말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맑스는 "생산적 자본의 성장과 임금의 상승은 부르주아 경제학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정말 불가분하게 결합되어 있는가?" 라는 질문을 던진다. 우리가 지금도 흔히 듣는 '회사가 돈을 더 많이 벌어야 월급도 더 주든지 말든지 할 거 아냐?'라는 말이 과연 진실인지 따져보자는 것이다. 

분석은 이렇다. 자본의 증대는 자본가들 사이의 경쟁을 증대시킨다. 한 자본가는 더 싸게 판매함으로써만 다른 자본가들을 싸움터에서 몰아내 그들의 자본을 얻을 수 있다. 파멸하지 않으면서 더 싸게 판매하기 위해서는 더 싸게 생산해야만 한다. 다시 말해 노동의 생산력을 될 수 있는 대로 높여야 한다.

그러려면 분업을 통해 효율을 높이고, 기계를 최대한 도입해야 한다. 그러면 같은 노동으로 더 많은 상품을 뽑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서 어떤 자본가가 다른 자본가들보다 앞서서 좋은 효율을 내서, 더 싼 가격에 상품을 판매하여 많은 이윤을 남긴다고 해보자. 그럼 그 자본가의 이윤이 일시적으로 굉장히 커지므로, 노동자들의 임금도 올라갈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같은 시장에서 겨루고 있는 다른 자본가들이 똑같은 기계, 똑같은 분업을 도입하는 것은 시간 문제다.

그렇게 점점 효율(같은 노동으로 더 많은 상품을 생산하는)은 높아져가지만, 결국 어느 쪽도 이득을 보기는 어렵고 점점 더 많은 상품들이 경쟁에 의해 싼 가격에 시장에 나오는 현상만 반복된다.

"그런데 생산적 자본의 성장과 분리시킬 수 없는 이러한 사정들은 임금의 결정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가?"(65쪽)

더 확대된 분업은 한 노동자로 하여금 5, 10, 20명분의 노동을 할 수 있게 만든다. 따라서 그러한 분업은 노동자들 사이의 경쟁도 5, 10, 20배로 증대시킨다. 더욱이, 분업이 증가하는 것과 똑같은 정도로 노동은 단순화된다. 노동자의 특수한 숙련 기능은 무가치하게 된다. 그의 노동은 누구에게나 가능한 노동이 된다. 따라서 경쟁자들이 사방에서 그에게 밀고 들어오며, 게다가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노동이 단순할수록, 배우기 쉬울수록, 그 기술을 배우는데 필요한 생산 비용이 적어질수록, 임금은 더욱더 아래로 내려간다는 것인데, 왜냐하면 각각의 다른 상품들의 가격과 마찬가지로 임금도 생산 비용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이다.

요약하면, "생산적 자본이 성장할수록 분업과 기계 적용은 더욱더 확장된다. 분업과 기계 적용이 확대될수록, 그만큼 노동자들 사이의 경쟁은 더욱더 확장되며, 그들의 임금은 더욱더 수축한다."(69쪽)

결국 "자본이 급속히 성장하면, 노동자들 사이의 경쟁은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더 급속히 성장하며, 다시 말해 노동자 계급을 위한 고용 수단, 생활 수단은 더욱더 감소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본의 급속한 성장이 임금 노동에게 가장 유리한 조건인 것이다." 라고 그는 글을 맺는다.



맑스가 이 글을 쓴 것이 1849년이라고 한다. 150년하고도 10년 이상 더 지난 글인 것이다. 그 시대에 맑스가 통찰해낸 자본과 임금의 관계는 굉장히 설득력이 있다. 지금 봐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그가 예견한대로 노동은 더 단순화되었고, 노동자들의 물질적 처지는 개선되었으나, 노동자들 사이의 경쟁은 엄청나게 증가했다.

물론, 맑스가 글을 쓴 시대와 지금의 시대가 많이 다르므로, 모든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기는 어려운 면이 있다. 맑스는 자본의 이러한 성질들로 인해, 부르주아지와 프롤레타리아트라는 두 거대한 계급만이 남게 될 것이라고 보았는데, 현실적으로는 정규직 노동자라는 자본에 포섭된, 프롤레타리아트라고 보기 어려운 형태의 노동자들도 생겨났고, 비정규직과 아르바이트라는 계속적인 노동이 불가능한 사람들이 엄청나게 생겨나는 등, 복잡한 현상들이 일어나고 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오랜 시간이 지나고 시대가 달라졌음에도, 맑스가 여전히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은, 자본주의라는 체제가 어떻게 돌아가는지에 대한 그의 통찰이 그만큼 탁월하다는 이야기다. 그를 신격화하여 무작정 믿는, 거의 종교적인 신념에 가까운 믿음은 경계해야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그의 철학과 통찰들은 충분히 읽고 공부할 가치가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