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바라는 책읽기/바라는 삶을 위한 생각

문경보 선생님의 《흔들리며 피는 꽃》, 그리고 《외로워서 그랬어요》

참참. 2013. 6. 8. 21:34



흔들리며 피는 꽃

저자
문경보 지음
출판사
샨티 | 2003-05-15 출간
카테고리
시/에세이
책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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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불암산에 가려고, 화서에서 상계까지 지하철만 왕복 세 시간을 넘게 탔다. 지하철에서 읽을 책으로 고른 책이 바로 《흔들리며 피는 꽃》이었다. 어려운 책도 아니고, 글씨도 크고, 쪽수도 얼마 되지 않아서, 책을 읽는 속도가 느림에도 오고가는 지하철 안에서 전부 다 읽었다.

아침 6시에 1호선 지하철을 탔는데, 이 책 덕분에 좀 난감했다. 책을 펼쳐 첫번째 사연을 읽는데, 갑자기 감동이 몰려오면서 눈물이 나오려고 하는 거다! 내가 이렇게 눈물이 많은 사람이었던가. 다행히 사람은 얼마 없었는데, 아주머니 두 분이 맞은 편에 앉아 이야기를 하고 계셨다. 괜히 부끄러워서 책으로 얼굴을 슬쩍 가렸다. 하하하.

"선생님, 저 외워버렸어요. 글을 보고 읽는 건 잘 못해도 외우는 건 조금 할 수 있거든요. 그래서 밤새… 누나가 녹음해 줬어요. 그걸 듣고 외웠어요. 여기 올 때도 길거리에서 외우려고…"
"선생님, 대식이 버스 속에서도 외웠어요."
나는 아이들에게 이제 그만 포기하자고 말하려 했다. 의욕만 앞세운 내 자신이 부끄럽고 아이들이 또 다른 상처를 받기 전에 이제 그만 멈추려 했다. 그런데 이놈들의 속력이 나를 앞지르고 있는 게 아닌가.(문경보, 
《흔들리며 피는 꽃》, 21쪽)

"저는 국어 책을 잘 읽지 못합니다. 하지만 이 글만은 제가 꼭 읽어서 여러분에게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연습이 끝나고 일주일 동안 매일 밤 읽는 연습을 했습니다. 저희들은 모두 꼴찌입니다. 바보입니다. 그런데 문경보 선생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래도 너희들은 남에게 줄 것이 있다고, 너희들이 가진 것이 얼마나 많이 있는 줄 아느냐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오늘 이렇게 공연을 하게 되었습니다. 연습을 하는 동안 우리는 정말 행복했습니다. 선생님 고맙습니다. 선생님 사랑합니다."(문경보, 《흔들리며 피는 꽃》, 26쪽)

이런 대목이었다. 요약하자면, 누구나 인정하는 꼴찌 아이들, 아직 글자도 제대로 읽지 못하는 아이들만을 모아 '아낌없이 주는 나무'라는 연극 공연을 했다는 내용이다. 그 공연을 보고, 모든 관객이 한참 가만히 있다가, 전부 일어나 기립박수를 쳤다는. 게다가 그 기립박수를 받고도 무대에서 내려오지 않고 있던 아이가 위에 인용한 저런 말을 했다는, 그런 내용이었다. 너무나도 아름다운 이야기여서, 정말 실제로 있었던 일 맞을까 의심이 들 정도였다. 이런 선생님이 계신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가.


그렇게 한번의 위기를 겪고, 남사스러워서 조금 긴장하며 읽었다. 그 덕분인지 다행히(?) 그 뒤로 도착할 때까지는, 갑자기 눈물이 나오진 않았다. 그러다 돌아올 때 다시 눈물샘이 자극을 받게 됐는데, 이런 구절이었다.

"선생님 못난 자식 놈 때문에 죄송합니다. 학교에서 정한 규칙에 따라 처벌해 주세요. 그리고 이 음식은 같은 반 아이들에게 나눠주세요. 정말 고마운 친구들이더군요. 일주일 동안 하루도 빠지지 않고 모두들 메일을 보내왔더라구요. 덕분에 이 녀석이 집에 돌아왔습니다."(문경보, 《흔들리며 피는 꽃》, 219쪽)

가출한 친구를 위해 반 전체가 매일매일 메일을 썼다니. 참, 아름답다.


실은 문경보 선생님은 2011년에 학생들과의 이야기를 담은 책을 하나 더 내셨다.


외로워서 그랬어요

저자
문경보 지음
출판사
샨티 | 2011-07-29 출간
카테고리
시/에세이
책소개
외로운 열일곱 청춘들의 진심을 가슴으로 전하다!『외로워서 그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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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워서 그랬어요》라는 책이다. 이 책은 작년에 읽었다. 순서상 거꾸로 읽은 셈이다. 그때 나는 군복무를 하고 있었다. 휴가를 나왔다가, 아침에 일찍 깨긴 했는데 딱히 할일이 없어 집어든 책이 《외로워서 그랬어요》였다. 머리 짧은 군인아저씨가 아침부터 책상머리에 혼자 앉아 책을 읽다가 막 울고 그랬다. 그땐 혼자니까 눈물을 참지도 않았다. 점심을 먹기 전에 다 읽었는데, 그동안 한 세 번은 눈물을 흘렸던 것 같다. 이 책에 실린 내용은, 선생님께서 아이들의 마음과 더 소통하고 싶어서, 상담관련 공부까지 더 하신 뒤에 아이들과 나눈 이야기들이다. 겉으로는 그저 문제아에, 진짜 답이 없는 날라리인데, 한참의 침묵을 거쳐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간 받아온 수많은 상처들을 그제서야 드러내는 아이들 이야기. 책을 읽으면서 눈물을 흘리는 일이 그렇게 늘 있는 일은 아닌데, 이 책은 정말 눈물없이는 볼 수 없을 정도였다.


다시 오늘 읽은 책으로 돌아와서, 이 책은 2003년에 나온 책이고, 책에 나온 사례들은 그보다 더 전이니 이미 이 이야기들은 10년도 더 전 이야기들이다. 여기 나오는 아이들이 지금은 20대, 30대 청년들이 되어있을 터다. 어떻게 살고 있을지, 선생님을 어떻게 기억할지 무척 궁금하다. 책 안에도 성인이 되어 연락해온 제자들의 이야기가 더러 있다. 그런 제자에게 해주는 이야기는, 마치 나에게 해주는 이야기 같기도 했다.

청춘이 시들 때까지 가슴앓이를 하더라도 젊은 날의 비틀거림을 피해 가지 않는 용기를 그들에게 선물해 달라고, 그 비틀거림 속에서 자신의 존재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발견하고, 그 비틀거림마저 사랑할 수 있는 지혜를 보내주시라고.(문경보, 《흔들리며 피는 꽃》, 196쪽)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국어를 가르치시며, 그 아이들과 참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많은 삶을 나누고 계신 문경보 선생님. 그 이야기는 참 아릅답고, 정겹고, 때로는 슬프기도 하다. 그 삶들을 응원하고, 그 삶들을 응원하는 데에 삶을 바치고 계시는 문경보 선생님을 응원하고 싶다. 덧붙여서, 진짜 잘 안되지만, 그리고 선생님만큼은 못 되더라도, 누군가를 볼 때, 그 사람의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과 행동만 보기보다는, 그 마음을 헤아리고 보듬을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