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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맑스, 《공산당 선언》

참참. 2013. 7. 25. 00:20



경제학 철학초고 자본론 공산당선언 철학의 빈곤

저자
칼 마르크스 지음
출판사
동서문화사 | 2008-08-15 출간
카테고리
인문
책소개
19세기부터 현대까지 수많은 논란과 찬반을 불러오는 마르크스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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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산주의 선언

저자
칼 맑스 지음
출판사
박종철출판사 | 1998-12-23 출간
카테고리
정치/사회
책소개
프리드리히 엥겔스가 새롭게 출판한 독일어 4판을 번 역 소개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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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산당 선언》의 본문 자체는 별로 길지 않기도 하고, 어떻게 하다보니 두가지 다른 번역으로 읽어보게 됐다.
개인적으로는 동서문화사에서 나온 번역이 조금 더 마음에 들었지만, 사실 큰 차이는 없었다. 박종철출판사에서 나온 판은 공산당 선언만 싣고 있어서, 공산당 선언의 서로 다른(이를테면 독일어판과 영어판) 판들의 차이에 대해서도 주석으로 다 달아놓았고, 여러번 나온 서문들도 뒤에 다 실어놓았다. 동서문화사에서 나온 책은 여러 글들을 함께 싣고 있어서 그런지, 공산당 선언의 서문은 1872년 독일어판 머리말만 싣고 있다.


오늘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회의 역사는 계급투쟁의 역사이다.

역사라는 것을 어떻게 보느냐하는 것은, 우리가 세계를 바라보는 관점에 굉장한 영향을 미친다. 우리들이 대체로 학교라는 곳에서 배우는 역사, 보통의 역사라고 당연히 생각하는 역사는, 모두 영웅들, 승리자들, 지배자들, 위대한 개인들의 역사이다. 어느 왕이, 혹은 어느 황제가 몇 년부터 몇 년까지 어느 나라를 통치했고, 얼마나 영토를 확장했으며, 언제 어떻게 죽었는지에 대해서 우리는 공부한다.

물론, 그것도 역사다. 그렇지만 완전히 다른 관점에서, 맑스는 여태까지의 역사를 계급투쟁의 역사로 보았다. '선언'답게 짧은 문장으로 세계에 대한 새로운 관점, 새로운 인식을 우리 앞에 내놓는다. 농경사회가 시작되고 잉여생산물이 생긴 이래로, 사람들의 사회에는 계급이라는 것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러한 계급과 계급들이, 억압하는 자와 억압을 받는 자 - 자유민과 노예, 귀족과 평민, 영주와 농노, 길드 우두머리와 직인 등 - 가 늘 존재했고, 그들이 서로 투쟁해온 이야기들을 역사라고 보는 것이다. 신선한 발상이다.


부르주아 계급도 역사적으로 매우 혁명적인 역할을 했으나, 이제 그 역할을 다했다고 그는 말한다. 부르주아들이 억압하는 자의 계급에 올라섰고, 그것이 자본주의 사회라는 말이겠지. 맑스가 이 선언문을 쓴지 벌써 160년이 지났다. 자본주의는 그때 맑스가 말한 모습들을 그대로 계속해서 보여주고 있다. 신기할 정도로 그는 자본주의에 대해 꿰뚫고 있다. 과학기술이 발전하고 수많은 새로운 것들이 생겨났지만, 자본주의 사회의 모습은 그가 묘사한 그대로다.


하나의 역사적 관계에 지나지 않는 여러분의 생산관계 및 소유관계를, 영원한 자연법칙, 이성법칙으로 여긴다는 여러분의 이기적인 생각은 몰락한 지배계급 모두에 공통된 사고방식이다.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해낼 수 있었을까? 사실, 아무리 이런 말을 듣는다고 해도,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이 세계의 모습이 당연하고 자연스럽다고 느끼는 것, 별일이 없다면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너무나 당연하다. 전혀 다른 사회를 상상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닌 것 같다. 모든 사람은 그가 속해있는 사회, 그가 자라온 환경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 사회와 사람들이 절대불변의 진리라고 믿고 있는 것들은, 실은 그 사회의 지배계급의 논리일 뿐일지도 모른다. 근데 사회 전반을 통해 계속해서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그것들을 받아들이다보면 어느새 자연스럽게 그것들이 '나의 생각'으로 자리를 잡게 된다. 

그렇지만 역사적으로 그 당연하다고 믿었던 것들이 얼마나 많이 깨어져 왔는가. 노예가 있는 것이 당연하고, 귀족이 있는 것이 당연한 사회는 계속해서 존재해왔다. 여자는 인간 이하의 존재고 정치적 판단력이 생길 수가 없다며 투표권도 주지 않았던 날들은 길고도 길었다. 그렇지 않게 된 것은, 우리가 지금 '상식'이며 '당연하다'고 믿고 있는 것들이 생겨나고 받아들여진 것은, 정말 불과 일이백년밖에 되지 않았다. 지금까지의 전체 인류 역사에서 보면 극히 짧은 매우 예외적인 시간이다.


인간의 생활관계, 그 사회관계, 그 사회적 존재양식에 따라서 인간의 관념이나 견해·개념, 한마디로 말하자면 인간의 의식도 변화한다

마르크스는 위와 같이 쓰고 있다.

예전에 읽었던 어떤 책에서, 어느 부족에는 '나의'라는 내 소유를 가리키는 낱말 자체가 언어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읽고 충격을 받았었다. 우리가 절대적이라고 믿는, 인간의 '본성'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 갖고자하는 욕망, 소유하고자 하는 욕구조차도 실은 어떤 특정한 생활관계와 사회적 존재양식에서 나타나는 의식일 뿐일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어쩌면 그걸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의 《오래된 미래》에서 읽었는지도 모른다. 공산주의와 관계된 책은 전혀 아니지만, 옛 공동체의 모습이 그대로 남아있던 라다크의 모습을 읽었던 기억이, 여기서 어렴풋이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