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2013~2019

[영화] 서울인권영화제 '마이 플레이스 My Place'

참참. 2013. 5. 25. 01:26

첫 영화였던 '아무 데도 없는 아이들 Nowhere Home'(이 영화 후기 보러가기 - 2013/05/25 - [내가 바라는 일상/2013~] - [영화] 서울인권영화제 '아무 데도 없는 아이들 Nowhere Home')이 끝나고, 잠시 안내 말씀을 해주셨다.


안내 말씀은 대략 뒤에 이 곳에서, 영화에 대해 더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책을 살 수 있다라든가, 더우니 천막 안에서 관람해주시면 되겠다라든가, 그런 이야기들이었다.


처음 왔을 땐 열 명이나 겨우 넘을까싶던 사람들이, 두번째 영화 시작하는 시간에 맞추어서 점점 늘어났다. 두번째 영화 '마이 플레이스'가 시작할 때엔 이 사진에 보이는 모습에서도 (사진을 찍은지 불과 10분 사이에) 훨씬 더 늘어있었다.


객석 뒤에 붙어있던 영화 정보를 찍어보았다.



마이 플레이스

My Place 
 0
감독
박문칠
출연
박문칠박문숙
정보
다큐멘터리 | 한국 | 74 분 | -


'마이 플레이스' 시작!

이 영화는 국내 영화였다. 서울인권영화제에서는 국내 영화에도 한글 자막을 깔아준다. 청각장애인들을 차별하지 않기 위해서다. 누구나 차별받지 않고 볼 수 있게 하자는 취지에 맞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캐나다에 살다 온 주인공이 영어를 섞어서 쓸 때는 자막이 있어서 더 편하기도 했다.

이 영화는 캐나다에서 태어나서 어릴 때 캐나다에 살다가 한국으로 역이민 온, 오빠와 여동생의 이야기다. 이 영화를 찍은 것은 오빠이고, 영화의 주인공은 여동생이다. 오빠는 한국에서 비교적 적응을 잘한다. 겉으로 보기에 그렇게 보인다. 얌전히 학교를 다니고 남들이 괜찮다고 하는 대학교에 들어가서 졸업도 하고, 직장도 가진다. 동생은 전혀 그렇지 못했다. 학교에선 아이들과 싸우고, 선생님과 싸우고, 집에서 엄마와 싸우고, 아빠와 싸운다.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한국의 사회 분위기와 학교 교육을 이해할 수 없었다. 거기에 순응하고 남들처럼 공부를 하는 것은 죽기보다 더 어려운 일이었다. 견딜 수 없었다.

결국 여동생은 성인이 된 뒤 캐나다로 유학을 떠난다. 그렇지만 그곳도 어릴 때부터 계속 살아온 것이 아니기 때문에, 역시 집은 될 수 없었다. 엉뚱하게도 그는, 결혼은 하지 않고 애를 가져서 한국으로 돌아오게 된다. 영화 소개에서처럼 비혼모의 이야기가 될 줄 알았던 영화는, 이민 온 가족들의 과거들을 이야기하는 영화가 된다. 오빠도 여동생도 그 전까지는 알지 못했던, 궁금해하지 않았던 이야기들이 나온다. 엄마가 캐나다로 이민을 가게 된 계기, 아빠가 캐나다로 이민을 간 이유, 캐나다에서 엄마와 아빠가 느꼈던 것들,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기까지의 이야기들. 또 캐나다를 겪고 한국에 와서 엄마와 아빠가 느끼고 경험한 것들에 대해 알게 된다. 알고보니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던 가족의 역사. 그러고보니, 나는 나의 어머니와 아버지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고, 얼마나 궁금해하고 있는지 되돌아보게 됐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나도 이런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지만, 그런 일은 쉽게 오지 않았을 거다. 지금도 살아계신 어머니와 얼마나 마음이 담긴 대화를 자주 나누는가 돌이켜보면, 쉽지 않았으리란 걸 알 수 있다. 가족이란 참 가깝고도 먼 존재라는 느낌을, 자주 받는다. 가장 가깝다고들 하는데, 글쎄, 난 잘 모르겠다. 더 멀게만 느껴질 때가 너무 많다. 내 진심어린 이야기를 나눌 상대로, 가족을 선택하는 일은 드물다. 내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눌 상대로도, 드물다.

진심어린 이야기를 잘 못하게 되는 것은, 뭔가 부끄럽고, 또 상대의 반응이 예측되는 부분이 많은 데다, 그 반응이 내가 원하는 반응도 아니라는 생각 때문인 것 같다. 이야기를 들으려고 하기보다는, 본인의 입장을 전달하고, 그 입장을 굽히려고 하지 않는다. 또한, 의사소통의 기본은 아마도, 다른 사람의 생각을 잘 듣는 것인데, 가족들은 '상대방의 생각은 이미 다 알고 있다, 지금까지 니가 해온 인생을 난 다 봐왔으니까'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크다. 나만 해도 그렇다. 위에도 썼지만, 내가 이렇게 말하면 상대는 이런 반응을 보일거라고 나 역시 지레짐작해버리고 있다. 그러니까 다른 가족구성원들이 나한테 그런 식의 태도를 보여도 사실, 내가 불평할 자격은 없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불평한다. 답답하다. 내가 말하지 않은 걸 넘겨짚어버리고, 들으려고 하지를 않으니까. 상대방의 이야기를 잘 듣는다는 건, 보기보다 진짜 어려운 일인 것이다.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잘 못하게 되는 것은, 그런 것쯤은 말하지 않아도 다 알거라는 마음과, 귀찮음과, 서로를 귀찮게 하지 말자는 배려(즉, 상대가 나에게 그런 이야기를 하면, 나도 귀찮을 것이라는 자기 검열) 때문일지도 모른다. 또,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하는 가장 큰 이유는 공감받기 위해서인데, 가족구성원들이 그 공감에 서툰 경우도 많다. 공감해주기보다는 해결해주려고 하고, 뭔가 지적하려고 하면, 그런 이야기 던지는 거, 진짜 피곤한 일 된다. 하고 싶지 않다.

영화 이야기를 하다가 나의 가족관계를 진단하게 되어버렸다. 어쨌든, 그렇게 이 영화는 가족의 역사를 탐구하는 과정이 들어간다. 그렇지만 사실, 이 영화의 숨은 주인공은 여동생이 낳는 아들, '소울'이다. 이름을 소울이라고 짓는다. 소울이는 영화에서 정말 귀여울 뿐만 아니라, 여동생에게 삶의 의욕을 되찾아준다. 아빠와 그렇게 사이가 안좋던 동생이 소울이를 함께 키우면서, 아빠가 밉다는 생각이 더 이상 들지 않게 되었다고, 말한다. 아이란 신비한 존재다. 영화를 찍는 오빠는 영화 끝부분에 내레이션으로, 왜 동생이 소울이를 낳으려고 했는지 알 것만 같다고 이야기한다. 그 이유란 것은, 내 편이라고는 없는 세상에 내 편인 사람을 만들고 싶어서다. 그럴 수도 있겠다. 사실, 내레이션으로 그 이야기를 꺼내기 전에, 내가 그 이유를 생각해냈었다. 영화를 보다 보면, 정말 그의 편이 없기에. 모두가 그를 이해하지 못하고, 실은 이해하려는 노력도 제대로 못해주고, 자신의 삶에 치여 그냥 '특이한' 아이로 그를 대해버리면서, 누구도 그의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는 듯한 느낌이 많이 들기 때문이다. 많이 외로웠을 것 같다, 그 여동생은.

불합리한 것들, 이해할 수 없는 것들과 싸우는 그 여동생을 보면서, 조금 엉뚱할 수도 있지만 '인디고 아이들'이 떠올랐다. <인디고 아이들>이라는 책은 아직 못 읽어보았지만, 거기에 따르면, 인디고 아이들이란 어떤 독특한 남빛의 오라를 지닌 아이들을 뜻하는데, 그들은 80년대에 많이 태어났다고 한다. 그 아이들의 가장 주요한 특징 가운데 하나가, 뭔가를 강요하는 이해할 수 없는 체계 등에 적당히 순응하지 않고, 강하게 반발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그 여동생이 단순히 어린 시절을 캐나다에서 보냈기 때문에, 라고 하기에는 굉장히 독특한 면이 많았기에, 그런 생각이 들었다. 사실 7살까지 캐나다에서 지낸 이유만으로 그렇게 독특한 아이가 된다는 건 말이 안 된다. 어떤 기질적인 측면에서부터 다름이 느껴졌다. 인디고 아이라는 생각도, 그래서 들었던 것 같다.

다시 캐나다에 가서, 소울이를 키우며 교사를 준비하고 있다는 여동생, 각자의 삶을 열심히 살아나가고 있는 이 가족들, 모두 영화를 통해서 서로 더 많이 이해할 수 있었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든다. 서로 이해하는 만큼, 좀 더 행복해졌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 좋아보였다. 귀여운 소울이가 앞으로 어떻게 자라날지 몹시 기대된다.


좋은 영화들을 공짜로 보게 해준 서울인권영화제는 이렇게 운영되고 있었다!

그리고 이런 이유로 거리로 나섰다고 한다! 응원합니다!

내일 하는 청춘유예 등도 꼭 보고싶은데, 일정상 못 보게 되어서 무척 아쉽다. ㅠㅠ