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바라는 책읽기/바라는 삶을 위한 생각

전희경, 《오빠는 필요없다》

참참. 2013. 8. 1. 10:51



오빠는필요없다(이매진컨텍스트15)

저자
전희경 지음
출판사
이매진 | 2008-10-17 출간
카테고리
정치/사회
책소개
이른바 진보적이라는 남자들의 가부장적이고 보수적인 행태를 꼬집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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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의 이른바 진보운동이라고 하는 곳들에서 벌어진 온갖 반여성적인 행태들을 밝혀내고 비판해낸 역사를 기록한 책이다. 그러면서 그들이 어떻게 현대의 여성주의 운동으로 걸어오게 되었는지를 밝히고 있다. 여러 명의 생생한 인터뷰 내용을 계속해서 인용하고 있어서 굉장히 현장감이 있다. 그들이 직접 경험하고 느낀 사건들, 감정들, 그때의 속마음들, 말했던 것과 차마 말하지 못했던 것들까지. 우리나라에서 진보운동을 하는 여성들이 겪는 현장의 일상들이 어떤 것인지, 지금 여성주의 운동을 하시는 분들과 단체들이 어떻게 만들어져온 것인지, 솔직한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다.

마지막 4부에서는 여성주의 운동 내의 이야기도 다루고 있다.

서로 상처받을까봐 이야기를 못하고, 그렇게 집단 내에서 서로의 견해 차이는 숨겨진 채 커져간다는 것에 대해서. 이렇게 책으로 써놓고 제 3자의 입장에서 바라보면 참 답답한 얘기지만, 현실적으로는 늘 일어나는 일이다. 상처를 주고받지 않고, 서로 완전히 갈라서거나 조직이 깨어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어떤 경험이나 견해에 대해 함께 사유하고 토론하고 건강한 논의를 진행시킬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그렇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이라, 그럴 수 있으려면 우리가 어떤 태도를 갖고 또, 어떤 방식으로 진행을 해나가야할지 이건 어떤 일이든 함께하는 사람들과 중요하게 함께 생각해보고 싶은 부분이다.

'여성주의자 편이냐 운동권 편이냐 이걸 확실히 해라' 그런 분위기였다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그러니까 개인의 입장에서는 기존의 사회운동의 의미를 받아들이고 그 운동권의 논지에 공감하면서 같이 운동을 하고 싶으면서도, 동시에 여성주의적인 삶과 문제의식을 지니고 있거나 그러고 싶어할 수도 있는건데, 꼭 이편 아니면 저편으로 가서 어느 편으로 결정을 하면 반대편과는 적대관계가 되어야만 한다는, 그런 분위기. 언뜻 보면 좀 웃기기도 한데, 이것도 현실적으로 굉장히 만연해있는 분위기고, 어떻게 보면 그게 자연스럽다고 여기는 그런 분위기가 있는 거 같다. 

나 역시 똑같이 그런 감정들을 느낀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우리가 어떤 단체나 진영 내에서 그렇게 치열하게 싸우는 사람들은, 우리 사회의 문제에 대해서 같은 목소리를 내는 부분이 훨씬 많은 사람들이다. 그러니까 이렇게 마주하고 싸울 기회도 있는 것이다. 애초에 전혀 다른 사람이었다면 비슷한 단체에 있지도 않을 거다. 싸우면 안 된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가 서로 논쟁하는 그 사람들은 실은 사회 전체로 보았을 때 서로 굉장히 근접한 생각을 지닌 축에 속하는 사람들이라는 걸 기억해야한다는 거다. 우리 모두 좋은 마음으로 모인 것이고, 서로 생각이 다를 수도 있지만 그것도 모두 좋은 의도에서 나오는 말이라고 생각하면서 토론할 수 있다면 좋겠다. 나부터도 토론 문화 자체가 익숙치 않고 상처를 많이 받는 타입이긴 하다만은.

어느날 갑자기 남편과 두 아이를 잃은 이야기, 바버라 파흘 에버하르트의 《4-3》이라는 책을 보면 이런 얘기가 나온다.
"사랑하는 사람은 서로에게 좋은 사람이기에 그들이 상대에게 말하는 것은 모두 좋은 뜻" 늘 그러기 어렵다는 건 우리 모두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우리가 서로 싸우게 될 때 잠깐이라도 이런 관점에서 상대와 상대의 말을 바라본다면.


그러니까 정말 우리가 더 성숙하고 또 힘을 가지고 멀리 가려면, 서로의 차이는 차이대로 두고 건설적인 논의나 토론을 진행하면서, 또 서로 다른 단체에 소속되고 어떤 부분에 대해서는 일치될 수 없는 생각을 지니고 있다하더라도 어떤 동일한 부분의 싸움에서 함께할 때는 온 힘을 다해 함께할 수 있어야한다고 보는데, 이건 이상적인 이야기고 참 어렵다. 어떤 특정 주제 등에 대해서 의견이 안 맞게 되면 다른 많은 주제에 대해 같은 생각을 해도 적이 되는 것. 그러고나면 어느 쪽이 먼저 어떤 일을 해버리면 우리는 걔네와 같은 편이 아니니까 비록 그게 우리 생각과 비슷한 활동이라할지라도 우리는 그걸 반대하거나 적어도, 함께하거나 따라하면 안된다는 생각. 쟤네는 우리의 '적' 비슷하게 되어버린거니까 뭔가 만나는 것조차 껄끄러워지고. 나 자신도 스스로 그런 감정을 느끼니까 다 이해는 되는데, 그런게 좀 답답한 면도 있다. 결국 그렇게 다 따로따로 파편화되고 개인화되어버리는 것을, 우리 스스로 그런걸 비판하면서도 우리도 스스로 그렇게 만들고 있지 않나. 정규직이 비정규직집회에 연대하지 않는 것처럼, 물론 그것과 바로 비교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지만서도, 우리도 비슷한 식의 감정을 가지고 지금 서로를 적대시하고 있지 않나, 약간 그런 문제의식이 생겼다.


"여성의 경험을 논란의 여지없는 확실한 것으로 생각하기 시작하면, 특정한 경험이 특정한 정치적 행동으로 곧바로 이어진다고 여기기 쉽다. 하지만 페미니스트가 되게 하는 경험은 특정한 방식으로 '해석'되고 '위치지어진' 경험이다." (299쪽)

경험을 '(재)해석되는 것'으로 바라봐야한다는 말이 인상깊다. '그런 경험을 했으니까 그런 생각을 하게 되는게 당연하지,'라고 우리는 늘 쉽게 생각하지만, 실은 꼭 그렇진 않다. 다른 경험을 통해서 비슷한 생각에 도달한 사람들도 많고, 같은 경험을 했지만 전혀 다르게 그 경험을 해석하고, 다른 생각을 하며 사는 사람도 수도없이 많다는 걸 알고 있지 않은가.


"자기 자신이 이전과 다른 감수성, 이전과 다른 가치관과 습관을 지닌 존재로 변해야 하기 때문에, 단기간의 '결심'이나 '단절'만으로 변화를 성취하기는 어렵다. 더 평등하고 권위적이지 않으며 지지하고 공감하는 관계를 만드는 과정은, 자신을 달라지게 하는 몹시 어려운 과정이기도 하다."(305쪽)

자신을 달라지게 한다는 게 진짜 어려운 과정이라는 걸 많이 느낀다. 배우고 공부하고 '알았다'고 해서 끝나는 게 아니라는 게. 막 책 읽고 감상같은거 쓰면 와 진짜 많은 걸 느끼고 막 내가 많이 변한 거 같고 그렇다. 현실은 근데 내일이면 아침 일어나면 거~의 똑같다. 그래서, 정기적인 모임에 참여하는 게 참 소중하다는 생각이 든다. 처음에는 내가 '여성주의'라는 걸 모르니까, 알고 싶으니까 공부하려고 모임에 갔다. 요즘 '인문학'이라는 게 일종의 악세사리처럼 유행이 되고 있는 분위기가 한쪽에서 있는데, 그런 것처럼 나 역시 이 책에도 앞에 언급이 됐던 것처럼, 뭔가 '여성주의'라는 걸 내 지식의 범주에 넣어서 막 나를 정당화하는데 이용하고 더 많이 아는 인간이 되고 싶고 약간 허영심? 이런게 있었던 걸지도 모른다.

지금은, 물론 지금도 여성주의가 뭔지 잘 모르지만, 그래도 이렇게 모임에 참여하면서, 또 4부에 나오듯 여성주의라는게 뭐 진정한 여성주의는 이러이런거다 딱 정의가 내려질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각자의 상황과 살아온 역사에 따라서 다른 거고, 여성주의 내에서도 또 많은 서로 다른 여성주의'들'이 있어야하는 거고, 그런걸 뭐 일일이 공부해서 막 다 알 수도 없고 그럴 수 있다고 해도 뭐 그게 그렇게 큰 의미가 있는 것도 아니고, 공부는 필요한 거지만 결국엔 '자신의 것'을 만드는게 중요한 거 같다. 무슨 여성주의 추천도서목록 몇십권을 다 읽고 이런게 중요한게 아니라. 다 읽고 까먹으면 끝인데. 그런 의미에서 일주일마다 모인다는게, 적어도 일주일에 한번은 관련 책을 들여다보고 그런 경험과 생각들을 나누면서 내 일상을 돌아보고 홍세화 선생님이 좋아하는 표현대로 '일상의 긴장'을 유지한다는 게. 그러면서 조금씩 달라지는, 단기간의 결심이나 단절만으로 변화할 수 없으니까 계속, 계속 그 방향으로 가고자 하는 것. 매주마다 조금씩. 변화라는 건 한순간에 이루어지는 게 아니니까.


"여성주의 정체성 자체를 일련의 '과정'으로 이해할 수 있다면, 그리고 '변화하는 과정에 있는 주체'로 자신과 상대방을 이해할 수 있다면, 예전과는 좀 다른 방식으로 어떤 차이들을 다룰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305쪽)

"견해 차이들 사이의 경계는 상황의 산물이며 상황과 함께 움직인다는 인식, "네가 어떻게 그럴 수 있어?" 라고 묻기보다 '그럴 수 있음'을 견뎌낼 힘을 여성연대에 대한 다른 상상력을 통해 만들어 내는 것이 필요하다."(309쪽)

아무리 생각해도, 여성주의뿐 아니라 어디에다 적용해도 충분히 의미있는 문장들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